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맥주를 마신 밤

순돌이 아빠^.^ 2012. 6. 14. 09:24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죄다 말해 본 게 참 오래 됐구나’입니다.

누구에게는 이런 것을 감추고, 누구에게는 저런 것은 빼고, 누구에게는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뭐 그런 것들.

얼마 전에 ‘넌 글을 참 쉽게 쓰는구나. 남들은 몇 줄 쓰는 것도 참 어려워하는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글을 쉽게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주 글을 쓰는 것은 맞습니다. 글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글자로, 문장으로 옮기는 정도겠지요.

그러면 난 왜 틈만 나면 별 일 아닌 것들도 글로 쓸까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제 마음을 죄다 열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고, 무언가 느낌이나 생각이 들 때면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나 자신과의 대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글쓰기는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보니 제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제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눠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네요.

제가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제가 무엇에 행복과 아픔을 느끼는지를 누군가와 함께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제가 아는 여러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 다른 사람을 향해 자기 말을 더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둘이 마주 앉든, 여럿이 둘러 앉든 서로 각자의 말을 내어 놓기 바쁜 경우가 많구요.

‘누군가 내 말을 좀 들어 줬으면...’ '누군가 내 속을 좀 알아 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그렇겠지요.





서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한다는 게 좋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배울 것도 많아 듣는 게 좋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제가 벽이 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상대는 벽을 향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무작정 쏟아 놓는 거고, 저는 그냥 멀뚱히 서 있는 벽처럼 가만히 있는 거지요. 


어떤 때는 저의 생각을 말해 보라고, 저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서 상대가 저에게 말을 시킬 때도 있습니다. 말을 시켜서 말을 꺼내보지만 그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제 말이 몇 마디 진행되지 않았는데 벌써 상대는 제 말을 다 알았다는 듯이 자기 말을 저에게 쏟아 냅니다. 그러면 저는 ‘내 마음을 다 알면서 왜 굳이 묻는 거야?’ 싶을 때도 있고,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말을 시키는 거야?’ 싶을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솔직히 말해보라고 해서 솔직히 말했는데 어이없다는 듯 또는 화난 표정을 짓습니다. 아니면 저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 놓구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또 입을 닫게 됩니다. 

이런 일이 한 번 되고, 두 번 되고, 세 번 되니 점점 말을 안 하게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제가 침묵 속에 사는 사람도, 어디 산골에 혼자 사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있는 속을 다 내놓지 못할 때가 많다 싶을 뿐이네요. 속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관계를 참 많이 만들며 살아 왔구나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어제는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며 맥주를 마셨더니 금방 얼굴이 빨개지더라구요. 그러고 곧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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