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자료

팔레스타인의 인권 현실

순돌이 아빠^.^ 2010. 8. 4. 17:55

인권법평론 2010년 제5호에 실은 글의 일부

http://hrcenter.jnu.ac.kr/intranet/bbs/board.php?bo_table=publication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인의 학교>

 

미국은 2009년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한 해 25억 달러 이상의 대이스라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어림잡아 하루 7백만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원조액은 1949년 이후 2008년까지 최소 1천억 달러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직접

원조 금액 (단위:백만달러)

금액

1949~1996

68,030.90

1997

3,132.10

1998

3,080.00

1999

3,010.00

2000

4,131.85

2001

2,876.05

2002

2,850.65

2003

3,745.15

2004

2,687.25

2005

2,612.15

2006

2,534.53

2007

2,500.24

2008

2,423.80

합계

103,614.67


1)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적 관계

 

1948년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의 78%를 차지한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을 통해 나머지 22%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장악한다. 1993년~1995년 사이에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사이에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2006년에는 자치정부 두 번째 총선이 치러져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데 선거 이전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은 선거에 직접 개입한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마스가 정권을 잡게 되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하마스는 미국 국무부가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목한 단체 가운데 하나로 1987년 이후 대이스라엘 저항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를 받아온 단체이다. 또 이스라엘은 총선에 출마할 하마스 후보자들을 체포·구금함으로써 그동안 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이스라엘과 협력해 왔던 파타의 승리를 지원한다.


그런데 2006년 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하마스가 전체 132석 가운데 74석을 얻으며 집권당이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EU의 공세가 계속된다. 하마스가 승리를 하자마자 이들은 ‘하마스는 테러리스트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와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정치 공세를 펼쳤다. 이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사회단체로 들어가던 자금줄을 차단하고 이스라엘이 거둬서 자치정부로 이관하기로 되어 있던 세금의 송금도 중단한다.


자치정부는 돈이 없어서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되고, 미국과 유럽 등지의 사회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운영되던 팔레스타인 사회단체들의 활동도 멈추게 된다. 미국과 이스라엘, EU의 요구는 팔레스타인 총선과 하마스의 집권을 인정할 수 없으며 팔레스타인인들도 하마스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같은 해 6월부터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하마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군사공격에 들어간다. 곧 이어 7월부터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함으로써 미국이 지원하고 이스라엘이 실행한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진다.


두 개의 전쟁은 비슷한 점이 많다. 팔레스타인에서 친미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 진영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큰 세력이 하마스이고, 레바논에서 친미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 진영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큰 세력이 헤즈볼라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모두 정치정당이자 군사조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사회복지 사업을 해 오고 있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바람에 이스라엘군은 2005년에 가자지구에서 철수 했고, 헤즈볼라와 레바논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바람에 이스라엘군은 2000년에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철수 했었다.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가 된 것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파괴이다. 가자지구는 하마스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고, 이스라엘의 폭격이 집중된 레바논 남부 지역은 헤즈볼라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다. 두 개의 전쟁의 결과는 수 천 명의 사상자와 부서진 건물과 사회 기반 시설의 파괴였다. 이스라엘에게는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하마스와 헤즈볼라 모두 무너지지 않았다. 레바논 침공 초기 국제 사회가 휴전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대테러 전쟁을 수행중이라며 휴전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다가 전세가 이스라엘에게 불리해지자 휴전을 제안했다.


군사공격으로도 하마스가 무너지지 않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적으로써 적을 제압하는 전술이다. 즉, 마흐무드 압바스와 파타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서 하마스를 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라고 한 것이다. 파타 내부에는 여러 가지 조직들이 있어서 파타 전부가 여기에 동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파타 가운데서도 주로 상층부와 부패한 정치 세력들을 중심으로 쿠데타에 동참 했다. 이것이 언론에서 소위 말하는 ‘팔레스타인 내전’이다. 가자지구에서는 파타와 하마스 사이에 총격이 오갔고 사상자가 계속 발생했다. 결과는 2007년 6월 하마스의 승리였다. 하마스가 경제 봉쇄, 군사 공격, 쿠데타까지 이겨낸 것이다.


그렇다고 하마스가 집권당으로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안지구에서는 이미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이 정부를 해산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 버렸다. 마흐무드 압바스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자 미국과 EU 등이 다시 자치정부에게 돈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마흐무드 압바스는 ‘온건파’라 불리며 팔레스타인 정부의 대표 자격으로 국제회의에 참여한 반면 하마스는 ‘강경파’라 불리며 외교 무대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파타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이어진 것은 150만 명가량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강화’였다. 가자지구가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연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쪽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쪽은 이스라엘이 검문소를 닫아걸고 사람과 물품의 이동을 차단했다. 이집트 쪽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 국경 검문소를 자치정부와 공동 관리하고 있던 EU가 이스라엘의 요청대로 검문소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에 협조 했다.


2008년 12월27일부터 22일 동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공격을 다시 벌였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대량 학살한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150만 명 주민 가운데 1천4백여 명이 사망하고 5천5백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도하고 있던 이슬람 사원, 갈 곳이 없어진 주민들이 피난을 와 있던 유엔 학교 등을 폭격했고,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료진마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야 했다. 마을 주민들을 한 건물로 몰아넣은 뒤 폭격을 했고, 산소가 다 탈 때까지 사람의 피부를 태우는 화학무기인 인폭탄을 사용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한창 진행되던 2009년 1월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리비아의 제안으로 휴전을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세계 각국의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미국은 1월8일 유엔 안보리가 휴전 결의안을 채택할 때 기권으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1월8일에는 미국 상원이, 1월9일에는 미국 하원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 시켰다. 또 가자지구 공격 과정에서 미국은 그리스를 통해 수 천 톤의 무기를 이스라엘로 보내려다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정부의 반달에 부딪혀 계획을 취소했다.


9월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판사 출신인 리처드 골드스톤을 단장으로 하는 유엔 조사단이 가자지구 공격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긴 골드스톤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속에는 양측의 자체 조사를 요구하고 만약 자체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제 법정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이 담겨 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11월4일 유엔 총회에서 골드스톤 보고서에 관한 토론을 앞둔 11월 3일 미국 하원은 골드스톤 보고서가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작성되었다며 이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찬성 344, 반대 36의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채택하였다. 미국 하원은 골드스톤 보고서가 개선의 여지없이 편향돼 있으며 더 이상 고려할 가치도, 타당성도 없다고 비난했다.

 

2) 팔레스타인의 인권 현실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변을 둘러싸는 장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약 720km를 예정으로 시작한 공사는 현재 절반 이상이 완성되었으며, 장벽은 8~9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 장벽으로 이루어진다. 장벽 건설을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를 계속해서 몰수하고 있으며 장벽이 지나는 경로에 있는 땅과 집을 파괴하고 있다. 또한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수km마다 하나씩 있는 검문소를 통해서만 이동을 할 수 있게 되고 검문소가 닫힌 경우에는 학교·병원 등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 장벽이 마을을 가르면서 농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장벽 너머에 두게 되는데, 장벽 너머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정부가 발행하는 별도의 허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허가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면 일부의 가정에게만 허가증을 발급한다. 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허가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가족 당 1명 정도씩 허가증을 발급하고 있다. 올리브 수확과 같이 일손이 많이 필요한 경우에도 팔레스타인 농민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자신의 농지로 갈 수 없어서 농작물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벽 건설 중단과 철거를 요구하며 집회를 여는 경우에 이스라엘은 총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를 진압하고 관련 활동가들을 체포·구속하고 있다.


<2009년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에 피난처를 마련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권은 각종 검문소와 도로 봉쇄 등으로도 제약 받게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서안지구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서안지구 내부 곳곳에도 이스라엘이 운영하는 검문소가 설치·운영 중이다. 검문소가 닫힐 경우 팔레스타인인들은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이동할 수 없게 되고, 검문소에서는 수시로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한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일어난다.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신분증 및 소지품 검사, 차량 수색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스라엘 군인들은 팔레스타인인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모든 승객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뙤약볕에 몇 시간 동안 세워두기도 한다. 검문소를 피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은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의 이동을 자제하게 되고,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서 이동을 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동 비용이나 시간도 함께 증가한다.


2000년 9월 이후, 약 400만 명 정도 되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가자지구 인구 가운데 약 5,500명가량이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되었다. 이 가운데 22% 정도는 18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들로 이들의 사망 비율이 아주 높은 상황이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이스라엘은 대체로 7천~9천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구금하고 있다. 구금된 이들은 체포 과정에서부터 학대와 폭행을 당하게 되고, 체포 이후에는 고문을 받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정보원(스파이)이 되라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행정구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별도의 법적 절차 없이 행정 명령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인을 체포·구금할 수 있는 제도이다.


연령대별 팔레스타인 어린이/청소년 사망자 수 (단위, 명)

 

만 0~8세

만 9~12세

만 13~15세

만 16~17세

합계

2000

4

9

34

47

94

2001

13

21

31

33

98

2002

50

33

62

47

192

2003

16

22

47

45

130

2004

13

29

58

62

162

2005

2

10

19

21

52

2006

26

12

40

46

124

2007

3

8

17

22

50

2008

12

8

27

26

73

합계

139

152

335

349

975

비고 : 이 수치는 08년 ~ 09년 겨울, 가자 공격 당시 사망자 제외한 것임

: 통계 수치는 조사 기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자료출처 : DCI/PS http://www.dci-pal.org


이스라엘 점령촌 문제는 민감한 정치 문제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서안지구를 점령한 뒤에 점령을 영구화·합법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인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점령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를 몰수해서 건설되고 있으며, 점령민들은 주위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점령촌과 점령촌, 점령촌과 이스라엘 지역(48년 점령지)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어 이스라엘인들만 사용하게 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마을이 고립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동 거리가 긴 길을 선택해서 이동하기도 한다.


2008년 현재 약 44만 명의 점령민들이 134개 점령촌에서 살고 있다. 큰 점령촌의 경우 인구가 3~4만 명가량 이르며 점령촌 안에 대학과 병원 등을 설치해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은 크게 48년 전쟁과 67년 전쟁으로 발생하였으며 아직까지 쫓겨난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들의 2세, 3세까지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난민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려우나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운동을 하고 있는 알 아우다(Al Awda)에 따르면 그 숫자는 전 세계에 걸쳐 7백 20만 명에 이른다. 난민들은 난민으로써 일상적으로 겪는 경제적 문제와 함께 귀환권 문제를 안고 있다.


전쟁이나 무력 분쟁 때문에 난민이 되었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대신 이스라엘은 세계 각지에서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선언한 이들을 국적이나 인종 등에 관계없이 이스라엘로 귀환·정착 시키고 있다.


UNRWA에 등록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

(08년 6월30일 현재)

지역

난민촌 수(개)

등록 난민 수(명)

요르단

10

1,951,603

레바논

12

422,188

시리아

9

461,897

서안지구

19

762,820

가자지구

8

1,073,303

합계

58

4,671,811

비고 : 이 수치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이 만든 UNRWA에 등록된 난민의 수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전체 난민의 수를 표시하는 것은 아님

자료 출처 : UNRWA http://www.un.org/unrwa


예루살렘은 유대, 기독, 이슬람 세 종교 모두의 성지이자 팔레스타인 역사·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48년에 예루살렘의 서쪽을, 67년에 동쪽을 점령한 뒤부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예루살렘 방문과 이주를 제한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추방 통지서를 보내거나 주택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에게서 빼앗은 집을 이스라엘인에게 넘겨줌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지 못하고 다른 서안지구나 외국으로 떠나도록 만들고 있다.


다른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과 결혼을 해도 함께 예루살렘에서 거주 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레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도 한다. 다른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종교·경제·의료 등의 이유로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해도 15세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방문 허가를 제한적으로 내주고 있다.


3) 가자지구의 인권 현실

 

현재 팔레스타인은 48년에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이스라엘 지역)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 3곳으로 나눠져 있다. 물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은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이스라엘 지역을 방문할 수 없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사이의 이동도 거의 불가능 하다.


가자지구는 다른 지역과 단절된 것은 물론 땅과 하늘, 바다가 모두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지난 09년 11월29일 가자지구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팔레스타인 어선을 이스라엘 해군이 공격하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어선이 해안에서 약 5km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규정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어민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또 5km 내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민들을 공격하거나 체포하는 일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가자지구에는 국제공항이 1곳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활주로를 파괴함으로써 바다와 더불어 하늘도 봉쇄하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은 물론이고 일부 외교관이나 구호단체 직원 등을 제외한 모든 외부인의 가자지구 방문을 차단하고 있다. 식량·석유·의약품 등의 이동을 제한 또는 차단함으로써 식량과 석유 가격은 올라가고 의약품이 부족해 환자들은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중병 환자가 발생할 경우 과거에는 이스라엘이나 이집트 지역의 병원을 방문하였으나 07년 이후 환자의 이동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환자와 가족들의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08~09년 겨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공격으로 약 4,100채의 주책이 파괴되고 17,000채 가량이 부분 파손되었다. 이로써 어린이/청소년 112,000명을 포함해 20여 만 명이 집을 잃었다. 하지만 시멘트 등 건설 원자재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파괴된 주택의 건축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노동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으며 실업률은 60%에 이른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팸 등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에는 63%의 주민이 기초 생필품을 구호품에 의지하고 있었으나 2008년이 되면서 그 수치는 80%로 올라간다. 또 2004년에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가계수입의 37%를 식료품 구입에 사용한 반면 2007년에는 62%를 사용했다.


부족한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팔레스타인들은 이집트와의 국경 지역에 땅굴을 파고 있다. 땅굴을 통해 팔레스타인들은 식료품·의약품 등을 들여오고 있으며 심지어 가축과 오토바이도 땅굴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08~09년 겨울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땅굴을 파괴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었는데 ‘땅굴 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종속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굴 붕괴와 감전사고, 이스라엘의 땅굴 폭격으로 2007년 이후 130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