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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증언들>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21. 6. 30. 18:21

강릉관광개발공사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 생가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아담하고 조용하고 좋더라구요. 가까운 곳에 물도 흐르고 주변에 소나무도 많고.

 

그런데...거기에 살았던 허난설헌은 어땠을까요? 허난설헌은 아니어도 비슷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혼자서 자유롭게 다닐 수도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을 편하게 말할 수도

원하는 사람을 만나 친구로 삼을수도

결혼을 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지 않았을까요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거나 

제사 같은 것은 관심 없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핸드메이즈 테일

<증언들>은 미래의 어느날 미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길리어드라는 국가가 들어선 뒤의 이야기에요.

여러 계급으로 나뉘고, 특히 여성들은 대부분의 공적 활동에서 추방되지요.

섹스하고 자식 낳고 집안일 하고 등등의 일 속으로 내몰리게 돼요.

거역하거나 저항하는 날은 곧 공개 처형이구요.

 

미래를 가정한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그냥 가상만으로 여겨지지 않아요

노예 시대의 흑인 여성 노예들을 생각해보면 그저 상상이 아니라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사우디 아라비아 또는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하면 과거의 역사도 아닌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전편인 <시녀 이야기>를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거에요.

<시녀이야기>는 <핸드메이즈 테일>이라는 드라마로 만들기도 했다더라구요.

 

흥미롭고 인상 깊은 소설이었어요 ^^

 

마거릿 애트우드, <증언들>, 황금가지, 2020

 

글쓰기는 위험할 수 있다. 어떤 배반이, 어떤 탄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르두아홀 내부에도 이 원고를 손에 넣고 기뻐할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 14

 

내 악몽에도 나왔어요. 유리 집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다음에는 찢기고 뜯기고 발굽에 짓밟히고, 나는 분홍색과 흰색과 자두색 조각들이 되어 땅바닥에 널려 있었어요.

이러다 결국 불타는 염소한테 시집가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 19

 

너희는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비달라 아주머니는 코를 풀며 말했어요. 그렇게 되면 너희 영혼은 벼랑 끝에서 거꾸로 떨어져 끊없이 무섭게 아래로 추락하다가, 염소 같은 사내들과 똑같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 거야. 나는 그런 사태만은 정말이지 꼭 피하고 싶었어요. - 30

 

비달라 아주머니는 이제까지 본 중 제일 환하게 웃더니, 베카가 그 말뜻을 직접 겪어서 알게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군요. 음부가 되면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머리에 자루를 쓰고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면서요. - 38

 

여자 몇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지만...개머리판에 뒤통수를 얻어맞아 금세 조용해졌다. 여러 번 칠 필요도 없었다. 단 한 번의 가격으로 충분했다. - 172

 

“이제 여기 오셨으니 다 괜찮습니다”

그러면 길리어드 여자들은 울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 나는, 울긴 왜 울어, 탈출했잖아, 행복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온갖 일을 겪고 난 지금은, 그 울음의 이유를 알겠어요.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을 ㄸ까지는 그게 뭐든, 안에 꼭꼭 담아 두게 돼요. 그러다가 안전해지면 그제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서 그간 흘릴 수 없었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게 되죠. - 181

 

원래는 덕망 있고 신심 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건데, 광신도라면 살인을 일삼으면서도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고 에이다가 설명해 주었어요. 광신도는 살인이, 아니 어떤 사람들을 죽이는 건 도덕적이라고 믿는다고 말이에요. - 288

 

아주머니는 내가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여성의 몸이라는 축복을 받은 소녀는 누구나 하느님과 길리어드의 영광과 인류를 위해 성스러운 희생제물로 이 몸을 바쳐야 할 의무가 있고, 또한 그런 몸이 창조의 순간부터 물려받은 기능을 수행해야 하며,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라고요. - 354

 

야비한 그로브 박사는 치과 진료 의자에 앉은 젊은 환자들에게 손을 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 증거도 수집했지만, 못 본 체 넘겼던 건 어린 소녀들의 증언은(그 애들한테서 증언을 끌어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이 경우에는 회의적이었다) 효력이 아예 없거나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성인일 경우에도, 여기 길리어드에서는 여자 증인 넷 합쳐야 남자 한 명에 맞먹을 수 있었다. - 362

 

우리 삶이 평온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적당한 단어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삶은 어쨌든 질서정연했어요. 비록 다소 단조로웠지만요. 우리 시간은 꽉 채워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잘 가지 않았어요. 탄원자로 입회했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고, 이제는 성년이 되었는데, 나 자신은 별로 성장했다는 실감을 할 수 없었어요. 베카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는 어떤 면에서 동결된 것 같았어요. 얼음 속에 냉동되어 보존된 것처럼요. - 413

 

채소를 검수하듯이 아주머니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불안했어요.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가 어려웠어요. 조금만 눈을 들면 아주머니의 몸통을 바라보게 되어 무례를 저지를 테고, 아니면 눈을 맞추고 주제넘은 짓을 하게 될 터였죠. 상급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결코 입을 열면 안 되었는데, 그것도 어려웠어요. 순종, 굴종, 온순, 이런 미덕이 요구되었지요. - 417

 

아무리 그래도 변기를 박박 닦는일만은 즐겁게 할 수가 없었어요. 특히 처음에 완벽하게 깨끗하게 닦았는데도 또 닦고, 그러고도 심지어 세 번째로 닦아야 하니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변기의 상태가 문제가 아니거든, 베카가 말했어요. 순종의 시험인 거야.

“하지만 세 번씩이나 변기를 닦게 시키는 건...비합리적이야”

비합리적인 건 맞아. 그래서 시험인 거지.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요구에 복종할 것인지를 보려는 거니까 - 428

 

몇 달 몇 년이 흐르고 베카와 나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서로 많이 나누었어요. 나는 비록 감정을 극복하려고 애쓰긴 했지만, 계모 폴라를 끔찍하게 증오했다고 고백했어요. 우리 시녀 크리스털의 비극적 죽음을 설명해 주고, 얼머나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는지도 말해 주었어요.

그러자 베카는 내게 그로브 박사가 한 짓을 말해 주었고, 나도 그와 관련해 내가 겪은 일을 말해 주었죠. 그랬더니 베카는 내 몫까지 속상해했어요. 우리는 우리 진짜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했고, 누군지 알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는 말도 했어요. 그렇게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는 말았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큰 위로가 되었답니다.

“자매가 있으면 좋겠어” 베카는 어느 날 내게 말했어요. “그리고 혹시 내게 자매가 있다면 그게 너라면 좋겠어” - 430

 

그때까지는 길리어드 신앙의 정당성을, 특히나 그 진실됨을 심각하게 회의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는 있으나, 그건 내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나 길리어드의 손에 무엇이 변화되고, 무엇이 덧붙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았을 때는, 자칫 믿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 거예요.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가는 느낌이에요.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는 느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느낌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추방당한 느낌이에요.

그래도 믿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믿음을 갈구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과연 믿음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갈망에서 오는 걸까요? - 433

 

“나도 너를 위해 기도할 거야” 베카가 엷은 미소를 지었어요. “나는 너 말고는 사랑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도 사랑해” 내가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 꼭 껴안고 조금 울었지요 - 512 

 

길리어드를 직접 체험한 사람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소녀들과 여자들의 삶에 관한 기록은 너무나 귀하니까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빼앗긴 사람들이 그런 기록을 남기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 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