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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21. 12. 24. 22:22

어떤 책은 종이에 쓰여 있는 글을 이해하는데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요. 이게 이 말인가, 저게 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리고 또 어떤 책은 글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아프게 하고 답답하게 만들어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무겁고 힘든 그 이야기가 어느 만큼 저 자신의 경험과 맞닿아 있으면 더욱 그렇지요. 수많은 감정들이 떠오르고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니까요. 

 

참 좋은 책이에요. 그리고 그냥 좋은 책이라고만 하기에는...왜냐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사연들 때문에...

 

먼 길을 왔지만...갈 길도 너무 머네요...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시공사

 

2000년과 2006년 사이에 복무 중 목숨을 잃은 미국 군인은 3,200명인 반면, 같은 기간 미국에서 가정 내 살인 사건으로 1만600명이 목숨을 잃었다….미국에서는 1분마다 20명이 자신의 반력자에게 폭행을 당한다.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여성과 소녀를 대상으로 한 폭력은 “가장 수치스러운 인권 위반”이라고 말했고,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 수준의 전 세계적인 건강 문제”라고 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가 발표한 한 연구에서는 전 세계에서 2017년 한 해에만 여성 5만 명이 반려자나 가족에게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여성5만명.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보고서는 집을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라고 불렀다. - 28

 

가정폭력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장 긴급한 공중보건의 문제다. - 32 

 

가정폭력의 경우 소위 종료일이 없을 때가 많다. 어찌어찌 가해자에게서 벗어난다 해도 여성이 자녀 양육권을 가해자와 공유한다면 여전히 그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가 개입되지 않더라도 많은 피해자들이 학대에서 벗어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가해자가 학대 때문에 투옥된 경우 특히 그렇다. 피해자에게 새로운 반려자가 생기면 두 사람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내가 인터뷰했던 한 여성은 이런 상황을 두고 자신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상태’라고 했다. 최소한 아이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은 아이들을 이전 배우자에게 데려다주러 갔다가 아이들이 차량 뒷자리에서 보는 앞에서 돌 벽에 얼굴이 짓이겨지는 일을 당했다. 이혼한지 수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 33

 

학대 관계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위험이 끝났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 34

 

가정폭력은 내가 아는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가하는 폭력이다. 가까운 친구에게마저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고, 많은 경우 육체적 폭력보다 감정적이고 언어적인 폭력이 훨씬 큰 피해를 안긴다. 감옥에 갈 정도로 심하게 폭력을 저질러놓고 피해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접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개탄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은 가해자로부터 들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 34

 

상황이 이런데도 순진해 빠진 우리는 피해자는 왜 가만히 있느냐고 대담하게 묻는다. - 36

 

스토킹은 1990년대 초까지도 범죄로 규정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법 집행기관과 가해자, 심지어는 실제 스토킹을 당하는 피해자마저 진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살해 당하는 여성의 4분의 3이 현 반려자나 전 반려자에게 사전에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가정폭력 살해 피해자의 약90퍼센트는 사망에이르기 직전 해에 스토킹과 구타를 모두 당했다. - 38

 

미셸 먼슨 모저의 삶과 죽음이 보여주듯, 남느냐 떠나느냐라는 문제 설정은 학대 관계에서 작동하는 힘들의 역학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 43

 

폴은 앞문에 있는 움푹하게 팬 자국들은 로키가 미셸을 괴롭히려고 문을 내리치다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행동이 폴에게 폭력적이라고, 위험할정도로 폭력적이라고 각인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평가하기가 아주 힘든 것 같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명명백백한 그런 종류의 폭력. 가정폭력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그 징후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폴만이 아니다.

하지만 폴의 집 앞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그 안에 있는여성에게 고함을 친 게 로키가 아니라 낯선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보라. 경찰을 부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폭력을 중단하라고 개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게 우리가 아는 사람, 아버지, 오빠, 아들, 사촌, 어머니 등과 같은 아는 사람일 때 폭력을 인식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 53

 

미셸 먼슨 모저 같은 여성들에게는 이런 착실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유지하는 투지와 결연함.그들은 중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 내부에서 바라본 무언가, 논리를 거스르는 것 같은 무언가를 이해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결혼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은 바로 집에 있는 것도 위험하지만 집을 떠나는 것은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셸이 그랬듯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때를 엿본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킨다. 최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극도의 경계 태세 속에서 인내하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때를 꾸준히 노린다. 할 수 있는 한 그들은 그렇게 한다. - 56

 

로키의 통제는 작은 것에서부터 서서히 진화해갔다.

샐리와 알리사에 따르면 첫 2,3년 안에 로키가 미셸의 취직만 통제하는 겟 아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는 미셸이 화장을 못 하게 했다. 친구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미셸은 로키 없이는 외출을 하지 못했다. <위압적인 통제;남성은 어떻게 여성을 사적인 삶에 가두는가coercive control;how men entrap women in personal life>를 쓴 에번 스타크evan stark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도 일상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묘사하기 위해 “위압적인 통제”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스타크의 연구는 가정폭력이 나타나는 관계 가운데 무려 20퍼센트에서 육체적인 학대가 전혀 없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애비 엘린은 2016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에게 위압적인 통제는, 관계의 초기일 때 아니면 한쪽이 감정적으로 취약할 때, 사랑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성인 남자의 꾐에 넘어간 10대 소녀처럼 특히 취약할 때는. 먹고살 방법이 전혀 없는 어린 엄마처럼 특히 취약할 때는. 

양육, 가사, 성관계, 음식, 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에서부터, 옷 입는 법, 청소법, 요리법, 성적인 행동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아우른다.오늘날 미국의 법학계는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의 현실적인 황폐함을, 결국 자아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자유의 박탈 상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활동가 킷 그루엘은 이런 피해자를 자기 집 안에 갇힌 “소극적인 인질”이라고 부른다. ..그가 보기에 미셸 같은 여성들은 수감자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학대자는 수년에 걸쳐서 한때 존재했던 가능한 모든 탈출 경로(가족, 친구, 지역사회)를 서서히 잘라낸다. 궁극적으로 위압적인 통제는 누군가의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는 것이다. 

스타크는 영국에서 2015년에 통과된 위압적 통제법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 법에 따르면 위압적 통제 행위는 5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역시 ‘심리적 학대’에 대한 별도의 형법이 있다. - 72, 73

 

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미셸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셸에게 모든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위압적 통제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피해자를 자신의 가족에게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 고립은 지리적인 위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가 많다. - 74

 

이반이 몰랐던 사실, 미셸이말하지 않았던 사실은 로키가 미셸에게 화가 나면 때로 아이들을 미셸과 떼어놓곤 했다는 점이었다. 로키는 아이들과 함께 몇 시간씩 사라지곤 했고, 같이 영화관에 가거나, 캠핑을 가거나, 어디로든 가버렸고, 그러면 미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에는 로키가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었다. 아이들은 인질이 되었다. 그녀를 복종시키는, 양보하게 만드는 수단.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수단. 로키가 돌아올 때쯤이면 미셸은 그저 그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그는 미셸을 때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통제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 87  

 

샐리는 로키가 흰색 스바루를 갓길에 대는 모습을 보고 미셸의 지시에 따라 앞문으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 그의 눈빛을 보고 겁에 질렸다고, 그녀는 나중에 말했다.

그는 마당을 쿵쿵거리며 가로질러서 뒷문에 도착했지만 그녀가 걸쇠를 걸어버린 직후였다. 그는 문을 향해 자기 몸을 던졌고 문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

로키는  작은 몸을 계속 문에 부딪쳤고, 샐리는 문에 금이 가는 소리를 한 번 더 들었다. 샐리는 멜라니에게 911에 신고할고 소리쳤다.

 

크리스티와 카일은 소파에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샐리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보았다. 아이들은 무서워하지도, 히스테리를 부리지도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울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긴장감이 실린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맙소사, 샐리는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전에도 이걸 본 적이 있구나. 아빠가 이러는 걸 본 적이 있어. - 92

 

미셸은 자신의 진술을 철회했다. 

일체의 가정폭력 상황에서 가장 심하게 오해당하는 순간 중 하나다. 

미셸은 겁쟁이라서, 자신이 과잉 반응을 했다고 생각해서, 로키가 전보다 위험하지 않아졌다고 믿어서 철회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미쳐서, 유난을 떠는 사람이라서, 이게 생사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서 철회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한 거라서 철회한 게 아니었다. 살기 위해 철회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철회했다.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갑자기 움직였다가는 곰을 도발하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성난 반려자를 가라앉히는 데 가끔은 효과가 있는 수단을 수년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애원, 회유, 약속, 공공연한 연대의 표현,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 모르는 사람들(경찰, 대변인, 판사, 변호사, 가족)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까지.

전직 지방검사 스테이시 파머…는 히스테리 상태의 미셸이 빌링스 지방검사 사무실로 난입했다고 나중에 내게 설명했다. 미셸은 모든 걸 철회했다. 남편은 절대 위험하지 않았어요. 뱀 같은 건 없었어요. 다 제 탓이에요. 로키는 훌륭한 남편이에요. 훌륭한 아빠고요. 

몇년뒤 나는 한 가정폭력 대변인의 말을 들으며 미셸에 대해 이 순간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접근금지명령을 갱신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 98-100 

 

어쩌면 미셸은 캘리포니아로 갈 수도 있다. 가발을 쓰고, 온몸에 문신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아예 이 나라를 뜨는 건 어떨까. 캐나다 같은 데로, 세라는 미셸에게 돈을 줄 테니 애리조나에 있는 이모 집으로 가라고 제안했다. 미셸의 옛 친구는 다른 주에 있는 숲 속 오두막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셸은 알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딜 가겠어? 그 남자가 모든 에너지와 모든 돈을 쥐어짜서 찾아낼 텐데”

 

알리사는 당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고 말한다. 미셸의 신원을 바꾼다. 미셸을 숨긴다. 어떤 식으로든 로키를 제거한다.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누가 로키를 죽이면 좋겠어. 안 그러면 그가 미셸을 죽일 테니’하는 생각도 했어요” - 102

 

대신 미셸은 그 많은 다른 여성들이 그녀보다 앞서 이미 보았던 것을 보았다. 학대자는 시스템보다 더 강력해 보인다는 사실을.

로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을 때 이는 미셸에게 훨씬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번 메시지의 내용은 나는 너보다 더 강할 뿐만 아니라 시스템은 너의 안전보다 나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는 거였다. - 125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까? 그는 연방교통안전위원회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들이 조사를 통해 어떻게 비행기 사고의 예방 가능성을 점점 높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의 시각표를 만들고, 티켓 판매원에서부터 조종사, 승무원, 기술자, 항공교통 통제와 기상 상황까지. 중요한 모든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시스템 내부의 빈틈을, 승무원이 간과한 순간들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안전 매커니즘을 살폈다. 그들은 개별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직함과 직위를 남나들며 지식을 나누는 하나의 팀으로 일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비난하고 수치심을 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시스템이 더 나은 기준과 더 효율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감을 갖추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취지였다.웹스데일은 비행기는 여러 이유에서 사고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기술적인 결함, 인간의 실수, 안전장치의 고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가정폭력 살인 사건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그가 말한다. 어떤 한 가지 요인을 지목하고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대신 일련의 작은 실수들, 불발된 기회, 실패한 소통들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어떻게 했더라면 미셸과 아이들이 살았을지에 대한 답을. - 143-146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바꾸면 차이를 만들 수 있었을지 - 149

 

그는 이미 위험 인물로 알려져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움을 감지했는데, 어째서 시스템은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을까? - 150

 

로키는 속옷 차림의 미셸을 찍는 경향이 있었다…그는 줄곧 그녀의 엉덩이를 클로즈업으로 잡는다….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좀 내버려두라며 한 번씩 저항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카메라가 다른 곳에서 자신을 찍을 거라는 걸 알고 그냥 그를 무시하는 듯하다. 

그는 미셸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한다. 그녀가 반대하는데도 그는 계속 그것을 한다. 결국 그녀는 그의 권력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그가 줄곧 기대했던 대로 그는 승리한다.

그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는 침식 과정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조금씩, 한 사람이 더 이상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잠식하기. 

그가 속옷  차림의 그녀를 찍고, 찍고, 또 찍은 것은 어째서 괜찮지 않은가?

그녀가 그에게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중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하지 말라는 말 자체를 포기했다.

이것은 권력의 상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다. - 168

 

그는 일하는 소녀들을 다루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반려자들을 다뤘다.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자기 소유의 물건처럼. 그는 그들을 때리기도 했고 때리지 않기도 했다. 그들과 성관계를 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하는지는 그의 소관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그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 175

 

그는 폭력을 모든 남성이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신념 체계의 결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신념 체계는 남성들에게 네 인생의 모든 권한은 너에게 있다고, 너는 존경과 복종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인간 위계질서 최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이 신념 체계는 이들을 자기 주변 사람들과 소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범위에 한계를 설정하고 남성은 무엇이 될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에 대한 협소한 생각에 갇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째서 남성들은 이걸 믿었을까?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밀함”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남성들은 아무런 신념 체계를 가지지 못했다. 남성들은 폭력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친밀함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 183

 

싱클레어가 몇 년 전 내게 보낸 한 학술대회의 백서에서 그는 샌프란시스코 치안부 책임자가 했던 말을 이렇게 다시 정리했다. “남성은 스스로를 다른 남성보다 그리고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규정함으로써 남성이 되는 법을 학습한다. 그래서 배우자 학대든, 폭력배의 영역 싸움이든, 길거리 폭행이든, 무장 강도든, 교도소 안에 있는 남성들의 죄인인 그 외 어떤 범죄든 우리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폭력은 남성들이 자신의 우월함에 대한 학습된 믿음을 꾸준히 이행하는 데 따른 것이다. 남성들은 우월해져야 하는 자신의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온갖 형태의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학습했다” - 184

 

폭력의 젠더화된 근원 - 185

 

“폭력적인 남성들은 자신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 남자다움을 친구들에게 자랑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누가 문제 제기를 하면 자신의 폭력에는 사실 폭력성이 없다고 부정할 때가 많죠. 이런 식으로 부정을 하니까 폭력적인 남성들은 자신의 폭력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서 말하고,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덮어 씌우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것을 승인함으로써 자신들과 공모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폭력 사건들이 별것 아닌 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가해자는 “그렇게 나쁜 짓은 아니었어요”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피해자가 과장하는 거라고 오히려 비난한다. 그들은 피해자 쪽으로 살림살이를 집어 던지거나 그녀를 향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그녀를 벽에 밀칠 때 그녀를 ‘해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마치 벽이나 문 같은 물건들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런 남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폭력적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 188

 

싱클레어의 프로그램…3부로 나위어진 52주짜리 프로그램 맨얼라이브manalive…20주에 걸친 1부에서는 남성들이 자신의 폭력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16주에 걸친 2부에서는 이들에게 폭력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 그리고 역시 16주에 걸친 3부에서는 인생에서 친밀함과 충만함을 창조하기 위한 전략을 가르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폭력적인 남성이 그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아니면 감옥에 가는 걸 의무화하는 법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은 개입의 기초가 심리치료가 아니라 젠더여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들은 그냥 분노관리센터 같은 곳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심리치료사를 몇 번 만나게 하고 끝내서도 안 된다. 이들은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젠더 역할과 기대에 대해 학습해야 했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화 과정에서 젠더의 역할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맨얼라이브 커리큘럼의 방법론은 단순하다. 폭력적인 상황에서 남성들이 자신의 몸을, 목소리를, 주변인들의 반응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남성 대다수가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이다.

폭력이 발생한 후에 피해자와 함께 폭력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들어가 가해자와 함께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 189

 

오늘 이야기하는 여성은 빅토리아다. 50세인 그녀는 지난 5년간 비로소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에 익숙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약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이었다. 한번은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어떤 남자아이의 집에 갔을 때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따라와서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고 어머니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얘가 그런 짓을 하게 내버려두면 널 죽일 거야” 빅토리아는 가끔 자신이나 남동생이 잘못을 하면 아버지는 반려동물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했다고 말했다. 

 

오늘 나는 샌브루노 감옥에 있다. 이곳은 처음이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줄 맞춰 앉은 수십 명의 남자들과 함께 빅토리아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곳에 있는 남자들에게는 가정폭력 생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처음일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와 폭력이 누군가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많은 남자들이 눈물을 훔친다. “아빠는 온 가족을 살해하고 감옥에 간 남자들한테 편지를 써서 당신들은 용감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빅토리아가 말한다. “전 늘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에 시달렸죠”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예요” 그녀가 그 자리에 모인 남자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치유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생각도 해요”

남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 사건, 자신의 잘못을 부정했던 시절, 반려자를 조종하거나 언어로 위협했던 순간, 자신의 폭력을 하찮게 여겼던 경우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들은 자신의 폭력이 피해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기 시작하고, 이 중에는 이런 경험이 처음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 192-195

 

샌브루노 프로그램은 폭력중단의 다짐resolve to stop the violence으로 불린다.

폭력중단의 다짐은 처음에는 폭력 성향의 남성들을 사회에 기여하는 비폭력적인 구성원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핵심 목표는 그들이 자신의 폭력 행위에 책임을 지고 대안을 배우게 만드는 것

연구자들은 폭력중단의 다짐 프로그램 참여자와 통제집단 내에서의 폭력 사건, 재범률, 재소자의 출소 후 지역사회 내에서의 폭력 등 다양한 데이터를 추적했다. 어떤 식으로 계산을 하든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재범률이 80퍼센트까지 떨어졌고 다시 수감된 사람들의 죄목도 마약이나 교통 위반 같은 폭력과 무관한 경범죄인 것으로 나타났다. - 195

 

과거까지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랬을까? 나는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런 말로 애원했을까? 전 세계에서, 천 개의 언어로, 세기를 넘나들며,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제발 날 죽이지 마. 우리 여자들이 얼마나 예의 바른지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목숨을 두고 애월할 때 “제발”이라고 말한다. - 231

 

어느 날 애덤스는 폭력적인 남편이 한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그의 모임에 찾아온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테이프에서 남편은 “내가 머리가 돌아서 너랑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분노를 품지 않았을 거야” 같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는 처음으로 피해자를 조종하는 학대자가 어떤 식일 수 있는지 직접 들었고, 제대로 이해했다. 그들이 자신의 학대와 질투를 어떤 식으로 낭만화하는지.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야’라는 변명. ‘네가 이걸 하지 않으면 난 저걸 하지 않을 거야’라는 합리화. 책임 전가와 부정

그들은 학대 행위를 합리화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의 폭력을 최소한으로 축소한다.

다음 순서는 회한이다. 눈물 어린 깊은 사과, 행실을 고치겠다는 약속, 흠모와 사랑의 말들. 화자가 누구건 대본은 충격적일 정도로 비숫하다. - 243

 

정말 설명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는 어떻게 학대가 한 사람을 천천히 갉아먹는지, 생존자들이 육체적 학대보다 감정적 학대가 훨씬 나쁘다고 얼마나 자주 이야기하는지이다. 실제로 곤돌프는 책에서 가정폭력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 시스템 전체는 과정이 아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여성은 사회복지 업무 경험이 있었고, 나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전남편의 학대로 어떻게 조금씩 무너져 내렸는지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이상해서 근야 한 번 그러고 말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 254

 

(미국에서는 가족 살해범의 95퍼센트를 남성이 차지한다. 웹스데일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남성 범인은 154명인 반면 여성 범인은 일곱 명이었다) 이들의 가족은 전통적인 젠더 구분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말해 남자가 주 부양자이고 여자가 가족과 집을 책임진다. (여성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가정의 감정적 필요를 책임진다는 뜻이다)

로키 모저도 그런 사례다. 그들은 일반인에 비해 종교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경우가 많고, 감정의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게 패트릭 오핸런과 맞아떨어진다. 사회에서 극도로 고립된 경우도 많다. 일자리나 지위, 신분의 상실, 임박한 파산 같은 경제적 타격은 살인이라는 최종 행위의 촉매가 될 수 있다. - 265

 

많은 남자들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발표한 글에서 편견과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가 가득한 수사를 토해낸다…자신에게는 살인을 저지를 자격이 있다는 주장을 정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 270

 

웹스데일과 애덤스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 역시 극단적인 수치심이 자극제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브렌 브라운은 여러가지 중에서도 폭력, 우울증, 공격성과 수치심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수치심이 “젠더에 의해 조직된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그저 ‘약하다고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남성의 젠더 규범에는 ‘감정 통제력을 보여주기, 일이 먼저, 지위를 추구함, 폭력’이 포함되었다.

심지어 할리우드가 그리는 남성의 모습에서도 폭력은 “영화 관람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폭력을 문제 해결과 등치시켜버렸어요”

 

오핸런의 정신의학 기록에서 수치심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승진을 하지 못해서 수치스러워하고, 자신이 잘 처리하지 못하는 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수치스러워하고, 절망을 떨쳐내지 못해서 수치스러워한다. - 271

 

내가 던에게 이유를 묻자 그녀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도러시의 죽음이 “즉각 예방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가장 확실한 사례, 도러시처럼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예상했던 사람들, 자신이 지독한 위험에 빠져 있음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면 그들이 하는 일은 다 무슨 의미인가?

가정폭력 살인 사건의 최대 지표는 앞서 일어난 물리적인 가정폭력이라고 캠벨이 말했다. 그건 당연한 소리 같다. 하지만 상황이 고조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도러시는 가정폭력 살인에서 가장 위험도가 높은 범주에 속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따. 그녀의 죽음이 그렇게 즉각 예방 가능해 보였던 까닭이 이것이었음을 던은 깨달았다. 정말로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던 것이다. - 347-349

 

미국에서 피해자의 15퍼센트에서 40퍼센트 사이를(어느 연구를 참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차지하는 피학대 남성은 훨씬 심각한 오명에 시달린다. 남성들은 쉼터를 알아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거의 없다. 여성에게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랑을 찾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바로 그 문화는 학대 상황에 놓인 남성에게 무력감과 수치심을 안기고, 네가 피해자라면 그건 네가 약하고 진짜 남자가 아니가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문화는 그들에게 외부의 위협이나 내부의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 폭력은 용납 가능하지만 눈물은 그렇지 않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그 문화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학대자와 피학대자 모두를 한계 속에 가둔다. - 406

 

마르티나에게는 브랜디라고 하는 언니가 있었다.

몇 년 전 브랜디는 심각하게 구타당한 뒤 발작과 뇌졸중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상태가 얼마나 안 좋았던지 신부가 병원으로 종부성사(천주교 신자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를 하러 왔을 정도였다. 

브레샤가 마르티나의 집 앞에 나타나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그날까지는. 브레샤는 마르티나와 함께 지내게 해달라고 매달렸고, 자신이 돌아가면 아버지가 그들 모두를 죽일 거라고 말했다.

브랜디는 남편에게 맞아서 늑골과 손가락이 부러졌고 눈에 멍이 들었다.

1년 뒤 브레샤가 다시 집을 나왔다. “이젠 작은 성인의 모습을 갖춘아이가 내 집에 왔어요” 마르티나가 그레이스에게 말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칼자국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브레샤는 열네 살이었죠”

… 

“브레샤가 아버지의 총을 집어 들고 잠들어 있는 아빠를 쏴 죽였죠” - 409

 

결국 법원은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마르티나의 조카를 아동 자격으로 재판했다. 그녀는 1년간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2018년 2월에 석방되었다. 그녀가 착실하게 행동하면 21세가 되었을 때 전과가 말소될 것이다. 하지만 마르티나에게는 아직 끝이 아니다. “브레샤는 첫 14년간 학대를 당했고 마지막 2년간은 감금 상태였어요. 그래서 아무런 방해가 없는 자유의 상태였던 적이 사실상 없었어요” - 417

 

동시에 나는 희망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남성 친구들, 동료들, 남자 형제들, 친구의 남편들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동지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배려심이 있고, 나와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온 나라에, 심지어는 전 세계에 침투하고 있는 비겁한 여성 혐오의 영향을 거부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들을 안다. - 430

 

로즌솔은 고등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젊은이들, 특히 젊은 남성들이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젊은 남자들은 서로와 그리고 여성들과 아주 다른 관계를 맺고 있어요” 그녀는 그 윗세대와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로즌솔은 그 순간 내게 놀라운 말, 그녁 하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말을 했다. “어떤 면에서 남성들은 여성운동의 최대 수혜자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오늘날) 아이들과 아주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그 모든 남자들을 좀 봐요. 요즘 아빠들은 학교 행사에 참여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해요. 우리 동네에서는 남자들이 항상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까지 데리고 같이 걸어간답니다. 젊은 아빠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를 좀 봐요. 완벽하진 않죠. 아직도 여자들이 많은 면에서 짐을 짊어지고 있고요. 하지만 그들은 변화를 실제로 경험했어요.” - 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