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들어와 깊이 뿌리내리는 느낌입니다.
미국에 있는 하디시즘 공동체와 관련 있는 다큐멘타리에요. 영화 <그리고 베를린에서>와도 많이 닮았습니다.
한 여성은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그 공동체 또는 무리를 떠납니다. 아이가 7명인 상태에서요.
무리를 떠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과 그 공동체 사람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지요. 아이들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녀는 유대인임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종교에서 멀어지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멀어지고 싶었던 것은 남편의 학대이고, 여성을 오직 애 낳고 키우는 도구로 여기는 무리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겁니다.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잃게 했습니다.
거액을 주고 변호사를 고용한 남편은 재판을 통해 아이들을 데려가지요. 그녀에게는 가끔 아이들을 만나 1시간정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가해자가 많은 것을 잃고 그 무리에서 떠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떠나고 손가락질 받고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남편이 속한 유대인 공동체가 남편을 지원하는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를 감시하고 위협하는 일에도 나섭니다.
남편과 아내도 공동체의 일원이었지만 똑같이 소중한 일원은 아닌 거지요. 남편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아내를 배척하는 공동체였던 겁니다.
김학의 사건이 떠오르네요. 가해자는 당당하게 얼굴을 쳐들고 다니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숨어지내지요. 게다가 가해자가 속한 무리는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지켜줍니다.
저는 유대교가 어떤지, 하디시즘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뭔지 잘 모르니까요.
다만 <홀로 걷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그 무리를 떠나 낯선 삶들 속에 놓이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고 안타깝습니다.
폭력에 대한 피해는 물론이고,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 왔던 사람들과 사회를 갑자기 떠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내가 믿고 의지했던 가족들,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았던 친구들, 자주 가던 가게들, 늘 오가며 걷던 길들...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뀐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당장에 무얼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요.
그리고 때로는 많이 외로울 거에요. 내가 괜히 이 길을 선택했나 싶고...다시 돌아갈까도 싶고...어쩔지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혼자 옛 사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의문을 품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주변 사람들이 하듯이 늘 그렇게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나의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내가 해야 한다고 배웠고, 우리가 할 일이라고 알아왔던 것들을 계속 하며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냥 참기보다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무섭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을 향해 도전한다는 것이 무조건 해피 엔딩을 보장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나는 내 삶에 무엇일까요?
영화의 원래 제목이 <ONE OF US>더라구요. '우리 가운데 한사람'정도 될까요?
뜨거운 순대국 그릇을 쏟지 않고 나르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그 사람이
손님 없는 잠깐 사이 편의점 한 귀퉁이에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먹고 있는 그 사람이
하루에도 수백번 고객님의 포인트 적립 번호를 물으며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다 우리 순돌이를 보고 '저기 예쁜 강아지네~'하며 손짓을 하는 그 사람이
바로 우리 가운데 한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괴롭히고 옥죄던 관계와 과거로부터 벗어나
낯설고 두려운 삶이지만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 하나의 사람.
'사랑.평화.함께 살기 > 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헨리크 입센, <들오리>를 읽고 (0) | 2021.09.19 |
---|---|
숀 펜, <인투 더 와일드>를 보고 (0) | 2021.09.10 |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을 읽고 (0) | 2021.07.24 |
헨리크 입센, <민중의 적>을 읽고 (0) | 2021.07.18 |
벨 훅스, <올 어바웃 러브>를 읽고 (0) | 202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