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평화.함께 살기 3716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을 읽고

일본이 그동안 한국(조선)이나 중국, 다른 국가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악영향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겁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난징학살 등등. 그러면 그들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그들은 어떤 정치를 했고 어떤 심리 상태를 가졌기에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총리가 히틀러였고, 일본의 총리가 도조 히데키였습니다. 한 개인이 이 모든 일을 저질렀을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개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히틀러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확실해지자 자살을 했고, 도조 히테키는 전범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후회나 반성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미안함 같은 것도 별로 없어 보이구요. ..

이언 커쇼, <히틀러>를 읽고

2천쪽에 가까운 분량을 가진 책이라서 읽기만 하는데도 약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하임 페스트가 쓴 과는 또다른 느낌입니다. 히틀러가 어떤 심리상태를 가진 인간인지, 또 히틀러를 둘러싼 지배 집단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좀 더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무섭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어찌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인간이란 존재가 어쩜 이렇게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그렇게 나쁜짓을 많이 하더니 히틀러도 괴벨스도 결국 자살을 했지요. 그렇게 죽을 거 왜 그런짓을 했는지... 여러가지를 앍게 되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요즘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온갖 것을 때려부수고 있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일과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일은 어떤..

지도자/지배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라이저는 히틀러한테 점수를 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카를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점수만 딸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감수할 수 있었으며 히틀러의 말은 그에게는 하느님 말이나 다를 바 없었다” 히틀러에 의해 바르테란트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라이저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했다”고 한 목격자는 전했다. 그는 자신이 “지도자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며 친위대장도 안면이 있다는 사실을 틈만 나면 강조했다. - 325 - 이언 커쇼, , 교양인

신도 아닌, 완벽하지도 않은 인간

기세등등한 이미지는 부르크하르트가 도착한 직후 약간 손상을 입었다. 시중을 들던 직원 하나가 무거운 안락의자를 놓치는 바람에 히틀러가 발등을 찍혀 아파서 깡충깡충 뛴 것이다. - 268 히틀러는 언제나 강인한 정신력을 유지하는 듯 말했지만 4월 중순 나르비크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당황하여 아마추어 같은 군사적 판단력을 드러냈다. 이 당시 히틀러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발터 바를리몬트 장군은 “제국의 수장인 사람의 심지가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나중에 진술했다. 요들이 쓴 일기를 인용하면서 그는 “굉장히 동요하고 평정을 잃은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 367 바르바로사 작전이 갈수록 꼬인 것은 결국 전격적으로 나가면 소련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턱없는 오판의 결과였다...

정치, 그리고 사람을 도구나 수단으로만 여기는

히틀러는 한프슈탱글을 좋아했다. 부인은 더 좋아했다. 그렇지만 호불호의 기준은 얼마나 그 사람이 쓸모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한프슈탱글은 확실히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사교 비서’인 셈이었다. 이 상류층 젊은이를 통해서 히틀러는 노이마이어 카페에서 월요일마다 모이던 서민 친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력 인사들과 만날 수 있었다. - 291 - 이언 커쇼, , 교양인

전쟁과 투쟁 속에서 삶의 의미와 소속감 등을 찾는

번듯한 직업을 가질 가능성은 전무했고, 그런 일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자격도 기대감도 없었고 오래 가는 친구를 사귈 능력도 없었고 자기 자신을 반아들이라는, 아니 자기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원망한 사회를 받아들이리라는 희망도 품을 수가 없었다. 전쟁은 그런 히틀러에게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스물다섯 살 먹은 젊은 이에게 전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이유, 몸 바칠 목표, 동지애, 생활의 규율, 일종의 고정직, 충일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속감을 안겨주었다. 군대가 히틀러에게는 집으로 다가왔다. 1916년 부상을 당했을 때 히틀러가 상관에게 내뱉은 첫마디는 “많이 다친 건 아닙니다, 중위님. 중위님하고, 우리 연대하고 같이 있을 겁니다.”였다. 전쟁이 후반으로 접어들었을 때 히틀러가 진급 대상에 오르는..

혐오감과 우월감

히틀러가 느꼈던 혐오감의 밑바닥에는 사회민주주의가 대변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사회문화적 우월감이 깔려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내가 가장 끔찍하게 여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히틀러는 나중에 ‘하층계급’ 사람들과 접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내 동료들의 경제적 곤중, 그들의 거친 도덕과 윤리, 그들의 낮은 지적 성숙도’를 열거했다. - 116 히틀러는 뿌리 깊은 우월감에 젖어 있었으므로 가난하고 곤중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자기가 왜 사회적으로 몰락하고 강등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희생양을 찾기 위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었다. - - 117 - 이언 커쇼, , 교양인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와 관계 없이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을 혐오하거나 업..

필립 쇼트, <마오쩌둥>을 읽고

마오쩌둥에 관한 평전입니다. 읽고 있으면 머리가 어질어질 합니다. 책이 두꺼워서가 아니라 지배와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인간의 생명이나 권리가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때문입니다. 이 책 하나로 마오쩌둥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저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인생도 이야기로 풀자면 이리저리 복잡할 텐데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사람과 얽혀 있는 한 인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겁니다. 다만 대략적인 면은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대략적인 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조금 더 이해하는 것일테구요. 세상에는 악당이 참 많습니다. 한반도로 치자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등이 있겠지요. 세계사를 놓고 보면 히틀러, 스탈린,..

독재나 지배와 억압을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는

마오의 선생은 바로 그런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는 “학생을 대하는 엄격한 태도를 강조하는 부류였으며…거칠고 매섭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마오는 훗날 회고했다. 선생은 대나무 회초리를 자주 사용했으며 학생들은 매를 맞을까 봐 항상 공포에 떨었다. ‘향 피우는 판’ 역시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는 홈이 파인 나무판 위에 꿇어앉아 향 하나가 다 탈 때까지 심한 고통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리적 환경이 학생의 마음을 침울하게 만들었다면 교육 방식은 더 심각했다. 마오와 동료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그림책은 없었으며 어린아이들의 주의를 집중하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었다. 철저하게 반복해서 암기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2천년 동안 변함없이 전해 내려온 옛 글을 외우는 이 방..

카를 오게 라스무센,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를 읽고

몽생종의 에 이어 두번째로 리흐테르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리흐테르의 인생이나 생각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음악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살아서 이런 연주를 했구나 싶고, 이런 연주를 하기 위해 이렇게 살았구나 싶습니다. 수많은 우역곡절과 복잡하게 오가는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의 연주는 그가 내어 놓은 결과물입니다. 이 결과물을 내어놓기 위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연습을 하고 어떻게 고민을 하고 어떻게 에너지를 쏟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다만 그가 했던 말들을 통해, 그를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본 리흐테르의 삶이 모습이 제가 듣는 그의 음악과 닮았다는 겁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