중국의 용산문화
용산문화는 대개 기원전 2300년경에서 1800년경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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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인의 묘지는 주택지구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묘장墓葬은 잘 배열되어 있으며, 장법葬法은 모두 단인신전單人伸展이었고 굴신장屈身葬과 합장合葬은 드물었다. 그러나 제가문화지역齊家文化地域에서는 묘지 가운데 남녀합장男女合葬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일부일처제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부장품 가운데 도조陶祖가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이미 남성 조상숭배의 습속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많은 묘지들은 모양과 크기가 같지 않고 부장품의 수와 종류도 각기 다른데 이것은 이미 사유재산의 형성과 빈부의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지역의 용산문화는 각기 문화적인 공통성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지방적 차이가 있는 문화를 이룩하였는데 이것은 농경상의 기술향상과 목축의 발달에 의하여 용산인의 경제적 생활이 향상되고 이와 더불어 일면에서는 사회계급의 분화, 부의 편중 등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남자의 사회적 활동범위가 확대되어 점차 주도적 위치를 갖고 부계제사회로 이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촌락 내에는 부노父老를 중심한 지도자 출현과 함께 정치․군사적 특권 계층의 형성과 어떠한 정치조직의 발생도 진행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이춘식, <중국 고대사의 전개> 가운데
일부일처제, 남성 조상숭배, 사유재산, 빈부의 차이, 사회계급의 분화, 부의 편중, 부계제사회, 정치.군사적 특권 계층 등은
4천년 가량 뒤,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사회와도 관계 있는 게 아닐까
4천년 가량 전의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다르면 무엇이 다르고, 얼마나 다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