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여성.가족/성.여성.가족-책과영화 97

엘레나 페란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읽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들었던 기분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안타까운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아쉬운 것도 아니고... 그냥...사는 게 뭔지 싶어요. 산다는 게, 살아간다는 게 뭔지 싶구요. 후회되거나 회한이 일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한두마디로 다 말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있어요. 아마도 릴라 때문일 거에요. 릴라와 그 주변 사람들 때문이기도 할 거구요. 릴라에게 좀 더 따뜻하고 다정한 아빠와 엄마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릴라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할 때 격려해주고 도와주려고 했다면 어떨까 싶어요.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쓰다듬어 주고, 우리 딸은 참 똑똑하구나 라며 칭찬을 해줬더라면 싶어요. 릴라가 부자는 아니어도 너무 가난하지도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학교를 가고 책을 읽..

엘레나 페란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고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가운데 세번째 책이에요. 어쩌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릴라나 레누의 모습을 닮았을 거에요. 누군가는 스테파노나 엔초의 모습을 닮았을 거구요. 피에트로의 엄마 같은 사람도 있을 거고 레누의 엄마 같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저는 니노를 보면서 제 모습이 여러번 떠오르더라구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으로...ㅠㅠ 그 많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삶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건...그만큼 내가 살아온 모습이기도 하고 내가 바라보거나 겪어본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느끼거나 생각하진 못했을 거에요. 대부분은 휙 지나가기도 하고 어~~~하는 사이..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를 읽고

재미 있는데 유익하다고 할까요? ^^ 제가 좋아하는 맷 데이먼이 나오는 시리즈는 완전 재미있어요. 그런데 유익할 건 별로 없어요. 제가 본이 가진 싸움의 기술을 배울 것도 아니고. ㅋㅋㅋ 근데 이 책은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많아요. 특히 릴라의 삶을 보면...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 해요. 좀 잘 됐으면 좋겠다 싶고...안타깝기도 하고...화가 나기도 하고...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인간의 삶이나 마음에 대해서는 참 배울 게 많은 책이에요. 특히나 여성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요. 에밀 졸라의 도 그러 면에서 참 좋았어요. 이런 마음일 수 있겠구나, 이런 것을 느꼈겠구나 싶어요. 소설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소설이 이 정도면 현실은 어떨까 싶어 아프기도 해요. 작가가 직접 겪..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고

정말 정말 재미나게 읽었어요. 레누와 릴라,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녀들을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뭐랄까...생동감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정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많은 것들이 저나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느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구요. 게다가 제가 잘 모르는 여성들의 삶과 마음에 대해서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세상과 사람이 다르게 보여요 뭐랄까...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할까요...아님 2차원의 세상이 3차원의 세상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나 자신이 겪었지만 그게 뭔지 잘 몰랐던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구요 어느새 11월이 시작되네요 연말이 되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 엘레나 페란테, , 한길사,..

다이애나 러셀, 질 래드퍼드, <페미사이드>를 읽고

읽기 힘든 책이었습니다. 말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책이 두꺼워서도 아닙니다. 내용이...여성을 살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보니...사건 사건에 관한 설명을 접하다보면... 읽은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어서 읽기 참 잘했습니다. 굳이 검색을 해 보지 않아도 여성 살해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헤어지자고 했다고, 이혼하자고 했다고, 산에 등산 갔다가, 집에서 있다가...칼에 찔려 죽고 맞아 죽고 불에 타서 죽습니다. 애인이거나 남편이거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등등의 남자들이 여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요즘 인도에서는 여성을 집단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한국과 인도하면 아주 멀리 있는 나라인데,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것은 왜 이렇게 닮았는지 ..

<더 컨덕터>를 보고

많이 본 건 아니지만...제가 지금까지 본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딱 한 명 빼고 모두 남자였습니다. 경기필을 지휘하던 성시연이 유일한 여자였지요.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는 윌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지휘자가 남자이던 시대에 여자가 지휘자가 되겠다고 하니 모두들 비웃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그 비웃음이 참 어이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전혀 연습도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지휘를 하겠다고 한다면야 그 비웃음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겠지만, 그냥 여자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면 그건...좀... 여자라고 비웃고 안된다고 하더니...막상 어떻게든 노력해서 해보려고 하면 선생이라는 작자가 그저 찝적대기나 하고. 지가 찝적대는 걸 거절 했다고 두고 두..

<공수도>를 보고

정말 재미 있었어요. 다른 무엇보다 채영이라는 인물이 정말... ^^ 채영은 어릴 때부터 공수도를 배웠어요. 그리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징계를 먹고 그래요. 채영이라는 인물이 정말 좋았던 이유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점이에요. 여자니까 얌전해야 되고 여자니까 참아야 되고 여자니까 울어야 되고 여자니까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없는 거에요. 오히려 위기에 처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나쁜 놈들과 싸움박질을 해요. 얻어 처맞았다고 울며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을 구원해줄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얻어 처맞았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두들겨 패는 거지요. 통쾌해요. ^^ 힘에는 힘,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 뭐...그런 것보다는...

정승오, <이장>을 보고

이장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마을 이장里長을 말하는 줄 알았어요. 영화를 보니 이장里長이 아니라 묘를 옮긴다는 이장移葬이더라구요. ^^ 참 참 재미나고..슬프다기 보다는...참 참 서글프기도 한 영화였어요. 평화롭고 따뜻하고 행복한...제게는 환상과도 같은 가족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고 보고 들은 현실 가족의 모습 같았거든요. 고립 1 - 큰 아빠 영화의 주된 배경은 어느 섬 마을이에요. 섬 마을이라고 하면 한가롭고 아늑하고 고요한 느낌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햇살 비치는 어느 섬 마을, 선착장 근처에서는 강아지들이 뛰어놀고, 배들은 통통통 소리를 내며 오가는... 그런 것도 섬 마을의 모습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모습, 그러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거에요. 큰 엄마..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를 읽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좋은 책입니다. 제가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경험할 일이 없는 것들이구요. 왜냐하면 제가 남자니까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책을 읽을 필요는 없겠지요. 내가 잘 모르는 거고 내가 경험해 보기 어려운 거니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도 한 줄 한 줄 줄을 그어가면 책을 읽는 거구요.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생물학적이고 성적인 차이에 의해서 말이에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이나 가라'라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저보고 누가 '장가나 가라'라는 말을 한 적은 없어요. 저보고 가족들 밥과 옷과 이부자리를 잘 챙기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야구소녀>를 보고

주수인은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고, 야구하는 여자에요.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벌써부터 맘이 살짝 답답해지네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자 야구하는 여자라... 영화 에서 빌리는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고, 발레하는 남자지요. 빌리의 아빠는 광산에서 일하면서 치매인 어머니와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의 주수인 엄마는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서 식당에서 일하며 남편과 자식들을 부양하고 있어요. 부모가 가난하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지만...음...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예체능을 전공한다고 하면 대뜸 '집안 형편이 좀 되는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거지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릴 때 여러 해 동안 바이올린을 했대요. 꽤나 잘 했었지만 결국은 포기했구요. 왜냐하면 돈이 너무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