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니 서머스 등, <나다운 페미니즘>을 읽고
44명이 글이 담겨 있으니 정말 다양한 내용이 있어요
그동안 살면서 제가 생각해 봤던 것들도 있고, 처음 생각해 보는 것들도 있었구요
생각해 봤던 것들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되고
처음 생각해 보는 것들은 아하! 이러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었어요
오랜 꿈인 것 같아요
그 세월을 알 수 없을 거에요
아~주 오랜 예전에 로마나 중국에서 노예들을 반란을 일으킬 때도 그랬고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유와 평등을 찾아 거리를 행진할 때도 그랬지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를 그만두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세상 말이에요.
그리고 그 꿈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여성은 여성이라서 겪는 삶의 일들이 다르기 때문에 여성 해방을 외치게 되었을 거구요
여성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마음을 옥죄고 행동을 제약하던 것들까지
이라크의 여성이 그렇고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이 그렇고
미국의 여성이 그렇고 한국의 여성이 그런 것 같아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게
그렇게 함께 더 나은 세상 더 많은 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던 것 같아요
때로는 두들겨 맞기도 하고 때로는 손가락질 받으며
웃음과 기쁨을 위한 세상을 위해 노력해 오신 분들께 감사드려요. ^^
코트니 서머스 등, <나다운 페미니즘>, 창비, 2018
나는 할머니처럼 되고 싶었다.
할머니는 원하는 것을 좇을 용기가 있는 여자였다. 수차례 격동에 휘말렸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켰을뿐더러, 역경을 겪을 때마다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고난 속에서 지혜를 얻은 덕분이었다. - 16
내가 살면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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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깨우고, 입을 다물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31
깨어 있는 남자로서 나는 페미니즘이 내게도 이득이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페미니즘은 모든 젠더 고정 관념을 해체하고자 한다.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면서 ‘남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 정의한다. 남자들이 마음껏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가 정해 놓은 좁은 ‘남성성’의 틀에 스스로를 욱여넣지 않아도 되고, 본연의 고유한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다고? 그게 페미니즘이라면, 나도 페미니스트가 되겠다. - 35
외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차별의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분이셨다. 만약 외가까지 비슷한 분위기였다면 유년을 보내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외할아버지를 사랑했고 훨씬 가까이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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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읽으라고 권해 주셨던 할아버지는 내 문학의 시작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년이 넘게 1리터쯤의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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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완벽한 일관성을 갖춘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페미니스트였고 그 점이 나에게 무척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뭐든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와, 교육에 대한 지원을 풍족히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가해도 큰 행우이다. ‘남자아이 열 명을 데려와도 너와 바꾸지 않을 거야’ 엄마는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는 나를 여성 ceo로 키우고 싶어 했다. 부모님의 진취성은 어른이 된 지금도 로켓 연료처럼 내 등을 밀어주고 있다. - 39
첫 성추행을 당했던 건 열한 살 때의 일인 것 같다. 친척들과 계곡인지 호수인지를 놀러 갔는데, 친척 중 한 사람이 막 발달하기 시작했던 내 가슴을 세게 꼬집었다. 아직도 왜 내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분노를 느낀다. 자주 주문처럼 되뇌곤 하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당신의 장례식에 가지 않을 거야. 당신이 죽어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나이를 생각하면 역시 그 친척이 나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다. 여자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학대자들의 장례식이 비밀스레 거행되곤 한다. - 40
1960년대 초에는 기묘한 연애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짐작했겠지만 그건 자신에게 처녀성을 바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여자 친구가 요구에 응하고 나면 남자는 처녀성을 잃은 여자에 대한 존중심을 잃고, 자신이 여자를 장복했다고 친구들에게 떠벌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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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거꾸로 제안하고 싶다. 남자 친구에게 페미니즘을 받아들임으로써 21세기 식으로 사랑을 증명하라고 요구해 보자. 페미니즘은 인종과 종교, 장애 여부,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자는 주장일 따름이다. 남자 친구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을 존중할 것이다. 당신이 믿는 페미니즘을 함께 믿는 것이야말로 사랑과 존중을 표현할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 169
피해자의 증언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피해자의 말을 믿으면 강간범들을 구속하고 처벌하고 교도소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기 자신이나 아들을 강간범으로 생각하는 걸 싫어하죠. 추악한 진실을 대면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 이를 외면하고 증언을 무시하는 겁니다. - 217
m과 나는 몇 년이나 가깝게 지냈다. 공통 관심사는 별로 없었지만 m과의 우정 덕분에 나의 나의 진짜 모습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271
엄마와 달리 나에게는 친구 같은 자매들이 없지만, 여자 친구들과의 우정은 내 인생에서 항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흑인이자 여성으로 자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여자들과 나눈 우정은 내가 오늘날 강인하고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데 꼭 필요했다. - 274
사랑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사랑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사랑은 따뜻하다. 내가 슬플 때나 기쁠 때 안아 주는 따뜻한 몸, 내가 추울 때 침대에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몸,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갈 때 손을 잡아 주는 몸, 내가 한 아기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동안 손을 잡고 옆에서 같이 호흡해 주는 몸, 외톨이처럼 느껴질 때 손을 잡아 주며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려주는 따뜻한 몸.
사랑은 바유적으로도 따뜻하다. 취업 면접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몸을 감싸는 자신감, 인생에서 적어도 한 사람만큼은 나를 원하는 대로 봐 준다는 안도감, 마침내 긴 프로젝트를 마쳤을 때 나만큼이나 기뻐할 한 사람이 있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 그게 내 인생과 나의 관계에서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사랑은 계속해서 내게 따뜻함을 주었다. - 280
나의 원동력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경쟁심이었다. 그게 가난하고 젊은 싱글 맘이던 내가 더 나은 길을 걷게 만든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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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내 안에 불어넣어 둔 전투심 덕분에 나는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언제나 더 잘하고자 하는 욕구, 어떤 도전에 맞닥뜨리든 내 최고의 모습을 끄집어내고자 하는 바람. 그게 없다면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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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가치 있다. - 299
‘세게’ 행동하면 남자 기를 죽이는 못된 년 취급을 당한다. 세상은 계속해서 알려 준다. 우리의 역할은 기껏해야 남자들에게 웃어 주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큰 소리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여자들 덕분에,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는 여자들 덕분에 상황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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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품행이 방정한 여자들이 역사를 만드는 경우는 드문 법이다. - 312
나를 덮고 있던 자기혐오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거울을 똑바로 마주 보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내 갈색 피부를, 세상을 보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을 받아들이고 마침내는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나는 해냈다. 내가 지닌 힘이 내 사고방식과 믿음, 감정과 인생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