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에 보낸다고 쓴 글 http://suyunomo.net/ )
오늘 12월20일은 한국군이 연평도에서 군사훈련을 벌인 날입니다. 또 오늘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한 친구가 제게 ‘모든 전쟁으로부터 신이 코리아를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온 날이기도 합니다. 언론에 팔레스타인 관련 기사가 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팔레스타인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친구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를 걱정하게 생겼네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끈이 지구 먼 곳에 사는 우리들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지난 2006년 초, 처음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였습니다. 보름을 기다려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를 얻은 뒤에야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150만 가량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거든요. 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엎어버렸고, 바다에는 군함을 띄워 어민들에게마저 사격을 가했습니다. 땅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장벽과 검문소를 만들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물론 외부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조차 가로막았습니다.
그해 여름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해 대규모 군사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수 백 명이 죽었지요. 이스라엘이 봉쇄와 군사공격을 계속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방이니 저항이니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그런 말들은 잊어버리고 이스라엘이 시키는 대로 하면 패 죽이지도 굶겨 죽이지도 않겠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에게 저항을 계속한다면 생활의 곤란과 폭격이라는 결과만을 가져올 거라는 거지요.
오랜 세월 계속된 봉쇄와 군사공격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을 포기하지 않자, 2008년 겨울 22일 동안 가자지구를 공격해서 1천4백여 명을 살해했습니다. 한국의 광주광역시 인구와 비슷한 수의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를, 하늘․땅․바다를 봉쇄한 채 도망갈 곳도 없는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달 지나 저는 다시 팔레스타인을 찾았습니다. 서안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습니다. 2006년은 외국인이 그나마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었던 반면, 2009년에는 아주 극소수를 빼면 아무도 밖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와 공격이 계속되자 세계 각지의 정부와 단체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봉쇄와 공격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이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2010년 5월에는 수십 개 나라 6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배에다 식량․의약품․학용품․시멘트 등의 구호품을 싣고 가자지구로 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봉쇄를 풀지 않으면 그들이 직접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5월31일 이스라엘 군인들은 공해상에 떠 있던 이 배를 공격하여 9명을 살해했고, 배는 이스라엘로 끌고 가 버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도 국제연대도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거지요.
오해와 이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이렇게 못 살게 구는 이유는 하마스(Hamas)와 관련이 있는데,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만든 여러 조직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의 78%를 차지했고, 1967년 전쟁에서 나머지 22%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집어 삼켰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43년째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1987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대규모 민중항쟁인 ‘인티파다’를 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하마스라는 조직이 탄생했습니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에서 덩치 크기로는 파타(Fatah)와 함께 1, 2등을 겨루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이스라엘과도 계속 싸우고 있지요.
여기서 식민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은 ‘분할 지배’ 정책입니다. 파타와 하마스를 싸우게 만들어서 팔레스타인 내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거지요.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해서 하마스와 투쟁을 벌이게 만들었고, 파타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를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파타와 하마스의 대결을 극복하고 민족해방운동의 연합 전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2월11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한 팔레스타인인들. 미국은 인민전선을 테러리스트 조직이라 부른다.
팔레스타인 내부를 파타와 하마스로 갈라서 싸우게 만드는 것이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첫 번째 분할이라면,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를 나누는 것이 두 번째 분할입니다. 분할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테리리스트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겁니다. 지난 금요일 한 행사장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어떤 분이 저에게 ‘하마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말 테러리스트인가요, 아니면 민족해방운동 세력이라고 봐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느냐 의사라고 부르느냐는 서로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분이 하마스라는 말에서 테러리스트를 떠올린 것은 친이스라엘 정치․언론․학문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배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피지배자를 가해자(테러리스트)로 만들어 사람들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은 거지요. 한 예로,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국제테러리스트 조직 명단을 보면 전체 47개 조직 가운데 7개가 팔레스타인과 관련 있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명단 보기) 미국 정부의 발표만 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계에서 테러리스트 조직을 가장 많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게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팔레스타인인을 지원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국제연대를 위하여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을 지배할 수 있었던 큰 힘은 바로 미국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사냥개 노릇을 하고, 그 대가로 미국은 이스라엘을 보호해 줌으로써 동맹을 유지했지요. 이 동맹은 이스라엘 없이 미국은 존재할 수 있지만 미국 없이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2월16일 미국 의회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단독으로 국가 수립을 선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관련글은 이 글 맨 아래 참고)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지요. 양쪽이 참여하는 ‘평화협상’이라는 절차를 거쳐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결의안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이 땅과 자원, 권리 등을 대폭 양보하면서 평화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협상을 하는 척하면서 늘 지배를 강화해 왔고, 미국은 이런 이스라엘을 돈, 무기, 외교로 후원해왔습니다. 협상 당사자의 힘의 차이가 클 때 평화협상은, 평화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되어버립니다.
명동에 있는 무인양품 점포 앞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회원들
지난 12월1일, 2011년 이스라엘 진출을 계획하고 있던 일본 기업 무인양품(MUJI)이 이스라엘 진출을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관련글은 이 글 맨 아래 참고) 일본의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진영이 무인양품의 이스라엘 진출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고 이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자 결국 이스라엘 진출 계획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자는 운동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팔레스타인평화연대’도 무인양품의 이스라엘 진출 반대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한국에도 무인양품 점포가 9개 있는데, 팔레스타인을 향한 연대운동이 일본과 한국에서 함께 일어난 것이지요.
앞의 미국 의회 결의안이나 무인양품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이미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 관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만의 관계를 넘어 ‘국제적인 힘’이 서로 맞부딪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지금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힘이 더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힘이 영원하란 법은 없겠지요. 오랜 세월 지나고 보면 많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듯해도, 실상 현실 세계의 변화는 작고 느린 움직임들이 쌓이는 과정일 뿐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친이스라엘 진영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힘을 키워왔듯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원하는 우리의 힘도 조금씩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제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오해를 걷고 이해를 품으며, 침묵 속에 안주하기보다 연대의 기쁨에 빠져들면 들수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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