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9와 10의 차이

순돌이 아빠^.^ 2010. 11. 16. 17:05


1, 2, 3, 4, 5, 6, 7, 8, 9 그리고 10.
 
8과 9도 1의 차이이고 9와 10도 1의 차이지만 9와 10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9는 한 자리 수이고 10은 두 자리 수여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깨달음을 얻으려고 참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때론 지루하기도 하고 다리 저리기도 하고 이거 해서 과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아하! 이거였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지만 ‘아하!’하고 소리를 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풍선에 바람을 불어 풍선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 순간 ‘펑!’하고 터졌다고 하지요.  터지기 전과 터진 후의 차이는 아주 약간의 숨을 더 불어 넣은 것뿐이지만 한쪽은 부풀어 올라 하늘을 날 듯한 풍선이고 다른 한쪽은 터져 쓸모없어진 고무 껍질일 뿐입니다.
 
작은 것은 꼭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크기도 한 것일 수도 있는 거지요. 작은 것이 홀로 있을 때는 그저 작은 것이지만 작은 것이 어떤 상황이나 조건, 누군가의 관계 속에 있을 때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겁니다. 1이 저 혼자 있을 때는 그저 1일 뿐이지만 8과 9 사이에 있느냐, 9와 10 사이에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듯 말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성에 대해 느끼는 차이에 대해서 말하지요. 여기서도 보면 아주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혁명에 대하여
 
혁명, 어쩌면 작은 차이들이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가 쌓이고 쌓이고, 사람의 힘이 쌓이고 쌓여 어느 한 순간 큰 차이를 만드는 거지요. 1~9까지는 모두 한 자리 수였다가 9에서 10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두 자리 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9는 10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동안 1~8까지 흘러온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1을 더하면 대강 어떨지를 짐작할 뿐입니다. 현재가 미래를 모르지만 미래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9는 한자리 수인 자신을 버려야 10이 될 수 있지요. 9와 10이 함께 존재할 수는 없는 겁니다. 
 
양파 밑동을 물에 담가 창가에 뒀더니 위로 싹이 트고 줄기가 자랐습니다. 새로운 것이 자라는 것도 신기했고, 두 어 번은 줄기를 잘라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양파 몸통이 많이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새 줄기를 키우느라 자신을 버린 거지요. 
 
만약 누군가 10을 9로 돌리려 하면 단순히 1을 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자리 수가 한 자리 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부를 잘라 내야 합니다. 혁명에 이은 반혁명의 과정이 처절한 것과 같습니다.
 
4.19 이후 박정희 일당의 쿠데타도 그렇고, 쿠바 혁명이나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 등장 이후 미국의 반격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라크 혁명 이후도 그렇고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 정부가 들어선 이후도 그렇습니다. 크든 작든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나서 이것을 거꾸로 돌리기 위해 엄청난 폭력을 동원합니다. 하다못해 노무현 정권이 큰 일 한 것 없는데도 작은 변화마저 거꾸로 돌리기 위해 이명박 정권은 엄청난 복수의 힘을 퍼붓지요.  
 
8이 9가 되기도 하고, 9가 10이 되기도 했다가 10이 다시 9가 되기도 하고 8이 되기도 하지요. 8, 9, 10, 11, 12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8, 9, 10, 9, 10, 11, 10, 11, 12 뭐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 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거지요. 
 
끼니마다 더 맛있는 거 찾아 투정부리는 사람에게 한 그릇의 밥이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이지만 열흘 굶은 이에게 한 그릇의 밥이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혁명이 때론 아름답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한 이유는 그 한 그릇의 밥으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그 한 그릇의 밥이 없어서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을 저승으로 보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그릇의 밥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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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자가 사람을 가벼이 여겨 살인도 망설임 없을 때, 
 
구경하는 자가 귀한 말씀이나 내세우며 죽음에 이른 이를 외면할 때, 
 
혁명은 죽이는 자와 구경하는 자가 세상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했던 그 작은 목숨들 살리자고 제 온 몸 비틀어 울음을 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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