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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느끼는 것과 깊은 고요

순돌이 아빠^.^ 2015. 1. 24. 12:28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슴이 터질 것 같거나 계속해서 고문하는 듯한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있거나 무가치함과 절망의 감정에 압도되어 있던 시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운이 좋아서 이러한 시기에 내 마음을 들어 주어 혼란스러운 감정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고 내가 아는 것보다도 더 깊이 내 마음을 들어 주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의 긴장이 풀려서 내가 경험하고 있던 두려움, 감정, 죄책감, 절망감, 혼란감을 털어놓을 수 있었지요.

- 칼로저스, <칼 로저스의 사람 중심 상담>







경청하자고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자고도 합니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다가도 막상 사람이 앞에 있으면 말처럼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을 느끼는 일이 잘 안 될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욕망의 벽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나를 타인을 느낄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더라구요.


1. 지배의 욕망이 내 마음을 감쌀 때는 다른 사람이 잘 안 느껴지더라구요.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고, 가르치고 싶고, 잘난 체 하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이 잘 안 느껴지더라구요. 귀로는 상대의 말을 듣는 것 같은데,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내 말에 따르게 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상대의 말 가운데 약한 지점을 찾거나 설득할만한 꺼리만 찾게 되더라구요.

상대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서 배우려 하기보다 질투심이 막 생기면서 허점을 찾으려 하더라구요. 그 허점을 공격해서 이기고 싶더라구요. 내가 이겨서 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서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내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싶더라구요. 내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구요.

이러다 보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내 생각만 펼치면 그만이다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겁니다. 상대가 기쁘다고 하든 슬프다고 하든, 아프다고 하든 행복하다고 하든 그저 내 말만 늘어놓으려 하는 거지요. 설득하려 하고 굴복시키려 하고 지시하려 하고 명령하려 하는 거지요.







2.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클 때도 다른 사람이 잘 안 느껴지더라구요.

어떤 때는 저 사람이 나를 좋게 평가하는 건지, 아니면 나쁘게 평가하는 건지에 온통 관심이 쏠리더라구요. 혹시라도 나를 칭찬하는 것 같으면 얼른 그 말만 크게 와 닿더라구요. 어둠 속을 헤매다 큰 불빛을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혹시라도 나를 꾸짖는 것 같으면 얼른 주눅이 들거나 반발심이 생기더라구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으면 내 몸이 상대방을 향해 살짝 기울면서 웃게 되고, 그 사람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더라구요. 언제 또 나를 칭찬하는 말을 할지 기다리게 되구요. 나를 칭찬하는 말이 아닌 것은 대강 흘려듣게 되구요.

반대로 나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내 몸이 상대방에서 조금 멀어지며 인상을 쓰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내 속에는 ‘저 새끼가 또 무슨 말로 나를 욕하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른 말들은 대강 흘려버리고 나를 욕하는지 아닌지에 신경이 곤두서더라구요.

상대가 기쁘다고 하든 슬프다고 하든, 아프다고 하든 행복하다고 하든 그저 나를 어떻게 보는 지에 대해서만 들으려 하고 느끼려 하는 겁니다.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와 관련된 말만 더 듣고 싶고,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그만 입닥쳐’라고 하고 싶은 거지요.







3. 성욕이 강할 때도 다른 사람이 잘 안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남성이고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하지요. 제가 상대 여성을 ‘예쁘지 않아’라고 판단하거나 성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운 존재라고 판단하면 좀 덜 합니다. 그런데 ‘예쁘다’라고 판단하거나 0.0001%라고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상대방의 말을 성적인 관계와 연관시켜 상상을 하게 되더라구요.

상대가 외로워 보이면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때의 안아준다는 것에는 상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성적인 욕망으로 안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지요. 상대 여성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을 때 도와준답시고 손을 내밀 때가 있지요. 그런데 이 때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면서 상대 여성의 몸과 맞닿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도와주겠다는 것을 계기로 어떻게든 몸과 몸이 맞닿고 싶은 거지요.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나의 성욕을 통해 상대를 바라보고, 그의 말을 듣더라구요. 상대가 기쁘다고 하든 슬프다고 하든, 아프다고 하든 행복하다고 하던 호시탐탐 나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았던 거지요.


제가 타인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몇몇 사례들만 생각해봐도 나와 타인 사이에 커다랗고 단단한 욕망의 벽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욕망이 지배에 관한 것이든, 사랑에 관한 것이든, 성에 관한 것이든 말입니다.

나의 욕망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없게 하고, 나의 욕망이 타인의 마음을 느낄 수 없게 하고, 나의 욕망이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그 욕망의 벽이라는 것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구요.







깊은 고요

그나마 타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느껴질 때는 제 마음이 고요할 때입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도 없고 하지 않겠다는 것도 없습니다. 특별히 무언가가 좋다는 것도 없고 특별히 무언가가 싫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보면 문득 어떤 게 좋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픈 마음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자기 삶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 사람이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저도 행복해입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그것이 저도 좋아지더라구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말입니다.

또 어느 순간 문득 어떤 게 싫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픈 마음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자기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 사람이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저도 슬퍼집니다.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 저도 싫어지더라구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말입니다.


제 마음이 고요하기는 고요한데 그냥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함께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장단도 맞춥니다. 함께 욕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확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상대방의 느낌에 따라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낍니다. 그렇다고 그 느낌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기쁘다가도 상대가 슬픈 얘기를 시작하면 그 얘기가 들려옵니다. 제가 슬프다가도 상대가 기쁜 얘기를 시작하면 그 얘기 또한 들려옵니다.

다른 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열려 있고 살아 있으면서도, 나 자신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상대의 마음에 따라 내 마음도 움직이지만, 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 고요라고 해도 될 것 같구요.







제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또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상대가 조금 더 잘 느껴지더라구요. 나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생각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느끼기 위한 생각 말입니다.

누군가 ‘뼈빠지게 일해 봐야 어차피 최저임금이니...한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일해 봐야 김치찌개 하나 사먹기 힘들다니까’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저는 상대의 답답하고 짜증나는 마음을 느끼려 하구요. 이때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를 알면 왜 김치찌개도 하나 못 사먹는다는 말이 나오는지를 알기 쉽겠지요.

누군가 ‘아~~~ 명절만 다가오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차라리 어디 아파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고 하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은 상대가 무언가에 화가 나고 막막한 기분이 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여기서 대한민국의 며느리-시댁의 관계에 대해 평소에 생각하던 게 있으면 그 여성의 마음을 좀 더 느낄 수 있을 거구요.


이래저래 생각해 보니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데는 내 마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고요일 때가 더 도움이 되지 싶더라구요. 크고 깊은 호수의 표면이 잔잔하게 흐르지만 그 속에는 물고기도 살고 풀들도 살고 나무도 살고 있듯이 말입니다.

멍 때리고 아무 생각 없는 고요가 아니라 때론 바람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온갖 것들을 넉넉히 품을 수도 있고, 때론 새로운 생명을 키울 수도 있는 그런 깊은 고요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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