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하네다는 미스터 오모치의 상사였고, 미스터 오모치는 미스터 사이토의, 미스터 사이토는 미스 모리의, 미스 모리는 나의 상사였따. 그런데 나는, 나는 누구의 상사도 아니었다.
이걸 다르게 얘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미스 모리의 지시를 받았고, 미스 모리는 미스터 사이토의, 미스 사이토는 또...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정확성을 위해 덧붙이자면, 밑으로는 위계 서열을 뛰어 넘어 지시가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유미모토사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지시 아래 있었다. - 5
그다음 그는 한쪽 문을 가리키면서 이 문 뒤에 사장님인 미스터 하네다가 있다고 엄숙하게 말했다. 사장님을 만날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했다. - 7
사이토 씨는 결과물을 읽어 보더니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나직하게 뱉고는 찢어 버렸다.
“다시 해요”
...
나는 그 뒤 몇 시간 동안 이 골퍼에게 보내는 비즈니스 서신을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이토 씨는 후렴 같은 그 소리를 내뱉는 것 외에는 전혀 편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내가 편지를 완성하는 족족 찢어 버렸다. 나는 매번 새로운 편지 양식을 고안해 내야 했다. - 9
-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열린책들
익숙해서 당연한 것 같지만
익숙하다고 당연한 것은 아닐 거에요
또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제도일 거구요
사람을 지위에 따라 나누고
그 지위에 위와 아래가 있고
위가 아래를 향해 지시를 하면
아래는 무조건 거기에 따라야 하는
왕정 국가에서 왕이 백성에게 무어라고 하면
백성은 그 지시나 명령에 따라야겠지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시민들에게 무어라고 하면
시민들은 그 지시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할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뭐라 뭐라 해도
많은 시민들은 대통령의 뜻과 다르게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자기 할 말을 다 하지요
당신은 지배하는 자이고 지시하는 자이며
나는 지배 당하는 자이고 지시를 받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당신이 대통령이면 당신이 맡은 역할만 잘 하면 되는 거지
그 밖에 특별한 권한이나 힘이 갖는 거는 아니라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앞의 글은 벨기에 국적의 글쓴이가
일본의 한 기업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거에요
벨기에 국적의 글쓴이가 일본에서 경험한 것인데도
한국 사람들은 참 잘 이해하고 공감할 것 같아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와 많이 닮았나봐요
대통령과 시민이 서로 역할이 다른 동등한 개인이라고 보지 않고
대통령은 왕이고 시민은 백성이라고 본다면 이상하겠지요
그런데 가족 안에서 학교에서 기업에서 동호회에서
사람을 나이나 지위에 따라 위와 아래로 나누고
지배하고 지시하며 차별하고 무시하고 그래요
어찌보면 국가의 민주화 정도보다 가족이나 기업의 민주화 정도는 한참 느린 것 같아요
시민이 대통령에게 만나고 싶다고 하고, 만나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거는 이상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자식이 부모에게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고
신입 직원이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만나자고 하는 거는요?
시민이 대통령을 가리키며 '문재인이 오늘 **을 했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에요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님 각하께서 오늘 아침 진지로 호박죽을 드셨다'라고 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학생이 교사를 가리키며 '000이 오늘 **을 했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저 새끼 정신 나간 거 아니냐고 욕을 먹지 않을까요?
시민은 대통령의 이름을 불러도 되는데
학생은 교사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되는 이유는 무얼까요
그 '이름'이란 것에 신비한 힘이 있을 걸까요
안드로메다 은하의 어느 별에서 온 생명체가 이 모습을 본다면 참 이상하다고 할 거에요
지구별의 인간에게는 이름이란 게 있는데
저 인간은 저 인간의 이름을 불러도 되고
저 인간은 저 인간의 이름을 그냥 불러서는 안되는 건 왜일까? 싶을 거에요
마치 황제가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이용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면
백성들은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마냥
누구에게는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일이겠지요
지시하고 복종하며 무시하고 괴롭힘당하는,
인간을 그런 지위로 나눠 놓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히고 답답한 일인지 몰라요
미세먼지가 맨날 가득한 곳에 산다고 해서
그것이 편안하고 시원한 거는 아니겠지요
양반은 평민에게 함부로 지시를 하고 무시를 하고 욕을 해도 괜찮다면 어떨까요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함부로 지시를 하고 무시를 하고 욕을 해도 괜찮다면 어떨까요
말도 안되다고 하겠지요
사람이면 사람이지 뭐가 다르냐고 할 거에요
그렇다면 가족 학교 기업 동호회에서
이런 저런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위 아래로 나눠놓고
지시를 하고 무시를 하고 욕을 하는 것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통령과 시민이 서로의 역할이 다를 뿐
근본적이고 태생적인 지위의 차이가 없듯이
그게 기업이라고 해도 서로의 역할이 다를 뿐
근본적이고 태생적으로 동등한 인간인 건 아닐까 싶어요
또 서로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배려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활력 있고 생기가 도는 관계나 모임이 될 수 있겠지요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게 아니라
울어도 우는 게 아닌 게 아니라
웃는 건 기쁘다는 거고
운다는 건 슬프다는 것일 수 있는
그런 관계나 모임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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