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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물든 팔레스타인의 웃음

순돌이 아빠^.^ 2011. 1. 20. 17:46

[월간 에세이]에 보내려고 쓴 글 http://www.essayon.co.kr/

 

팔레스타인에 있는 한 시골 마을에 머물 때였습니다. 하루는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놀러 갔습니다.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결혼식은 여러 가지 차이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춤을 추고 논다는 겁니다. 춤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저도 덩달아 중동의 여름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덩실덩실 춤을 췄지요. 외국인이라고는 보기 힘든 시골 마을의 결혼식에 가서 춤을 함께 추는 것만으로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함께 춤을 추자고 저를 끌어당기고, 어떤 사람은 멀리서 온 손님 덥다고 다시 자리에 끌어다 앉히기를 반복했습니다.

 

더운 날 잔칫집에서 춤을 췄으니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하지 않았냐구요?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은 술을 먹지 않습니다. 탄산음료를 한 병 받아들고 잠깐 앉아 쉬는데 어디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태어난 지 몇 달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가 칭얼대며 울고 있는 겁니다. 우는 모습도 귀여워 사진기를 들이대니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 갑자기 활짝 웃었습니다. 아마도 커서 모델이 되려나 봅니다.

 

아이 사진을 찍고 나자 동네 꼬마들이 너도 나도 자기 사진 찍으라고 팔을 잡아  당깁니다. 사진을 찍어 조그마한 화면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저도 기분 좋았구요.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시나요? 제가 학교나 사회단체에 강연을 다니며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대체로 돌아오는 대답은 전쟁, 폭격, 죽음, 눈물과 같은 말들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울 수밖에 없는지를 알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갔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의 이유를 알고 싶었지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하루 이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다가온 첫 느낌은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이나 유럽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편히 생활하며 일을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먹고 자고 마시고 길 안내하는 것까지 모두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사람들처럼 가까이에서 제 마음과 저의 일을 살펴 주었습니다.

 

어쩌다 길에서 잠깐이라도 혼자 서 있을라치면 어디선가 팔레스타인인이 나타나서 ‘혹시 뭐 도와 드릴 것 없나요?’하고 묻습니다. 흔히 팔레스타인 하면 우리가 무언가 도와줘야 할 것 같지만 그곳에 가보면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두 번째 느낌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즐거움, 어찌 보면 안 어울리는 말처럼 보입니다. 한국에 유학을 왔던 한 팔레스타인이 하루는 제게 ‘한국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일 마치면 맨날 술만 먹어요’라는 겁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뭐하냐고 제가 물었지요. 돌아온 대답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사람들이 어울려 논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얘기처럼 결혼하는 날이 되면 남자고 여자고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평소에는 입지 않던 옷을 입고 몇 시간이고 즐겁게 춤을 추고 놉니다. 별다른 오락거리 없이도 이 집 저 집 모여 차를 마시며 온갖 농담과 수다로 즐겁게 웃기도 합니다. 아이나 노인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지만 삶의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몇 달 머물다 인천공항에 내려 집으로 오는데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칙칙한 거리 풍경과  고개를 숙인 채 표정 없이 걷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위로, 낯선 사람에게도 ‘살람 알레이쿰(안녕하세요)’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경제적 성장이나 정치적 안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이 훨씬 살기 좋은데 정작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삶을 더 우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한 번씩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혼자 씨익 웃곤 합니다. 그들의 웃음은 저에게 특별한 따뜻함과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우는 이유를 알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찾았는데, 되레 제 삶을 푸근하게 만드는 그들의 웃음을 마음에 담고 온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