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회인면에 있는 [오장환 문학관]을 찾았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더라구요. 동네 구경하고 점심이나 먹고 오자 싶어 걸었습니다. 도시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화려함도 덜하지만, 시골 마을에 비하면 면사무소와 우체국도 있는 제법 번화한 곳이라고 해도 될까요.
여행을 하다 보면 밥을 사 먹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지역 특산물을 파는 식당보다는 그저 오래된 듯 보이는 식당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입의 맛보다는 사람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겠지요.
오랜 세월 사람과 함께 살았을 법한 [회인반점]에 들어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니 난로 곁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먼저 반기시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할머니는 난로 곁 식탁에 앉으라고 권하십니다. 고동색 잔에 따뜻한 물도 따라 주시네요. 요즘은 보기 힘든 사기로 된 ‘엽차잔’입니다. 엽차잔을 홀짝이며 보은군청에서 만든 신문을 보니 60~70대 젊은 노인들은 들어올 수 없는 80대 이상 노인만을 위한 경로당이 생겼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80대 이상 노인만을 위한 경로당이라...
짬뽕을 시켰더니 할머니께서 김치며 춘장 등을 널직한 그릇에 듬뿍 담아다 주십니다. 짬뽕을 먹으며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눴습니다.
미니 : 장사 오래 하셨나 봐요
할머니 : 한 45년 정도 했어요
미니 : 45년이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셨네요. 처음에 짜장면이 얼마였는데요?
할머니 : 그때... 15원이었나... 기억도 안 나네요. 그래도 예전에 참 좋았지요. 주방하고 홀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배달하는 직원도 따로 있었으니까요. 장날이면 가루를 두 포대씩 쳤으니까요.
순간, 가루가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할머니 : 요즘은 면을 기계로 뽑지만 (손을 아래위로 휘저으시며) 그 때는 장날이면 하루 두, 세 포대씩 손으로 면을 뽑았지요.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줄 서서 앞 사람 먹고 나면 얼른 먹고 그랬지요.
미니 : 그때는 장사가 잘 됐나 봐요.
할머니 : 예전에는 그랬지요. 여기 방들 보시면 알잖아요.
이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눈에 띄었던 것이 큰 방문들입니다. 옛 시절을 다루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방들이었지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어이 오랜만이네’ 하며 쏘주잔을 부딪고, 젓가락 두드리며 노랫가락 뽑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 : 근데 요새는 사람이 없어요. 노인들만 남고...초등학교 3개를 합쳐서 1개를 만들었는데도 6~70명밖에 안 돼요. (손으로 가게 밖을 가리키며) 오늘이 장날인데... 가게들도 많이 문 닫았어요.
미니 : 오늘이 장날이에요?
장날이라면 사람과 물건들이 북적거려야 할 건데, 장날 점심시간 동네를 돌아다녀 봐도 그릇과 농기구 파시는 분만 길에 물건을 널어놓고 계실 뿐 몇 사람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파는 사람은 있는데 사는 사람은 없는 장날.
미니 : 할머니 사진 한 번 찍어 될까요?
할머니 :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에이 사진은 무슨 사진이요. 옛날에는 누가 사진 찍을라고 하면 서로 자기 찍으라고 했지만 요새는 사진은 무슨... 저기 옆에 가면 무슨 문학관인지 있다고 하니까 거기나 가 보세요.
미니 : 안 그래도 거기 갔었는데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밥 먹으러 온 거에요.
웃으시며 배웅하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 다시 거리를 보니 더 썰렁하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간판 오래된 것이야 그렇다 치고,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간다니.
할머니와 배추
[회인반점]에서 나와 동네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경로당 앞에서 할머니들이 김장을 하고 계십니다. 잠깐 서서 구경하고 있으니 한 할머니께서 먼저 말을 건네십니다.
할머니 : 어디서 왔어요?
미니 : 아 네 여행 중이에요.
할머니 : 저기 문학관 있으니 거기 가 보세요.
미니 : 안 그래도 그러려구요. 김장하시나 봐요.
할머니2 : 경로당 김장할라구요.
미니 : 몇 포기 하시는데요?
할머니2 : 50포기요. 경로당에서 같이 먹을라구요.
갑자기 저쪽 편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할머니3 : 배차 살라먼 우리 것도 좀 사.
미니 : 네?
할머니2 : 아이고. 여행 왔다는디.
할머니4 : 배차가 문제여.
순간 배차라는 게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배추를 배차라고 하나 봅니다.
할머니5 : (속이 꽉 찬 배추에 소금을 뿌리시며)이게 500원이여, 500원
할머니3 : 배차 살라먼 우리 것도 좀 사.
미니 :아 네...
할머니2 : 그러지 말고 배차 맛이나 보고 가.
할머니는 허연 배추 속을 꺼내 물에 씻어 입에 넣어 주십니다.
미니 : 작년에는 배추 값이 그리 비싸서 난리더니.
할머니4 : 올해는 비도 적당하고 농사가 잘 됐어. 배차가 문제여...
지난해 배추 값이 하늘 같이 올라 그 난리를 피우더니 올해는 속이 저리 꽉 찬 배추 한 통이 라면 한 봉지 값보다 못 한가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 뒤로 하고 할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사라져가는
그제는 한나라당이 한미FTA를 통과 시켰습니다. 농업과 농민에게 큰 피해가 갈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랬지요. 있는 놈 주머니에 돈 채우자고 없는 놈 주머니를 터는 겁니다.
국익이요?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식으로 하자치면 ‘지랄들을 하십니다 그려’
농민들이 이대로는 못 살겠다 외치니까 ‘옛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면서 피해 대책이라고 돈 다발을 툭 던지고 있지요.
높으신 분들은 이런 마음일 겁니다. ‘농업이 뭐 중요해? 자동차 팔고 핸드폰 팔면 되지!’ ‘농사짓는 것들이 되게 시끄럽네.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입이나 닥치고 있지.’ ‘아이고 저 노인들 얼른 가셔야 할 텐데...’
농촌에서 사람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주머니 채우기 바쁘신 분들이 무지랭이들 사는 꼬라지에 관심 가지실 여유가 어디 있으시겠습니까.
이 마을 한 가운데는 쓰러진 집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는지, 왜 저리 쓰러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집이 쓰러진 건지 사람이 쓰러진 건지도 모를 일이구요.
지난 세월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쓰러져 가겠지요
사라져 가겠지요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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