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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예절

순돌이 아빠^.^ 2013. 5. 7. 10:23

지배 계급의 사상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 사상들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다...지배적인 사상들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즉 사상들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 칼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가운데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써의 예절. 인간 관계를 떠난 추상적인 예절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구체적인 관계로써의 예절.





새 수령을 맞이하는 예절은 첫째는 지방 특산물을 지장(支裝)으로 바치는 것이고, 둘째는 관아 건물을 수리하는 것이고, 셋째는 깃발을 들고 맞이하는 것이고, 넷째는 신하인 풍헌(風憲)․약정(約定)이 기다려 문안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부임 도중에 문안드리는 것이다.
- 정약용, <목민심서> 제1편 부임 6조 가운데



1. 지배라는 것이 없다면 지배자인 수령과 지배받는 백성으로 나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행정을 맡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여러 사람 가운데 행정을 맡아보는 사람이지 지배자는 아닌 거지요. 


2. 지배받지 않는다면 굳이 지방 특산물을 지장, 곧 새로 부임하는 수령에게 선물을 바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서로 동등한 사이이고, 새로 누군가 우리 사는 마을에 와서 일을 하게 되어 선물을  주고 싶으면 그냥 선물을 주면 되는 것이지 바칠 필요가 없는 거지요.


3. 맞이하는 자가 지배자가 아니라면 굳이 깃발을 들고 맞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깃발을 펼치고 북을 치고 하는 것들은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과장된 행동들이겠지요. 즐겁게 맞이하는 행동이 아니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아 하는 것들이겠지요.


4. 문안이라는 것이 어른에게 안부를 여쭙는 것이라고 하니,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면 서로 인사를 하면 될 것이지 문안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인사를 하고 하고 싶으면 서로 가볍게 목을 숙여도 될 거고, 아니면 악수를 해도 될 거고, 아니면 눈인사를 해도 되겠지요.


이렇게 따져보면 예절이란 것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특정한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겠지요.




충렬사 안락서원 홈페이지에서. http://www.cysedu.kr.

머리를 더 크게 숙인다고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지겠습니까?

노동자가 존경해서 사장에게 머리를 숙입니까?

머리 숙임은 겉모습이니, 겉모습으로 속마음을 알 수는 없습니다.

크게 머리 숙이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의 표시가 아니라 지배자에 대한 복종의 표시일 수도 있습니다.




수령의 지위는 존엄하므로 여러 아전들은 그 앞에 엎드리며 백성들은 뜰아래에 있게 마련인데, 감히 다른 사람이 그 곁에 얼씬거릴 수 있겠는가. 비록 자제나 친척 빈객이라 할지라도 멀리 물리치고 우뚝 홀로 앉아 있는 것이 예에 맞는 체모이다.
- 정약용, <목민심서., 율기 6조 가운데


수령이 왕 앞에 가면 왕 아래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을 겁니다. 그 수령이 백성들 위에 앉아 권력로써의 위세를 펼칩니다. 왕-수령-백성까지 지배와 복종의 체계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존엄이고 예이고 체모인가 봅니다.


왜 둥글게 마주 앉아 서로를 존중하지 않습니까? 상대를 윽박지르고, 폭력을 휘둘려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하게 하려면 당연이 존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앉고 서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정당(政堂)의 체모는 존엄한 것이니, 무릇 상복을 입은 사람이거나 승려 차림을 한 사람이거나 야복(野服) 차림을 한 사람(폐량자幣凉子․협수의(夾袖衣:군복의 한 가지)따위를 착용한 사람)을 정당에서 맞이해서는 안 된다. 옛 사람들은 다 그러하였다.

- 정약용, <목민심서>, 제2편 율기 6조 가운데



정당은 관아를 말하고, 야복은 평민의 옷을, 폐량자는 패랭이를 말한다고 합니다. 정당은 지배하는 업무를 보는 것이니 피지배자가 올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목민관은 백성의 부모라고 하더니, 부모가 어찌 자식의 옷 차림을 보고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는 지...


정약용이 말하는 옛 사람들 또한 정약용과 같은 지배자였고, 그들 또한 사람을 옷차림에 따라 차별했다 봅니다.






조정에서 벼슬을 살다가 물러난 자는 비록 쇠잔해진 음관(蔭官)과 무관(武官)이라 하더라도 불가불 먼저 존문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존귀한 자를 존귀하게 여기는 뜻이다.

- 같은 책

존귀함의 기준은 벼슬을 했느냐 안 했느냐. 좀 더 나아가면 지배계급의 일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을 나누고 대우함.


공적인 손님에게는 공적인 규정이 있다. 사적인 손님에게 드리는 음식은 모름지기 두 등급으로 나누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웃어른에게는 네 접시, 나이가 어린 아랫사람에게는 두 접시의 음식을 대접한다.

- 같은 책

계급에 따라, 신분에 따라, 성에 따라, 나이에 따라 사람을 끊임없이 나누어서 그에 따라 대우하는 예절.




이러한 치자중심의 가치관은 모든 사회의 제도를 그들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통제하였고 법제화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주자이론의 합리화 속에서 권력중심의 관점에서 예禮를 이해하고 인식하여 예禮자체가 정치상 필요한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 최진옥, '1860년대의 민란에 관한 연구', 변태섭 외, <전통시대의 민중운동>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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