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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고

순돌이 아빠^.^ 2020. 11. 1. 09:03

정말 정말 재미나게 읽었어요.

레누와 릴라,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녀들을 둘러싼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뭐랄까...생동감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정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많은 것들이 저나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느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구요.

게다가 제가 잘 모르는 여성들의 삶과 마음에 대해서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세상과 사람이 다르게 보여요

뭐랄까...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할까요...아님 2차원의 세상이 3차원의 세상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나 자신이 겪었지만 그게 뭔지 잘 몰랐던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구요

 

어느새 11월이 시작되네요

연말이 되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에요 ^^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한길사, 2020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한무리의 사내아이들이 들판에 모여 놀고 있었다...그는 여자아이들을 봄녀 항상 돌멩이를 던졌다. 사내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자신들보다 학교에서 뛰어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 34

사내아이들의 돌팔매질이 시작되면 여자아이들은 모두 도망치기에 바빴지만 릴라는 달랐다.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계속 걸어가다가 이따금 멈춰서기까지 했다. 릴라는 날아오는 돌의 궤적을 자세히 관찰하고 침착한 태도로 피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우아함이 느껴지는 몸놀림이었다. 
...
나는 처음에는 건물 모퉁이에 숨어서 릴라가 오는지 훔쳐보았다. 하지만 릴라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 돌멩이를 집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녀와 함께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 35

그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아니,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집에서 나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딸이었고 내 동생들도 나를 좋아했다. - 50

선생님은 마리사 사라토레와 카르멜라 펠루소,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 칭찬을 많이 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환하게 빛날 수 있게 해주셨고 더욱 예의바르고 성실하며 명민한 아이가 되도록 용기를 붇돋아주셨다. 
...
시를 암송하거나 구구단을 외우거나 곱셈과 나눗셈을 하거나 알프스의 주요 산맥으로 마리팀 산맥, 코티엔느 산맥, 그라이언 산맥, 페나인 산맥 등이 있다고 읊으면 선생님들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 53, 55

나는 두 가지 고통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고통, 즉 인형을 잃어버려서 느끼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고통, 즉 릴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 65

초등학교 졸업시험을 앞둔 어느 날, 릴라는 내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실행에 옮길 만한 용기를 내지 못했을 또 하나의 일을 제안했따. 학교 수업을 하루 빼먹고 동네 밖으로 나가보자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기억이 닿는 한, 나는 4층 정도 높이의 하얀색 건물들과 뜰, 교구, 동네 공원의 범주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를 느껴본 적도 없었다. 들판 너머로는 기차며 자동차, 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나 선생님이나 나 자신에게조차 대체 저 많은 자동차며, 트럭, 기차들은 어떤 도시, 어떤 세계를 향해 가는 것인지 물어본 적도 없었다.
...
전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동네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잘 아는 그 경계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 91

아직 남은 시간은 많았고 가족 중 누구도 우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나는 항상 그날 여행의 전반부를 생각한다. 터널에서 나온 순간과 끝없이 펼쳐진 곧은 길을 마주했을 때의 그 느낌. 리노는 그 길의 끝에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미지에 노출된 듯한 그 느낌을 즐겼다. - 94

나는 비가 와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그 거리감은 모든 걱정과 인간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했다. - 99 

"이제 뭘 할 거니?"
"일자리를 찾아봐야죠"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넌 공부를 계속해야 해"
...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정말 부모님께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러 오면  부모님은 또다시 싸우기 시작할 테고, 나는 그런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어머니를 돕고, 문구점에서 일하고, 통통하고 건강하지만 못생긴 여드름투성이의 내 얼굴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올리비에로 선생님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빈곤 속에서 뼈빠지게 일하면서 말이다. - 157

아다와 카르멜라와 나는 솔라라 형제와의 일이 일어난 후부터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우리에게 던지는 저속한 말을 못들은척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릴라는 달랐다. 그녀와 함께하는 일요일 산책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면 시선을 맞받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뭐라고 하면 정말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멈춰 서서 가끔 호기심 어린 태도로 대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우리에게 언지는 저속한 농담을 오히려 릴라에게는 하지 않았다. - 188

한동안 아무도 신발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릴라는 자신의 역할은 어머니를 도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빨래를 해서 너는 것이라고 마음을 정리했고 다시는 구둣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
그러고는 릴라에게 자신의 양말이며 속옷, 셔츠를 서랍에 잘 정리해놓으라고 하고 일을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화를 냈고 여자애가 셔츠 하나 다리지 못하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릴라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말대꾸하지 않고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다. - 237

릴라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이따금 신발을 숨겨둔 방으로 가서 신발을 어루만져보았다. 잘 만들었건 못 만들었건 신발을 완성했다는 사실과 이 신발이 자신이 그린 글미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에 감탄하곤 했다. - 238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릴라와 공부하고 릴라와 대화하는 것이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를 의미한다. 동네의 범주를 벗어난 외부 세계의 사물과 사람, 풍경과 책에 쓰인 사상을 대하면서도 릴라는 일종의 정신적인 지지대이자 자극제로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의미한다. - 246

눈 깜짝할 새에 리노가 주먹 한 방으로 그를 쓰러뜨리고는 소리쳤다.
"나보고 뭐라고 했어? 제대로 못 들었으니 다시 말해봐. 파스콸레, 너는 이 자식이 날 뭐라고 불렀는지 들었어?"
우리들은 웃다가 말고 갑작스레 두려움에 떨었다.
...
"저 자식이 나보고 촌놈이라고 한 것 들었지? 나한테 촌놈이라고 했다고! 촌놈!"
리노는 다시 헉헉대며 말했다. - 254

나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릴라에게 키스하고 릴라의 숨결을 마시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릴라만 원하면 그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는 것을, 그의 눈에 릴라는 여성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여인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264

그렇다고 리노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리노는 릴라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했따. 릴라를 만날 때마다 새로 생긴 멍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릴라도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 268

아저씨는 마르첼로의 제안은 릴라의 미래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릴라는 아버지 못지않은 침착한 태도로 마르첼로와 약혼하거나 결혼하느니 저수지에 빠져 죽는 편이 낫다고 했다.
...
페르난도 아저씨는 이미 침착성을 잃고 릴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릴라가 그 정도로 중요한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녀를 위해서라도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버리겠다고 했다. - 272

7월의 마지막 열흘간,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훗날 인생을 살아가며 종종 느끼게 될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 277 

나는 그에게 내 지적인 면모를 보이고 싶어서 그의 말을 끊고 내 의견을 이야기해보기도 했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니노는 내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니노가 말하는 내용은 내가 다루기 힘든 주제이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니노처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주제였다. 니노는 강한 억양의 표준어로 무미건조하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 285

마르첼로는 릴라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약혼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약혼자라기보다는 자신이 릴라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행동했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다가 이제는 그녀에게 억지로 키스하려 하기도 하고 낮에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는지, 다른 남자와 옷깃이라도 스치지 않았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 301

"너 날 가지고 노는구나? 예전에 네가 날 칼로 위협했떤 거 기억해? 똑똑히 기억해둬. 네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면 나는 너를 위협하는 걸로 끝내지 않을 거야. 널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어"
릴라는 어떻게 해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무기를 몸에 지녔다. 하지만 실은 그녀도 두려웠다. - 302

나는 한없이 방황했고 종종 이런저런 공상에 잠기곤 했다. 한 번은 알폰소와 함께 메리디오날레 가를 걷는데 문득 그가 도시의 모든 위험에서 나를 지켜주는 기사처럼 느껴졌다. 릴라와 나를 세상의 사악함에서,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우리들의 인형을 되찾으러 현관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그 사악함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카라치 집안의 두 형제라는 사실이 멋지게 느껴졌다. -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