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지식으로 행세하려고 하고 또 수용되려고 할 때에 더 단적으로 말하면 시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주장할 때에 즉 관념이 과학이노라고 나설 때에 사실과 인식이 도리어 몽롱한 안개 속에 휩쓸려 버리는 것이다.
가령 근대의 뭇 위대한 형이상학이 우리에게 준 것이 지식이 아니었고 지혜였다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인정할 수가 있다. [쇼펜하우어]가 그랬고 [베르그송]이 그랬다. 인간학이라든지 실존철학은 더욱 그렇게 보인다. 동양철학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거진 예외없이 지혜의 수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철학은 늘 시에 가까우려 한다고 한 임어당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는 또한 거기 반해서 서양철학은 늘 과학에 가까우려 한다고 말한다.
우리 견해로는 파탄은 철학이 과학인 체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형이상학이 지혜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지식인체 가장하는 때 그 결과는 사실의 인식을 혼란시키고 또 사실의 인식 대신에 무수한 환영을 사실의 주위에 흩어놓는 것이다.
- 김기림, <김기림 전집 2 - 시론>, 심설당, 1988,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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