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조/시스템과 인간
지주들이 토지에 찾아들었다. 아니, 그보다도 지주들의 대리인이 더 빈번히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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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인들은 저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앞마당에 서서, 네모난 자동차가 밭가를 달려가는 모습을 불안한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침내 지주 대리인들이 차를 앞마당으로 몰고 와서, 차에 탄 채로 창문을 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작인 대표들은 차 옆에 잠시 서 있다가 아내 웅크리고 앉아 막대기를 하나 찾아내어 흙 위에 무언가를 끼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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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과 아이들은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가 지주 대리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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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는 자신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에 얽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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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소유자가 은행이나 금융회사일 경우 지주 대리인은 이 모든 것이 다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그렇게 주장하며, 기다려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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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인간인 동시에 노예이고 은행인 기계인 동시에 주인이기 때문이다. - 25
잠깐, 하지만 은행이나 회사는 그렇지가 않아. 그것들은 공기로 숨을 쉬지도 않고 베이컨도 먹지 않으니까. 그것들은 이윤으로 호흡을 하지. 금리를 먹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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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그 괴물은 이윤을 얻으려고 24시가 안달이거든. 그놈은 기다리지를 못해. 죽어버릴 테니까...괴물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죽는 거야. 그놈은 자나깨나 제 덩치를 부풀릴 생각만 하거든. - 47
이제까지 쭈그리고 있던 남자들은 성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 땅을 손에 넣었어. 그러기 위해 인디언들을 죽이거나 쫓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이 땅에서 태어나 잡초랑 뱀들을 다 없애버렸어. 그러다 흉년이 들어서 아버지는 돈을 얼마 정도 빌려야 했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태어났고, 저 문간에 있는 우리 아이들도 태어났어. 아버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했지. 그 뒤론 은행이 지주가 되었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그대로 살았고, 작물을 가꿔서 그 일부를 먹고 살아왔어. - 48
-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동서문화사, 2017
노동자가 있고 관리자가 있고 사장이 있고 주주가 있고
기계가 있고 공장이 있고 회사가 있고 자본주의가 있고
눈이나 손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 관리자나 기계일지라도
주주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고 이용되는 인간과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