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세계 곳곳을 합니다.
팔레스타인, 튀니스, 인도, 프랑스, 칠레, 멕시코 등등에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내용도 있고, 아하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은 것도 있고 그랬습니다.
비록 교도소지만 남성이 없는 여성 교도소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보니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운 면은 있으나, 다양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관점과 시선을 받아들이도록 해야겠습니다. ^^
에마 골드만 외,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르몽드코리아
평화와 조화를 위해 반드시 개인 간의 피상적 균등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남녀 간, 개인 간 평화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개인 간 특성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고찰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타인과 화합하는 것, 타인과 깊은 교류를 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과 개인, 진정한 민주주의와 진정한 개인주의,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그 어떤 적대감이나 갈등 없이 만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 14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에게 변화라고는, 그들이 편견과 구속을 받는 장소가 가정에서 공장, 상점, 사무실 등으로 바뀐 것이 전부다. 그 결과 여성들은 과연 독립을 쟁취했는가? 많은 여성들이 고된 일과를 마친 후 따뜻하게 반겨줄 이 한 명 없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17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사랑의 결핍으로인해, 일하는 로봇이 돼버렸다. - 18
이스라엘의 건국 공신들은 국가를 새롭게 새워가는 과정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의무는, 유대민족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였던 다비드 벤 구리온이 “4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것은 곧 ‘유대인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1949년 10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게 ‘모성 영웅’의 칭호를 내리기로 결정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 53
차도르나 부르카를 쓴, 연약하고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 서구의 미디어에 비친 아랍여성들의 이미지다. 그렇다면 과연 아랍 여성들은 역사의 흐름 바깥에 있는, 변화를 멈춰버린 존재일까? - 93
1950년대 초 어머니를 비롯한 그 세대 여성들의 대부분은 ‘수프르’라는 정책에 따라 베잇을 벗어버렸다. 어머니도 유행하는 옷이나 짧은 소매의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당시 유행에 따라 옷을 입고 짧은 머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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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아랍가수 움므 쿨숨 등 그 시대 가수의 비디오를 보면, 여성 청중 중 단 한 명도 소위 ‘이슬람 의상’이라는 것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당시, 그러니까 1950년대부터 1980년대초까지 아랍여성들은 전 계급에 걸쳐 대부분 지금의 나와 비슷한 차림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슬람 의상’의 상징인 두건, 차도르 아바야, 베일, 부르카 중 그 어떤 것도 걸치지 않았다. 단지 농촌여성들이 동정녀 마리아가 2천여 년 전에 입었던 것과 비슷한 전통의상을 계속 입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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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육의 혜택을 받은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소녀들이 두건을 하지 않은 채 해외여행을 하고, 해외에서 미혼인채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저소득층 가정을 이끌며 가장으로서 존중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100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에 패배한 직후, 독재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이며 반자유주의적인 아랍체제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과 동맹을 맺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 아랍체제는 동맹을 맺은 단체들에게 풍족한 자금을 지원했다. 예를 들어, 소위 ‘이슬람 의상’을 입은 모든 이들은 매월 일정액을 지원 받았다. 남성에게는 ‘이슬람 의상’이란, 턱수염을 기른채 손질하지 않고, 짧은 디쉬다샤나 겔라비야를 입고 가죽 샌들을 신는 것을, 여성에게는 두터운 두건과 발가락까지 닿는 검고 긴 코트를 걸치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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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라바사회를 사회주의적 사상 및 진보적 프로젝트와 격리시키려 했다. 아랍사회가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 결국 아랍사회내에서 창족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런 미국이 설계한 계획을 따르고, 미국에 충성하고 미국의 지시를 받는 아랍세계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결과 이슬람 근본주의는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 102
키안도 “이란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독립을 앞당길 수 있는 수단으로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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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높은 취학률은 우선 여성의 결혼연령을 낮춘다. 출산율 또한 줄어, 여성 1명 당 평균 2명 밖에 낳지 않는다. 이란 혁명 초기, 출산 장려책이 두드러졌던 시기에 여성 1명 당 7명의 자녀를 낳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 121
여성의 입장을 지지하는 종교계 남성 페미니스트들
그들의 정체는 사제나 랍비,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이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상스러운 용어가 아니다. 자신의 종교 안에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는 이 남성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을 공개한다.
페미니스트, 종교인, 그리고 남성! 너무나 모순적인 조합이 아닐까? 그렇지만 19세기 말에 진행된 페미니즘 운동의 비약적 발전 이후, 소수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남성들 역시 남녀평등 투쟁에 언제나 동참해왔다. - 172
수피교도 평신도조합 ‘알-알라위야’의 종교지도자 셰이크 칼레드 방투네스는 이슬람교 내에서 여성의 입장을 오래전부터 옹오해왔다. 방투네스는 2003년부터 히잡은 종교적 의무가 아니며, 그저 역사적 맥락에 포함되는 하나의 권장사항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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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가톨릭교로 말하자면, 여성의 서품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적 사제들이 드물지 않다.- 174
2014년 1월 신규채택한 헌법에 ‘남녀평등’ 대신에 ‘남녀 간 상호 보안성’이란 단어가 명시될 뻔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한 이슬람 정당인 에나흐다당 국회의원이었던 하비브 엘루즈가 tv에서 내뱉은 구시대적 발언, 즉 여성의 할례를 ‘성형수술’처럼 말했던 것도 사람들은 기억한다.
이런 무개념한 발언에 뒤이어, 이슬람 정당이 합법화되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 저항했다. 2014년 12월 대선 때, 여성들은 몬세프 마르주키와 베지 카이드 에셉시 중 후자를 선택했다. 내재된 불안과 지하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더 잘 지켜줄 사람이 에셉시라도 판단해 압도적인 표를 준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시그마에 의하면, 에셉시를 지지한 유권자는 전체의 56%, 여성의 75%로 나타났다.
국제인권연맹의 명예회장 겸 기자인 수하르 벨하센은 “여성들이 튀니지에서 전례없이 이슈화되고 있다. 여성들은 투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다.. 헌법을 고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지는 못했다”고 토로했다. 의대교수인 엠마므니프는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며, 전혀 현대화가 진척되지 않은 지역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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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도로 회귀하는 추세는 아니다. 하지만 세력 간의 마찰이 비공개적 또는 공개적으로 종종 발생한다. 하나는 튀니스와 수도권 북부를 중심으로 한 정교분리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과 이슬람 종교를 중시하는 세력으로 후자는 부르기바 정권과 벤 알리 정권 때 숨죽이고 있다가 다시금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 191
반계몽주의에 대한 처방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튀니스 사람들은 모두 벤 알리 정권 이후 암울해진 교육부문을 긴급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가족부 장관 사미라 마아리는 “내가 취우선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아이들다! 현재 90%의 유치원이 사설이다. 이 유치원들은 주로 이슬람 단체나 코란학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감시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197
산타마르타아카티틀라 여성교도소에 수감된 1900명의 재소자는 교도소 생활에서 징계와 처벌에 의한 폭력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2009년 7월 진행된 글쓰기 교실에 참가한 재소자들이 밝힌 내용은 사뭇 놀라웠다. 일부 재소자들은 남성이 없는 이 공간에서,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심지어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 224
“저는 세 아이의 엄마고, 아이들을 무척 사랑합니다. 여기서, 바로 제가 갇힌 이곳에서 저는 엄마로서의 인생을 박탈당했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겼지요.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성적 정체감을 표현할 수 있었고, 이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간 억눌렸던 제 동성애주의가 비로소 가족과 사람들의 잣대에서 벗어나 여자들만 있는 속에서 해방됐습니다” 다른 재소자도 말했다. “저는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동료가 저를 만지고, 제게 관심을 보이고, 입을 맞추고 안아주며, 저와 함께해주고, 애정어린 말을 속삭여주는 것이 정말 좋아요”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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