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나치로써 유대인 학살 과정에 참여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쓴 책으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은 물론 유대인 학살 과정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1. 과거와 현재의 비교
1) 언어 규칙
이 문제를 다루는 모든 문서들은 엄격한 ‘언어규칙’을 따랐다. 돌격대로부터 오는 보고서를 제외하고 ‘제거’ ‘박멸’ 또는 ‘학살’ 같은 명백한 의미의 단어들이 쓰여 있는 보고서를 발견하기는 거의 드문 일이다. 학살을 처방하는 암호는 ‘최종 해결책’ ‘소개’와 ‘특별취급’ 등이었다. 이송에는 ‘재정착’과 ‘동부지역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49쪽
독일이 사용했던 언어와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학살을 저지르면서 사용하는 언어는 비슷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이스라엘 정착민’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점령민’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언어 규칙을 뒤집어 보자는 거다.
2) 열광
지금 보면 수많은 독일인들이 ‘하일 히틀러’를 외치면서 히틀러에게 경례하는 사진이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같이 흔들며 미국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과 과거 나치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버락 오바마에 열광하는 것과 히틀러에 열광하는 것의 차이는 단지 버락 오바마가 흑인이고, 히틀러가 백인이라는 차이?
2. 선과 악, 인간 행동
1) 악의 성격
피고 측이 피고로 하여금 무죄 주장을 하게 한 이유는 피고가 당시 존재하던 나치 법률 체계 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가 기소당한 내용은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공식 행위’이므로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나라도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복종을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고, 세르바티우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이기면 훈장을 받고 패배하면 교수대에 처해질” 행위들을 했을 뿐이라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 - 74쪽
아이히만은 히틀러나 괴링스 같이 나치의 고위급이 아니었고 유대인을 많이 죽여야 할 특별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치들이 처음부터 유대인을 모두 죽여야겠다고 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또 유대인 학살을 수용소의 학살만으로 제한하지 않고 전 과정을 놓고 얘기하자면 독일과 나치만이 학살 과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었다.
그리고 만약 독일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은 채 유대인을 학살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대인 학살에 그렇게 분노하는 미국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2) 희생자의 성격
학살센터에서 실질적인 살인 작업이 유대인 부대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잘 알려진 사실...“왜 당신은 결국 자기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는 당신 자신의 민족의 파괴에 협력했나요?”...모든 진실은 만일 유대인이 정말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들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만, 500만, 600만에 달할 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194~197쪽
유대인이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참여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놀랍지 않기도 하다. 놀랍다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 학살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고, 놀랍지 않다는 것은 일본의 조선 지배 시절 일본에 협력하면서 조선인들을 괴롭혔던 조선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태어나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다.
아무튼 유대인 학살을 통해 많은 유대인이 학살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에 저항하기 보다는 협력을 선택했다.
3) 인간 행동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 교훈이란 공포의 조건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가지만 어떤 사람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종 해결책이 제안된 나라들의 교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어디서나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 지구가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장소로 남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도 않고 또 그 이상의 것이 합리적으로 요구되지도 않는다. - 324~325쪽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할 때 정말 그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떨 때 ‘불가능’을 선택하는 걸까?
그리고 인간은 어떨 때 - 설사 불이익이 오더라도 -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걸까?
3. 사유와 무사유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 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 349쪽
이 책의 작은 제목이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문장을 빵집에서 읽었을 때 가슴이 ‘쿵’하던 순간이 생각난다.
사유와 무사유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모르면 죄를 짓기 쉽고, 안다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알면 바른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조금은 열린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아무에게나 쉽게 생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생각에도 계급적, 성적, 인종적 가능성과 한계가 따른다.
둘째, 우리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냥 습관대로 따라가고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습관대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생각해야 한다. 나와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꾸 생각을 해야 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그 악이 별 일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행동하는 과정이 아주 특별한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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