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이런 것이 삶이에요.”

순돌이 아빠^.^ 2009. 10. 8. 19:20

제닌에서의 하루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가운데도 가장 위쪽에 있는 도시 제닌을 찾았습니다. 2002년에 있었던 제닌 학살과 ‘아나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등을 통해 제닌은 저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사진1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며칠 전에 이스라엘 군이 와서 파괴 했습니다. 두 사람이 죽었죠. 이스라엘은 그들이 이슬람 지하드 소속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 곳은 빵집이었습니다. 사건이 있고 다음 날 여기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머리 하나와 팔 하나를 찾았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 보는 저였지만 잘려 나간 머리 사진을 보자고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돌려 보니 며칠 전 헤브론에서 본 알 자지라 뉴스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뉴스의 현장(?)을 떠나 우리는 2002년에 파괴된 제닌의 무카타(팔레스타인 정부)를 찾았습니다.



사진2 완전히 파괴된 무카타(왼쪽). 건물 잔해 곳곳에 꽂혀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오른쪽)



제닌의 무카타는 2002년 공격 당시 1,000여명이 근무를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에서 무카타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미리 피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 세월이 지난 지금 파괴된 무카타 주변에서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부서진 무카타를 뒤로 하고 다음 찾은 곳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넓은 들판과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여러 날 계속 되는 여행으로 몸도 약간 피곤했지만 매일 같이 죽음과 파괴의 모습을 보다보니 마음도 약간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사진3 이곳이 점령지가 아니라 농민과 자연이 건강하게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비록 이곳이 고난의 땅일지라도 맑은 자연은 저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농민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며 닭이며 낯선 이를 보고 짖어대는 개들이 한국의 농가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낯선 저희를 친절히 맞아 주었고, 차와 과자를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점령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다 허가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이곳에는 물이 큰 문제에요.”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 물은 없어서도 부족해도 큰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탐욕은 평생 농사를 짓느라 제닌 밖으로 나간 본 적이 없다는 농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사진4 가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함께 간 셀림은 농민이신 한국의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



농가를 나와 우리는 하룻밤을 머물기 위해 가산의 집으로 갔습니다. 차와 커피, 과일, 과자가 계속 나오고 가산의 부인은 우리를 위해서 피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TV도 보고 이것저것 먹으며 놀다가 가산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때려 부수죠.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늘 새로 짓구요. 이런 것이 삶이에요.”

누군가는 늘 부수고, 누군가는 늘 새로 짓는 팔레스타인. 왠지 마음 뭉클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의 실상을 다음날 제닌 난민촌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무카타와 함께 2002년에 제민 난민촌은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수 십 명이 죽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집들이 새로 지어져 있습니다. 2002년의 파괴와 살인의 흔적은 당시에 부서지지 않고 남아 총탄 자국을 안고 있는 집들이었습니다.



사진5 2002년 파괴 이후 해외 원조로 새로 지어진 집들(왼쪽). 제닌 난민촌에 있던 벽화(오른쪽).



이런 것이 삶인 걸까요? 그 큰 죽음과 파괴 속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 뛰어 놀고, 부서진 자리에 새로운 집들은 들어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