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용산 철거민 살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례는 치르지 못하고 있고, 유가족들은 몇 달 째 용역과 경찰의 횡포에 시달리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하고 계셨습니다. 또 그 자리에는 신부님들이 더운 날 천막을 쳐 놓고 단식기도를 하고 계셨구요.
여러분은 종교를 갖고 계신가요? 전 없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특별한 불만이나 호감 같은 것도 없습니다. 다만 다른 종교에 비하면 기독교는 제게 인상이 좀 안 좋은 편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야말로 ‘일부’ 기독교인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종교라는 것이 어차피 신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이다 보니 당연히 기독교인들도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팔레스타인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제게 기독교가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계기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과 수 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시청 앞에 모여서 침공을 지지하고 한국군을 얼른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을 외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일부 기독교인들의 비뚤어진 마음은 지금도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습니다.
비뚤어진 마음
9.11사태이후 세계는 종교갈등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4천 년 전 예루살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한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갈등이 역사적으로 증폭되고 또 증폭되어 급기야 지구적 갈등으로 팽창한 것이다. - 최바울, ‘이슬람 국제운동과 글로벌 지하드’ 가운데
외국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행진을 주도해 유명해진 인터콥(http://www.intercp.net)이라는 단체의 최바울님이 쓰신 글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기독교인이시라면 최바울님의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로 9․11을 무슬림들이 저질렀다고 해도 그들이 원했던 것은 기독교 국가로써의 미국의 파괴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억눌렀던 제국주의 국가 미국에 대한 복수였겠지요. 9․11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아니라 정치 문제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봐도 예수를 선지자 가운데 한 분으로 높이 사는 무슬림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무턱대고 미워할 리가 없겠지요.
이슬람은 소위 양동작전으로 세계를 이슬람화 하려고 한다. 양동작전은 한 쪽에서 이슬람의 확산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폭력으로 제거하는 등 지하드를 실천하는 무슬림들과 또 다른 한 쪽에서 이러한 무슬림들을 일부 무분별한 광신자들로 정죄하는 위장된 성명을 발표하고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등 대부분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온건한 무슬림들의 작전이다. 서양 학자들은 이것을 '제3의 지하드' 혹은 '스텔스(Stealth, 위장) 지하드'라고 한다. - 이만석 목사, ‘예멘 테러 사건과 이슬람의 지하드’ 가운데
이만석님의 글을 읽어 보면 마치 무슬림들이 세계를 이슬람화 하기 위해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폭력적으로 이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이만석님은 무슬림들을 향해 ‘그들이 진짜 이슬람의 정체를 알게 되면 이슬람을 떠나든지 아니면 지하드 용사(무자헤딘)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십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살해된 뒤 한국인들의 욕설과 위협이 계속되자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성원 앞을 지키고 있는 한국 경찰. 2007년 여름
제가 알고 있는 이슬람, 제가 알고 있는 무슬림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무슬림들 가운데도 탈리반과 같이 잔인하고 폭압적인 이들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하지만 오직 미국과 삽질만을 사랑하시는 이명박과 조용기 같은 기독교인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종교에 별 관심 없는 무슬림들이 있는 것에 비해 이슬람을 전하려는 무슬림들도 있지만 그들이 세계를 이슬람화 할 목적을 가지고 대단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이들은 아닙니다. 기독교 선교를 하는 이들이 무슨 음모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으로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분들이 그들의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이스라엘 성경연구소](http://www.kibi.or.kr)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의 주장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 증거로 세계 각지에 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유대인들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직접 러시아로 가서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이주하라고 권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 아시죠? 거기에 보면 무서운 능력을 가진 반지가 나오고 인간들이 그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다툽니다. 그런데 누군가 만약 영화에서 본 것을 가지고 진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절대 반지를 찾아 종로 귀금속 상가를 뒤지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2천 여 년 전에 사라진 이스라엘 왕국을 1948년에 건국된 이스라엘과 혼돈 하고, 누군가가 쓴 책을 들고 거기에 나오는 말을 곧이곧대로 현실에 적용하려 한다면 제 마음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사랑하시길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무슨 일을 지금 하고 있는지 모를 것 같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추방하며 건국된 나라입니다.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과 이스라엘이 조상이 누구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유대교를 믿든 아니든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무조건 이스라엘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동안 정작 1948년과 1967년 전쟁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스라엘이 귀환을 거부하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이스라엘 성경연구소의 대표인 송만석님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나고 예루살렘이 회복되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A.D. 70년 이후 1900 여 년 동안 이방인들의 발에 밟히던 예루살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들어오고 회복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예루살렘은 지난 2천여년 동안 유대, 이슬람, 기독이 공존하던 곳을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점령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이방인의 발에 밟히던’ 곳이며 ‘회복’이란 말입니까?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이 옛 일본의 땅을 회복한 것이란 말입니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
미국의 한 상원의원(James Inhofe)은 2002년 상원에서 이스라엘이 1967년 차지한 땅을 돌려 줄 필요가 없다면서 그 이유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문제라고 했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능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본 적도 없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그런 말씀 정말 하셨어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전 하나님과도 싸울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 운운 했다면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겠지요.
소수 기독교인의 모습을 두고 전체가 그런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소수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그것이 점점 퍼져나갈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 기독교 안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감싸셨던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종교라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어느 목사의 말보다, 어느 책의 글귀보다 더욱 깊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삶을 직접 바라보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십자가가 즐비한 한국의 밤풍경을 보면서 저희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야 뭐야!’라며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그 붉은 불빛을 보며 외로운 마음에 위로를 받고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