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기억인가
‘독
일 이데올로기’라는 글에서였던가, 마르크스가 ‘모든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지배 계급의 사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를 서술할 때 조선시대 지배계급이었던 왕과 관료들의 역사를 두고 조선 전체의 역사인 것처럼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겠지요. 어떤 계급이 지배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쓰여집니다.
역사에 대한 기억에서 또 하나
나타나는 것은 성에 따라(남성-여성) 다르게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시 집단강간은 흔히들 전쟁 이후 과거를 기록하는
남성들에 의해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또는 ‘가려야할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됩니다. 국가권력을 누가 소유하느냐는 민족과
민중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말하지만 집단강간은 ‘그들의’ 일이 되어 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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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요즘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나니깐 안보나 평화에 관한 얘기가 많은데 여기에도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 핵심에는 남성 권력들끼리의 투쟁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 밤거리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모두의 위기’가 되지 않고 남성들이 위기를 느낄 때, 특히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위기를 느낄 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연대나 의리 같은 것들도 알게 모르게 남성들의 일로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용감하고 정의로운 남성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어가고, 이를 지켜보는 예쁜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여기서 남성은 ‘의리’라고 하는 개인적이지 않은(?) 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여성은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일(?)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렇게 여성들은 개별화 되고, 남성 주변의 인물로 표현되고,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또한 남성들이 나서서 풀어줘야 하는 것이 되면서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연대는 점점 멀어져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세상에 원래, 늘 그랬던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만들어진 것이지.
‘이 로쿼이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존중받았다. 가족은 모계로 이루어졌다......이혼을 원하는 부인은 남편 물건을 문밖으로 내놓기만 하면 됐다......마을의 여자 연장자들이 마을 및 부족 회의에서 씨족들을 대표하는 남자들을 지명했다......여자들은 씨족 회의에 참여해서 둥그렇게 둘러 앉아 발언하고 표결하는 남자들 뒤에 서 있었으며, 자신들이 바라는 바와 너무 동떨어진 주장을 펴면 남자들의 지위를 박탈해 버렸다.’ - 하워드 진, [미국 민중사] 가운데
여성들의 연대
' 귀향'은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들이 겪었던 역사를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해 가느냐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라이문다에게는 파울라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문다의 남편이 파울라를 강간하려는 과정에서 파울라가 그 남자의 행동을 저지하려다 칼로 살해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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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가 파울라. 왼쪽은 이모 솔레, 오른쪽은 엄마 라이문다 |
그런데 이 장면을 약간 바꿔서 파울라가 강간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로 그 남자를 위협했고, 강간을 시도하던 그 남자가 물러섰다고 가정을 해 보죠. 그리고 카메라를 두 각도에서 비쳐 봅니다. 먼저 남편의 입장에서는 별 일 아닌 걸 가지고 애가 칼까지 빼들었고,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 일이니 뭐 그냥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여기서 카메라를 파울라에게 돌려 보면 상황은 다릅니다. 파울라에게는 엄청난 공포가 몰려옵니다. 엄마의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두렵고, 그의 흔적이 묻어 있는 모든 것들이 끔찍하게만 다가옵니다. 또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만약 말을 한다면 엄마는 뭐라고 할지, 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만약 집에서 나간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등 모든 것이 암담하고 두려운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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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엄마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
아무튼 파울라는 엄마의 남편을 살해한 뒤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라이문다는 딸을 꼭
껴안습니다.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라이문다와 라이문다의 엄마가 다시 만나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과 왜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할 때도 엄마와 딸은 서로를 껴안습니다.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껴안음
속에는 과거에 대한 상처, 서로에 대한 원망과 애정,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시간을 생각하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느낌 같은
것들이 들어 있겠죠.
그리고 더이상 그들은 낳고 태어난 것 만으로의 엄마와 딸도,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했던 엄마와 딸도 아닙니다. 이제는 마주보고 손을 잡으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지탱하는 연대하는 여성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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