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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암 투자니, <아담>을 보고

순돌이 아빠^.^ 2022. 6. 7. 10:42

깊음과 짙음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 영화를 알게 되고 보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해요. 제가 살아가는동안 두고 두고 떠올리고 되뇌일 작품이에요.

 

인간에게 깊고

그 예술적 표현이 짙은 작품이에요.

 

한 사람의 삶에 담겨 있는 것들

 

어느날 갑자기 사미아가 아블라를 찾아옵니다. 혼자 임신한 채로. 하룻밤 머물고 떠나려는 사미아에게 아블라가 말합니다.

 

아블라 : 2, 3일은 묵어도 돼요. 그 다음에 집에 가요. 임신시킨 놈을 찾아가든가요

사미아 : 그런 게 아니에요

아블라 : 알고 싶지 않아요

 

왜 사미아는 배가 크게 부른 상태에서 혼자 잠자리와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게 되었을까요

 

오갈 데 없는 사미아를 받아 준 아블라조차 묻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섹스를 하거나 임신하는 것을 큰 죄로 취급하는 모로코 사회에서 한 여성이 혼자 임신한 상태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거에요. 시골 마을을 떠나와 도시에서 미용사로 일했고, 원했거나 아니면 원하지 않은 섹스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되었겠지요. 

 

조금도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거나 더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떠나왔겠지요. 억지로 쫓아내서 떠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구요.

 

사미아라는 한 사람의 삶에는 개인으로서의 삶,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회 환경이나 문화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미용사든 가정부든 무슨 일이든 찾고 있는 거겠지요.

 

살아나는 웃음

 

<아빠의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거기에 나오는 작은 아빠도 처음에는 표정이 무뚝뚝해요. 바이올린 연주조차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는 소리를 듣게 되지요.

아빠의 바이올린

<아담>의 아블라도 그래요. 꼭 필요한 말만 주고 받아요. 웃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빵을 구워 파는 일과 딸을 먹이고 공부시는 것만 해요. 

 

자신이 만들어놓은 방식대로 살고, 딸에게도 규율과 인내를 요구하지요. 웃음도 즐거움도 없는 상태에서 규율과 인내라…

 

아블라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아블라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따서 딸의 이름을 지었던 아블라를.

 

그런 아블라가 사미아를 만나고 나서 점점 변해요. 듣지 않던 노래도 듣게 되고, 거기에 맞춰 조금씩 춤도 추게 되지요. 회색이었던 삶에 점점 다른 색깔들이 생기는 거지요. 

이 영화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가 아블라가 혼자 속옷을 입고 거울 속 자신을 비춰보는 거에요.

 

무뚝뚝하고 흑백과 같은 삶을 살던 아블라가 점점 변하면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는 거지요. 

 

속옷만 입은 여성의 모습을 천천히 비추는데, 무슨 성적인 느낌이나 예쁜 몸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나 인생이 느껴지더라구요. 속옷만 입은 여성의 몸에서. 

빵 반죽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아블라가 반죽을 주먹으로 툭툭툭 쳐요. 그러니까 사미아가 아블라의 손을 붙잡고 그러면 안된다며 함께 반죽을 해요. .

 

사미아 : 힘빼요. 만지세요. 부드럽게요…느껴봐요...반죽을 이기는 감각을 느껴봐요…느껴야 해요.. 

 

그렇게 천천히 두 사람의 손이 밀가루 반죽을 느끼며 움직이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요. 그동안은 싸우듯이, 쿵쾅쿵쾅 두드리듯이 살았던 삶이 천천히 부드럽게 느끼며 사는 삶으로 변해간다고 해야 할지…

다음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즐겁게 웃으며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장사를 하는 모습이에요. 제 마음도 한껏 밝아지더라구요. 

 

처한 상황만 놓고 보면 사미아가 더욱 힘들텐데, 오히려 아블라에게 새로운 감정을 심어주고 웃음을 찾도록 도와줘요. 

 

뭐랄까...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미아의 생명력이나 의지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누구라고 아블라의 마음을 죄다 알 수 있겠어요. 모로코라는 사회에서 남편 없이 혼자 장사하며 딸을 키워온 한 여성의 마음을.

 

그렇다고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놔둘 것도 아니었지요. 

 

보살피고 아껴주고 함께 하면 웃을 수 있고 밝게 피어날 수 있는 마음이었던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상

 

지금 저에게 인생 영화 3편을 꼽으라면 <캐롤>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아담>이에요.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난 왜 이 3편을 좋아하는 걸까…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뭐지…

 

3편 모두 여성 2명이 주인공이에요. 일부러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고르려고 한 건 아닌데 고르고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이들에겐 삶의 어려움이나 고통이 있어요. <캐롤>의 캐롤은 불행한 결혼 생활에다 괴롭히는 남편이 있지요.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있구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헤로이제는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는 것이 있어요. 

 

<아담>에는 모로코, 여성, 임신 등과 관련된 여러 모습들이 나오구요.

제가 이 3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힘겨운 것만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만도 아니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사랑하기 때문일 거에요. 

 

그들이 여성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결혼을 했거나 임신을 했거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그들을 비난하거나 욕할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마침(?) <아담>을 본 날 우리 동네 한 교회 앞을 지나게 됐어요. 저번에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걸어놓더니, 이날은 그런 내용이 담긴 전단을 교회 입구에 쌓아놓고 여러 사람들 보라고 하고 있더라구요. 

 

전단 한장을 손에 들고 내용을 보는데 제 입에서 저절로 큰 소리가 나왔어요. 속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앞에 지나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씨발 이런 교회는 당장에 망해야 돼!

아이를 어떻게 할지 너무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사미아가 이런 말을 해요

 

저랑 있으면 아이는 미래가 없어요.

 

사미아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사미아가 게을러서 아이를 굶기나요?

 

엄마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거, 아이에게 아빠가 없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는 거겠지요. 

 

엄마와 아이에게 직접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그 사회가 두 모자를 조롱하고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손가락질 할 거라는 거에요. 

 

당장에 동네 사람들,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조차 사미아를 향해 ‘어떤 놈 하고 붙어 먹은 거야!’라며 욕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화에 보면 사미아가 아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죄를 통해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랍어를 모르는데…사미아가 ’하람’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구요. 

 

아랍어에서 하람이라는 건 각종 금기를 말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슬림들에게 돼지고기를 먹는 건 ‘하람’이지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 아이만 보면 아이가 죄이고 하람이며 금기일리 없잖아요.

 

어지간한 종교는 아이를 사랑하라고 말할 겁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할 거구요. 

 

이슬람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겠지요?

 

그러면 종교나 사회나 국가는 사미아와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들이 만들어놓은 규율이나 교리를 어겼다고 소리치며 배척하고 궁지로 몰아야 할까요

 

아니면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식이고 모두 같은 소중한 생명이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 받거나 배척당하지 않도록 더욱 아껴주고 응원해줘야 할까요

 

 

누구를 죽이기를 했나요, 큰 사기를 쳐서 돈을 뜯어 먹었나요, 천날만날 술을 먹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나요, 누구처럼 온갖 거짓말을 하며 대통령의 아내가 되었나요

 

도대체 사미아와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건가요?

 

동성애를 하거나 이성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혼자 살거나 그냥 사람이고 그냥 사는 거잖아요.

 

서로 사랑한다면 ‘예쁘게 사랑하세요~’라고 응원해 주면 될 일이고, 혼자 애를 키우며 살면 뭐 도와줄 거 없나 찾아보면 될 일 아닐까요

 

교리니 관습이니 전통이니 하면서 다른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보다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부지런히 사는 게 훨씬 좋은 거잖아요.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12 

 

[전주국제영화제④] '아담' 마리암 투자니 감독 - 문 두드려 도움을 청한 여성으로부터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미혼여성의 혼외출산을 앞두고 여성간의 연대를 그린 마리암 투자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담>은 그의 경험에서 탄생한 영화다. 런던에서 대학을 마치고 모국인 모로

www.cine21.com

그러지 말라고 해도 

이미 미움은 넘치고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살도록 

응원하고 북돋우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