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신나게 배드민턴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행신동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저기서 할아버지 한 분이 수레에 폐지를 잔뜩 싣고 걸어오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가만히 보니 지난번에 수레를 밀어드린 적이 있는 분입니다.
할아버지도 알아보셨는지 힘없는 눈빛이지만 저를 바라보시며 걸어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 :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 담배는 피시는지...
나 : 아니요...담배 안 핍니다...
할아버지 : 그래요...
정부에서는 사람들 주머니를 더 털려고 담배 세금을 왕창 올렸지요. 할아버지가 담배 한 갑 사 피우시려면 도대체 저 폐지를 얼마나 모아야 할까 싶습니다. 누구는 쉽게도 남의 주머니를 털고, 누구는 그나마 즐기던 담배 한 대도 못 피우게 된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나 : 어르신, 식사는 하셨는지요...
할아버지 : 아니요
나 : 그럼 제가 식사 한 번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고 나서부터 머리속이 빙빙 돌아갑니다. 어딜 가면 이 아침 시간에 따뜻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 수레는 어디에 어떻게 세워 놓으면 좋을까도 싶습니다.
할아버지 : 식사 말고...돈으로...
할아버지가 지금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돈으로 드리는 것이 더 낫겠다 싶습니다. 얼른 지갑을 열었습니다. 3만원이 있네요. 돈을 꺼내서 할아버지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혹시나 흐르지나 않을까 싶어 호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습니다.
할아버지 :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나 : 네...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눈 내리는 날 우체국 앞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 사람은 무거운 수레를 끌고,
한 사람은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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