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돌이 아빠^.^ 2021. 10. 14. 12:36

넷플릭스 시리즈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앤과 <제인 에어>의 제인은 많이 닮았어요. 

 

가난한 고아라는 것도 그렇고,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이라는 것도 그렇고,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는 것도 그렇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도 그렇고, 강한 의지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해나간다는 것도 그렇고, 더욱 깊은 사랑을 찾아 노력한다는 것도 그렇고...

소설 <제인 에어>에 비해 영화 <제인 에어>에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요. 소설이 줄 수 없는 매력이랄까...영화 처음에 제인이 로체스터의 집을 뛰쳐나와 허허벌판으로 나서는 장면이 있는데...거기에 흐르는 음악과 영상이...

 

소설에서도 제인의 아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느껴졌지만 영화 속 음악과 영상으로 전해지는 그 모습은 정말...오갈 데 없이 바람부는 갈림길에 선 모습이라니...ㅜㅜ

 

소설을 읽지 않은 분이 영화만 보면 제인의 이야기가 다 전해질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소설은 천천히 하나하나 다 얘기해주니까 좋은데...영화는 소설의 일부 장면만을 가져오잖아요. 정해진 시간에 그 긴 얘기를 다 할 수 없으니 말이에요. 

 

그러니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면 글로 읽었던 그 장면이나 사건들이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하게 다가올 것 같구요. <레미제라블>같은 작품도 마찬가지구요.

 

https://youtu.be/mhlljPO_4yc?list=PL7tgy3ZWFgmbawRg5jhttNOzpG6PoGH6f&t=67 

영화 포스터에 보면 '21세기 명품멜로'라는 말이 나와요. 그리고 영화 속에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맞구요. 그런데 제인의 삶은 그냥 단순한 '멜로'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면이 있지 싶어요. <빨간 머리 앤>의 앤도 그렇구요.

 

사랑을 찾아요. 사랑을 삶의 중요한 그 무언가로 느끼고 만들어가고 싶어해요. 그리고 거기에는 관습이나 전통보다는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면이 있어요. 

 

그렇다고 열정이 없는 게 아니에요. 열정을 지니되 인간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면도 있는 거지요. 

 

로체스터가 결혼을 하자고 했을 때 제인이 그런 식으로 말해요.

 

제가 비록 가난한 가정교사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없진 않아요. 

 

존이 경직되고 무심한듯한 태도로 제인에게 결혼을 이야기할 때도 제인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요.

여기서 중요한 건 3가지인 것 같아요. 

 

1. 자신

가족이나 사회의 요구 같은 게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있다는 거에요.

 

2. 감정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 설레임과 두려움 등등의 감정이 있다는 거에요. 

 

3. 주체

누가 뭐라고 하면 그저 수동적으로 '네...'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럴지 저럴지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거에요

 

여성들은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가 본 적도, 가 볼 일도 없는 '그 시대'에, 부모나 남편이나 동네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한 개인으로, 한 인간으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거지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따라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생겨요.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서 살 때도 그렇고, 고아원에서 살 때도 그렇고, 로체스터의 집에서 나올 때도 그렇고...고통스럽고 두렵고 답답하고 막막해지는 거지요. 

 

제인만 그런 것도 아니고 여성만 그런 건 아닐 거에요. 누구나 그래요. 이래도 될까 싶고, 그냥 시키는대로 할까 싶고, 괜한 일 만들지 말자 싶고 그렇지요. 

 

인간이란 게 늘 남들이 시키는대로 살기도 어렵고, 또 언제나 내 뜻대로만 살기도 어렵잖아요. 

 

그렇게 살다가도 말도 안되는 어이 없는 상황에 놓였다거나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싶을 때는

내가 누구이며,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스스로 짚어보고 길을 열어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려움도 있고, 힘든 순간들도 찾아오겠지요.

 

제인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을 고용한 부자이자 귀족이고 나이 많은 남성인 로체스터에게 이런 말을 해요.

 

격의 없는 건 좋아도 무례한 건 누구도 용납 못해요

 

돈을 주고 고용한 가난한 가정교사가 나이도 많고 남성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아마도 많은 남성들이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뭐 이런 듣보잡 싸가지 없는 년이 어디서 굴러들어 온 거야!

 

서로를 함부로 대하거나 억누르는 관계에서 벗어나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제인은 큰 위험(?)까지 무릎 쓰는 거에요. 해고될 수도 있고, 인간 관계가 아예 끝나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반전(?)이랄까...제인이 자기 삶의 길을 지켜나갔기 때문에 로체스터가 제인을 더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르구요.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고 나니...아이고...처음엔 팔만 아프더니 좀 있다가는 몸살이 난 것처럼 몸이 무거워서 한참을 누워 있었어요. 그러고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약을 몇 번이고 먹었지요. 

 

더 나아지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거치는 힘든 순간들이지 싶어요. 

 

힘든 순간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꼭 누구와 맞서 싸우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은 아닐 수 있어요. 

 

때로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불안에 떨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고

내가 꿈꾸고 바래왔던 삶의 길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더 힘들고 더 외롭고 더 고독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요

 

인간의 삶에서 온전하고 완벽한 행복이란 게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건 없을지 몰라요

 

인간의 삶에서 조금은 더 풍성한 기쁨이란 게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건 있을지도 몰라요

 

찾고 이루고 지켜나가기 어려울지라도

지금보다는 더 깊고 더욱 빛나는 그 삶의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