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배움-여러가지

"책이 어려워요"

순돌이 아빠^.^ 2011. 10. 11. 11:08


‘나도 책 좀 읽어!’하시는 분들도 늘 고만고만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저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등 수많은 사건들을 나열하는 책들이 많지요.

흔히 말하는 ‘전문가’라는 분들이 많이 하시는 일이 몇몇 사건이나 사례들을 나열한 뒤에 자신의 감상을 덧붙입니다. 물론 자신은 감상이라고 하지 않고 분석이나 해석이라고 하기는 합니다만.



안정복, [철학, 역사를 만나다]. 많은 사건과 사상가들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사상가에 대해서 잘 모른채 적당히 감상만 곁들인 것은 아닌지...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데는 사건 나열이나 감상 위주의 책보다는 어떤 것,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세계금융위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는 것과 함께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면 좋겠지요. 자본주의가 무언지 알기 전에 세계금융위기를 보는 것과 자본주의가 무언지 알고 나서 보는 세계금융위기는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복지 국가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국가란 무엇인지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국가가 당연히 국민들을 돌봐야할 것 같지만 국가란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복지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사건이나 감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개념을 따져들어가는 책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냥 몇 년도에 무슨 일 있었는지를 말하면 될 건데  이윤이란 무엇인가, 화폐와 금융이란 무엇인가, 주식이란 무엇인가 등등을 따지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지는 거지요. 텔레비전 뉴스 보듯 술술 넘어가면 좋겠는데 책을 읽다가 목구멍에 뭔가 컥컥 걸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어려운 책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 첫 번째 사례는 글쓴이가 중얼거리며 말하는 경우입니다. 책방에 가면 한권에 수많은 사상가들의 생각을 이리저리 요약해서 정리해 놓은 책들이 있습니다. 한권으로 동서양은 물론이요 과거와 현대의 사상을 쉽게 해치울 수 있게 해 준다는 책이지요.

다루는 내용이 방대할수록 내용이 빈약한 것은 물론이요, 글쓴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의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많은 사상가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겠지요.

글쓴이가 내용을 모르니 중얼거릴 밖에요. 글쓴이가 중얼거리니 글을 읽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두 번째 사례는 글쓴이의 생각이 흐릿한 경우입니다. 무언가 보기는 봤고, 생각도 하기는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을 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겁니다.

밤에 자다가 쉬가 마려워 화장실에 가는데 눈앞에 귀신같은 것이 쓰윽 지나갑니다. 자고 일어나 지난밤에 본 것이 무언인지 가족들에게 말하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보기는 봤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니까 확실하게 말을 못하는 거지요.

공부 좀 했다, 나도 교수쯤 된다는 분들이 많이 하시는 일입니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언가 말을 하고는 싶은데 그게 뭔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의 내용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하기도 하고, 감상이나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학문적 논의인 것처럼 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말이나 영어 좀 쓴다고 학문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세 번째 사례는 읽는 이가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경우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경우지요.

야, 00 좀 읽어 보는 게 어때?
에이, 그 어려운 걸 내가 어떻게 읽어?

중얼거리는 책이 쉽게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채 이리저리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닮은꼴을 만나니 반가운 거지요. ‘역시 딱 내 수준이야’하는 겁니다.

‘내 생각도 그런데 글쓴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이거 꽤 쓸 만한 말인데’ 하면서 책읽기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고 만족하는데 그치기도 합니다. 쉽게 공감이 안 되면 좋은 글이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공감하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읽는데도 말입니다.

알고는 싶지만 어렵고 싶지는 않아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하고 맛없는 음식을 나쁜 음식이라고 하듯,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라고 하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나쁜 책이라며 돌아서 버립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군’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네 번째 경우는 읽는 이가 모르는 개념을 글쓴이가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이건 글쓴이의 잘못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쓰냐?’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모르는구나’입니다.

겉말은 쉬운데 속말이 도대체 무언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리는 글보다는, 처음 대하면 겉말이  어렵게 다가오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 속말이 뚜렷하고 명쾌해서 오히려 쉽게 느껴지는 글들이 있습니다. 쉬운 게 어려운 것이고, 어려운 것이 쉬운 것일 수도 있는 거지요.

어렵지만 읽기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싶어도 생각을 좀 더 키울 수 있는 책에 도전하면 좋겠지요. 지식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지식의 질이 문제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때로는 골치 아프고 귀찮기도 하고 숨이 차기도 합니다.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내가 이걸 알아서 무얼 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글쓴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구요. 저의 무능력과 무식을 자주 한탄하곤 합니다.

어려운 글을 만났을 때는 먼저 따져서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재미난 소설 책 읽듯이, 가만히 누워 틀어 놓은 영화 보듯이 하지 말고 한 단어 한 단어 글쓴이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거라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글이 어렵지만 책을 덮어버리기는 싫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글을 상상해서 읽고 해석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현실의 생활과 종교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 읽기에서도 상상 속으로의 도피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밤을 까듯, 호두를 깨듯 속으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호두알을 먹는다는 상상만으로는 호두알을 입에 물 수 없습니다. 직접 호두를 망치로 내려치고 그 속에서 호두알을 끄집어내서 입에 집어넣어야 하겠지요. 직접 대면하고 그 속을 풀어헤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글의 흐름과 관계 속에서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 단어가 잘 이해 안 될 때 전체 문장 속에서 그 단어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면 좀 더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나왔던 단어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해될 때도 있습니다.  1장을 죄다 이해 못했는데 2장으로 어떻게 넘어갈 수 있냐구요? 맞는 말입니다.

다만 1장을 80% 이해했지만, 그 상태에서 나머지를 책을 다 읽고 되돌아보면 1장이 100% 이해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되 하나에만 얽매이지 말고 그 하나가 속한 전체를 이해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개인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기도 하고, 사회를 통해 개인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세 번째는 읽고 또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같이 아는 게 적은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의 문장이든 하나의 문단이든 이해 안 되면 두 번, 세 번 읽고 또 읽을 밖에요.

어차피 모르는 데 읽고 또 읽는다고 이해 되냐구요? 그런데 그게 참 신기하더라구요.

우리 머리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읽은 A를 머리 저 뒤편에 넣어두고 있다가 지금 읽고 있는 B가 들어오면 A를 B 위에 올렸다가 옆에 붙였다가 속에 넣었다가 뺏다가 하면서 이리저리 짜 맞추고 배열을 해 봅니다.

한 쪽 머리는 글을 읽고 있고 다른 쪽 머리는 이미 읽은 내용을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다 보면 저절로 문제가 풀리는 것 같고 ‘아하’하는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는 거지요.

얼른 책장을 넘기고 ‘다 읽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것이 이해의 길이라면 이해의 길을 따라가야겠지요. 





산을 올라 보지 않은 사람은 산 밑이든 산 위든 바람이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산에 올라본 사람은 산 위의 바람이 산 아래 바람보다 얼마나 더 시원하지를 압니다. 그 시원함은 바람이 달라서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달라져서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거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산 위에서 구름을 만나듯 한 문장 한 문장 읽다보면 어느새 생각이 크고 마음이 깊어진 자신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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