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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도 지위도 화려함도 벗고 나면

순돌이 아빠^.^ 2019. 10. 31. 15:06

그저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고 싶은

쉽게 외로움을 타는 그런 사람 아닐까요

당신도 나도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자네는 나의 이 변신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네 - 135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나 팔을 벌려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끝이 뾰족한 침실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 

...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주교올시다...> 그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따. 주교라니? 황금빛 상제복과 주교관과 십자가, 찬란한 모조 보석의 장신구는 어디로 갓단 말인가...잠옷 차림의 주교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흥, 속옷 바람인데 주교가 어디 있어! 들어오쇼, 노형!> - 298


그는 말을 끝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은 모양이었다....이 작은 노인이, 거의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평생 작업의 결실이라는 것을 그렇게나 선뜻 내주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마치 내 대답에 그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보람 있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달려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또 다른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 이론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할 것입니다>내가 대답했다.


주교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그의 전 생애를 정당화시켜 준 셈이었다. - 301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 책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