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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책

순돌이 아빠^.^ 2010. 10. 1. 12:28

 

귀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고, 잘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자식을 함부로 대하고, 자식 키우는데 큰 관심 없는 부모가 있기도 하지요. 

 

아무튼, 자식을 잘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좋은 책을 많이 읽도록 하는 거겠지요. 책이 세상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건강하고 마음 깊은 사람으로 클 테니 말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제가 만나본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좋은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말을 할 때 쓰는 단어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법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른 것 같아요. 그런 아이 곁에는 분명히 좋은 부모나 선생님이 있기 마련이구요.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일단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많이 접해서이기도 하지만 더욱 큰 것은 스스로 생각을 해야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눈으로 글자를 훑어간다고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소설의 경우라면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이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 읽는 사람도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소설 속 인물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행동과 마음도 비춰보고 떠올려 보게 되니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요.

 

헤밍웨이

 

전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책으로도, 영화로도 봤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영어로도 읽어 보고 싶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책장을 넘겨 봤어요.  그 소설이 좋고, 소설 속 인물들이 멋져서 그런 거지요. 쉽게 말해 빠진 겁니다. 지금은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호호호^^;;;

 

한때는 삼국지를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삼국지부터 해서 이문열의 삼국지도 읽었어요. 아... 이문열 한 때는 좋아했는데 지금은 개새끼가 되어 버린...

 

아무튼 무언가에 빠지다 보면 집중력도 높아질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5분을 가만 못 있는 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지요. 책을 보는 것 같다가, 게임을 하는 것 같다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다가 이것저것 그야 말로 정신이 없는 경우지요. 이것을 달리 말하면 어느 것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빠져들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아이 곁에는 이리 저리 산만한 부모가 함께 살고 있을 가능성도 높구요. ^^)

 

어릴 때부터 좋은 책에 빠져드는 연습을 하면 책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깊이 빠질 줄 알게 될 것 같아요. 책과 대화를 하듯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천천히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거구요. 집중력이란 거는 멍하니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게 책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어느 하나에 마음을 쏟아 보는 걸 테니 말입니다.

 

좋은 책은 아이의 성격도 바꿀 수 있지 싶어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왜 그러니 왜 그러니’ 백날 말해도 안 바뀌던 아이가 좋은 책 하나를 읽고 나서 조금씩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무가 빛이 있는 방향으로 제 몸을 틀어 자라듯 책 속에 나오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정한 아이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바꿔갈 테니 말입니다.

 

책과 생각

 

우리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는 많지만 함께 책을 읽는 부모는 많지 많을 것 같아요. 책이라고 하면 그저 문제풀이용 참고서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구요. 시험과 관련 없으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구요.

 

저의 경험을 말씀 드리면, 초딩 때부터 아버지가 책과 신문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어요. 아버지가 신문을 읽으면 그 옆에 앉아서 놀기도 했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신문 내용을 읽어주면서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셨어요.

 

30여년 저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 한자 사전. 이젠 너덜너덜 ^^

 

요즘은 신문들이 대부분 한글로 되어 있지만 제가 초딩 때만 해도 신문들이 한자를 많이 썼어요. 그러면 아버지가 한자를 읽어 주시면서 이건 무슨 자고 저건 무슨 자인데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도 말씀 해 주시고, 잘 모르시는 글자는 함께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지요. 그 때 쓰던 한자 사전을 지금도 쓰고 있구요.

 

아버지의 바램은 제가 책도 많이 읽고 한자도 많이 알고 영어도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가서 좋은데 취직해서 좋은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거였지요. 하지만 결과는 아버지의 뜻과 조금(?) 달리 나타났어요. 책 읽고 신문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맞는데 그게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사회운동으로 연결 되었던 거지요.

 

아무튼 그 때 아버지와 신문을 함께 읽고 한자를 찾아보던 게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일단 글을 읽고 사전을 찾아보는 연습을 어릴 때부터 할 수 있었고, 글 읽는 것에 재미도 붙였으니깐요.

 

얼마 전 추석에 가족들이 모였어요. 아버지가 이번에 제가 쓴 책을 읽어 보신 것에 대해 조카에게 이런 말씀 하시더라구요.

 

‘예지야, 너거 삼촌은 어릴 때부터 책을 마이 일거서 글을 참 쉽게 잘 쓴다. 니도 책 마이 일거라, 알겠제?’

 

조카들 앞에서 저를 칭찬할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

 

시험문제 잘 푼다고 글을 잘 읽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 아니에요. 시험 문제 푸는 거는 문제 낸 사람의 의도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끼워 맞추는 것뿐이에요. 이해도 생각도 정답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요. 글을 통해 삶을 생각하고 세상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1~4번 가운데 문제 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고르는 연습을 하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학교 성적이 좋아서 흔히 말하는 명문 대학을 나왔는데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머릿속이 허전해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남의 생각을 알아내는 정답 맞추기는 잘하는데 정작 중요한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거지요.

토익 점수도 높고 아는 영어 단어도 많은데 정작 말을 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경우가 있지요. 그릇은 있는데 담을 물이 없는 거지요.

 

함께 책 읽기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한다면 함께 읽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읽고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얘기를 나눠야 아이의 생각도 더 크게 될 거니깐요.

 

‘난 책 많이 사 줬는데!’로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애들 밥은 먹였어!’라며 부모로써 할 일 다 했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부모가 먹고 살기 바쁘다고 아이들 밥만 먹이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하면 큰 착각이겠지요.

 

부모가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는 아이 앞에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기 부끄럽다 생각하지 마시고 ‘가르치며 배운다’라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부모도 지금부터 책 읽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부모가 밥벌이 한다고 바빠서 함께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요. 함께 책을 읽고 싶어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구요. 그럴 때면 책 읽기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서 도움을 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칠레 출신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쓴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저의 경험으로 보자면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때, 일단 20세기 초에 나온 한국 단편 소설이나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더라구요. ‘꽃들에게 희망을’도 좋고 ‘어린 왕자’도 좋구요. 그게 뭐였더라… 브라질 사람이 썼던 것 같은데 무슨 나무 이야기 나오고... 아... 울면서 읽었던 책인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이런!!! 대가리가 정말... ㅠㅠ

 

아무튼 모든 일이 그렇듯 망설이고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것보다는 아는 만큼 실천해 보고 느끼면서 조금 더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지 싶어요. 문학 작품을 시작으로 읽다보면 나중에는 철학이니 사회과학이니 하는 것들도 읽게 될 거구요.

 

존경 받는 부모

 

그렇다고 무조건 아무 책이나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옆에서 봐도 놀랍게 이것저것 많이 읽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얘기를 들어 보면 그야 말로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은데 핵심이 없어요. 결혼식 뷔페마냥 차린 것은 많은데 확실히 맛난 게 없는 거지요. 오지랖만 넓기 보다는 적은 거라도 제대로 알면 좋지 않을까요?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많이 보내라고 하는 거는 많은 경험을 통해 소중한 삶의 길을 찾으라고 하는 거지 많이 떠돌아다닌 것을 남 앞에서 자랑하라고 그러는 거는 아니잖아요.

 

어떤 경우는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아서 정신도 인생도 혼란스러운 경우가 있지요. 책 많이 읽는 게 좋다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하는 책 많이 읽어 인생의 깊은 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에요.

 

세상 일이 복잡한 것 같아도 단순한 것이 넓으면 얕아지고 깊으면 좁아지게 마련이지 싶어요. 그래서 많은 책 읽기를 통해 깊은 생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작정 책장 위로 눈동자를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책장 넘길 힘이 있을 때까지 하나하나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 거지요.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인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면 좋을 거구요. 사람이 죽을 때 곁을 지키고 있을 자식에게 그동안 자신이 읽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전해 줄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거구요.

 

보모와 자식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다 보니 그 모양새라는 건 그야 말로 제각각이겠지요. 여러 가지 부모-자식의 모습 가운데, 가을 어느 날 함께 좋은 책을 읽고 차 한 잔 나누며 이번에 읽은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도 멋지지 않을까요?

 

좋은 경험, 좋은 생각을 많이 나눈 부모-자식일수록 그 자식은 부모를 부모라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부모를 존경하게 되겠지요. 아이가 자라 되돌려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이렇게 자라는 데 큰 스승이었던 사람’으로 부모를 기억하게 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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