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낄리야의 장벽 앞에서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서북쪽에 보면 깔낄리야라는 곳이 있습니다. 인구 4만5천 명 정도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적어도 장벽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진1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 장벽 너머도 예전에는 깔낄리야였습니다.
2003년 이스라엘은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며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벽을 완성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직 한 곳의 통로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사진이나 지도를 보면 도시가 호리병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벽이 생기기 전에 깔낄리야는 서안지구의 식량 바구니라고 불렸을 정도로 농업이 활성화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농산물 유통마저 가로 막아서 농민들이 찻길에 나와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3년 이스라엘은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며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벽을 완성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직 한 곳의 통로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사진이나 지도를 보면 도시가 호리병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벽이 생기기 전에 깔낄리야는 서안지구의 식량 바구니라고 불렸을 정도로 농업이 활성화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농산물 유통마저 가로 막아서 농민들이 찻길에 나와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진2 이스라엘 군의 총격 때문에 주민들은 가까이 가는 것도 두려워하는 장벽
이스라엘이 장벽을 쌓는 것은 역사적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1948년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의 사람을 내쫓고, 이어 67년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내쫓을 수는 없었던지 그 다음 찾아낸 방법이 점령촌입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계속해서 땅을 몰수하면서 이스라엘인들의 주거지를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생각해 낸 방법이 장벽입니다. 어차피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을 수 없다면 계속해서 땅을 몰수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차단, 고립 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낸 것이 장벽입니다.
크게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 장벽 2가지로 공사를 진행 중인데, 공사가 끝나고 나면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11%만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나마도 서안 지구는 3~4개로 찢어지고, 서안 지구와 가지 지구는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사진3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나 한 잔하고 가라던 깔낄리야의 농민
장벽의 모습이며 장벽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데 주변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저희에게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장벽 너머에 제 땅의 50%가 있고 이 쪽 편에 50%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장벽 너머 땅으로 일을 하러 갈 수는 없죠. 처음 장벽이 들어섰을 때는 여기서도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사격을 해 대서요. 그나마 지금은 하루에 몇 시간씩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큰 돈을 들여 새로 작물을 심었는데 하루 밤에 군인들이 와서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농민의 형은 이스라엘 군인에게 살해당했고, 조카는 감옥에 있고, 자신의 땅의 절반은 빼앗긴 채 그나마 남아 있는 땅에서도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사진4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콘크리트 호리병 속에 갇힌 깔낄리야를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라말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체크 포인트를 4번 통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체크 포인트를 모두 5번 통과하고 1번 통과하지 못한 날입니다.
아침에 제이유스에 있는 쉐리프 오마르씨의 밭에 가기 위해 장벽 사이에 있는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군이 거부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안 된다는 것뿐입니다.
사진5. 이동식 체크 포인트의 모습. 수시로 벌어지는 체크 포인트와 검문, 팔레스타인 마을에 대한 수색과 체포. 팔레스타인 수배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제이유스에서 깔낄리야로 오는데 첫 체크 포인트를 만나 40분을 기다렸습니다. 이동식 체크 포인트(flying checkpoint)였기 때문에 언제 생겼다, 언제 없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체크 포인트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신분증을 내보여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팔레스타인 안에는 수 백 개의 국경이 여기도 생겼다, 저기도 생겼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 노란색 번호판을 단 이스라엘 차량은 초록색 번호판을 단 팔레스타인 차량이 아무리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옆으로 쉬익 빠르게 지나갑니다. 노란색과 초록색의 차이는 그만큼 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질 급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오시지 마시든지 아니면 오셔서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것에 적응하시든지 하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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