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성.가족/성.여성.가족-책과영화 97

그로 달레, <앵그리 맨>을 읽고

정말 마음 울렁이는 책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힘들어요.당장에 저의 이야기 같거든요. 제가 겪었던 그 불안과 긴장과 두려움과 혼란과도 많이 닮아 있어요. 제가 겪은 일이 저만의 일은 아닌가봐요.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아요. 저도 한창 어른이 되었고, 그런 일을 겪고 참지 않을만큼 힘도 생겼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아픈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문득 문득 떠오르거나 불쑥 불쑥 솟아나면 여전히 힘들고 아파요.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그것들을 내 삶의 일부로 안고 살아요. 지금 이렇게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겪은 일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누군가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 속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서 살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수용소..

케이트 커크패트릭, <보부아르, 여성의 탄생>을 읽고

영어 제목에는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부아르 되기 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뜻이 무엇인지 확 다가오네요. 몇 권 되지는 않지만 제가 태어나 읽은 책 가운데 참 인상 깊었던 책 하나가 보부아르 입니다. 이 책만큼 많은 것을 검토하고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쓴 책도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성이란 어떤 존재이고, 여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제게 많은 것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구요. 얼마전에는 스탈린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인간이 정말 이렇게 살지는 말자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부아르에 관한 책을 읽으니 '아 그래 맞아' 싶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자신이 처해..

<인 허 핸즈>를 보고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상황의 보여주는 훌륭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영화는 2021년 탈리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기 전에부터 직후까지를 보여줍니다. 자리파 가파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일한 시장이었습니다. 여성이 시장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도 많지요. 여자는 요리하고 집에서 집안일 해야죠. 애들도 보고. 남자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길에서 만난 한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네요. 한국인인 저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여성이 해야 할 일 : 요리, 집안일, 애보기 여성이 하지 말아야 할 일 : 남자한테 이래라저래라 결국 남성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거기에 복종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하라는 거네요. 신기(?)하지요? 나라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

넷플릭스, <아론녹>을 보고

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은 스웨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는 미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은 인도를 배경으로 하구요. 지역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남자가 2.연쇄적으로 3.살인을 했는데 그 대상은 모두 4.여성입니다. 남성-연쇄-여성-살인범인 거지요. 가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연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집단의 피해를 생각하면 가해자의 행동이 연쇄냐 아니냐를 떠나 여성은 연쇄적이고 지속적으로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러싼 힘과 권력’들’ 에서 에이미가 살해되는 과정을 보면 한 놈만 직접적인 범인/가해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살인자와 에이미를 둘러싼 여러가지..

넷플릭스, <델리 크라임>을 보고

여러 해 전 인도 델리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6명의 남성들이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한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도 한번 보려고 켰다가…조금 보고 말았습니다. 화면도 어둡지만 마음도 무겁더라구요. 이번에 다시 시도해서 다 봤습니다. 잘 만들었다고 하기에는…그렇다고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잘’이라는 말을 하기가 입이 안 떨어집니다. 왜냐하면…극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정말…아…인간이…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싸이코패스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죄의 잔혹함을 보여줍니다. ‘델리 크라임’에서는 범죄자의 심리가 어떻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화면 없이 말로만 들려줄 뿐입니다. 그렇게 말로만 듣고 있어도…정말… 피해자를 치료하던..

에마 골드만 외,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를 읽고

그곳은 세계 곳곳을 합니다. 팔레스타인, 튀니스, 인도, 프랑스, 칠레, 멕시코 등등에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내용도 있고, 아하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은 것도 있고 그랬습니다. 비록 교도소지만 남성이 없는 여성 교도소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보니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운 면은 있으나, 다양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받아들이도록 해야겠습니다. ^^ 에마 골드만 외, , 르몽드코리아 평화와 조화를 위해 반드시 개인 간의 피상적 균등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남녀 간, 개인 간 평화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개인 간 특..

수전 팔루디, <백래시-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를 읽고

참 참 좋은 책이었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1980년대 미국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요즘의 한국과도 닮은 점이 많더라구요. 이런저런 일들이 그래서 생기게 되는구나 싶기도 했구요. 2022년 아프가니스탄은 어떨까요? 탈리반이 다시 권력을 차지하기 전 그나마 조금 열렸던 여성들의 사회 참여나 직업의 기회가 순식간에 닫혀 버렸겠지요. 미국, 한국, 아프가니스탄... 나라마다 사회마다 여성이 처한 상황에는 차이가 있을 거에요. 그리고 반페미니즘 운동의 요구에는 닮은 점도 있을 거구요. 백래시와 반페미니즘에 관한 책인데,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더 좋았어요. ^^ 수전 팔루디, , 아르테, 2021 언론계의 관행적인 상식에 따르면 1980년대의 싱글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서 발..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를 읽고

어떤 책은 종이에 쓰여 있는 글을 이해하는데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요. 이게 이 말인가, 저게 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리고 또 어떤 책은 글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아프게 하고 답답하게 만들어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무겁고 힘든 그 이야기가 어느 만큼 저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으면 더욱 그렇지요. 수많은 감정들이 떠오르고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니까요. 참 좋은 책이에요. 그리고 그냥 좋은 책이라고만 하기에는...왜냐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사연들 때문에... 먼 길을 왔지만...갈 길도 너무 머네요...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 시공사 2000년과 2006년 사이에 복무 중 목숨을 잃은 미국 군인은 3,200명인..

<인비저블맨>을 보고

영화가 재미나냐 아니냐를 떠나, 설정 자체가 섬뜻해요. 공포 영화라고 하는데...음...그냥 스릴러 영화라고 해도 될 것 같고…가만 생각하면 저런 상황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공포일 거에요. 세실리아는 남편 애드리안을 피해 집에서 도망쳐요. 애드리안은 모든 걸 지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 거든요. 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의 생각이나 감정까지 조종하려고 들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지 말지까지요. 침실을 포함해 온 집안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있고, 심지어는 함께 살고 있는 개의 목에 도망을 못 가도록 전기 충격기까지 달아 놨지요. 겉은 멀쩡해요. 흔히 말해 돈도 많고 성공한 놈인 거지요. 세실리아가 도망쳐 다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

마거릿 애트우드, <증언들>을 읽고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아담하고 조용하고 좋더라구요. 가까운 곳에 물도 흐르고 주변에 소나무도 많고. 그런데...거기에 살았던 허난설헌은 어땠을까요? 허난설헌은 아니어도 비슷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혼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을 편하게 말할 수도 원하는 사람을 만나 친구로 삼을수도 결혼을 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지 않았을까요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거나 제사 같은 것은 관심 없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은 미래의 어느날 미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길리어드라는 국가가 들어선 뒤의 이야기에요. 여러 계급으로 나뉘고, 특히 여성들은 대부분의 공적 활동에서 추방되지요. 섹스하고 자식 낳고 집안일 하고 등등의 일 속으로 내몰리게 돼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