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돌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만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데 저만치서 영화씨가 우리를 보고 웃으며 걸어옵니다. 영화씨는 함께 배드민턴을 치곤하는 동네 사람입니다.
“어머~~~ 우리 순돌이 산책 나왔네~~~”
영화씨가 순돌이 이름을 부르며 환한 얼굴로 웃습니다. 그러자 순돌이도 영화씨한테 달려가 앞발을 들어올리고, 몸을 흔들면며 신이 났습니다.
“아이고 이제 순돌이가 나를 몇 번 봤다고 짖지 않고 좋아해 주네”
특별히 물을 것도 없이 영화씨를 향해 달려가는 순돌이의 뒷모습만 봐도 순돌이가 영화씨를 좋아한다는 거, 길에서 영화씨를 만나서 즐거워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2.
영화씨와 헤어지고 길을 걷는데 저기 몇 분이 길에 조그마한 탁자 주변에 서 계십니다. 탁자 위에는 무슨 전단 같은 게 올려져있구요.
“아이고 이뻐라. 얘가 포메라이언이죠?”
한 분이 순돌이를 보고 아주 반갑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몇 살인지, 털이 어떤지 즐겁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다가 무슨 팜플렛 같은 것을 하나 제 앞에 내미십니다.
“저희 교회에서 이번에 어머니를 주제로 그림 전시회를 하는데요...”
말씀이 자꾸 길어집니다. 교회가 어디서 상을 탔고, <신동아>에 나왔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등등에 대해 한참 말씀을 하십니다. 오른손으로는 순돌이를 잡고 있고 왼손에는 세탁소에 맡길 옷을 들고 있는 저의 몸과 마음이 살짝 답답해집니다.
3.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순돌이가 걷지 않으려고 버팅깁니다. 낮이라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할 수 없이 순돌이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멍멍이가 어디 이동을 하거나 할 때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가방이 있거든요. 가방 안에 넣으니 앞발을 가방에 걸치고 고개만 내밀고는 편안한 자세로 세상 구경입니다. 야옹이와 함께 사시는 분들은 야옹이의 집사가 된다고 하시더니... ^^
집 앞 놀이터를 지나는데 7~8m 저만치서 어떤 분이 순돌이를 보고 크게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셔서 저에게 말을 겁니다.
“어머 강아지가 너무 예뻐요. 몇 살이에요? 강아지 좋아하시나봐요”
환히 웃으시고 목소리도 살짝 높이시면서 저와 순돌이를 번갈이 쳐다보십니다.
“혹시 물지는 않아요?”
순돌이를 만지려고 손을 가까이 대다 순돌이가 째려보니까 살짝 멈칫 하면서 말씀 하십니다.
“아...네...얘가 낯선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왈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한창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순돌이가 그 분을 꿈쩍도 안하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빠, 이 아줌마 누구야? 왜 우리한테 말 걸지? 혹시 뭐 원하는 게 있는 걸까? 아빠 수상해...조심해...’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분의 말씀
“근데 혹시 교회 다니세요?”
순돌이의 느낌이 맞았나 봅니다. 저한테 원하는 게 있었고, 그 원하는 것은 교회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지 않는다고 하고, 순돌이를 데리고 물러서려고 하니까 그분이 말씀 하십니다.
“연락처라도 주시고 가시면 어때요?”
4.
‘아빠 거 봐. 내가 뭐랬어? 뭔가 원하는 게 있는 아줌마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맞지?’
집에 오는 길에 순돌이가 의기양양하게 저를 바라봅니다.
‘영화 아줌마는 내가 몇 번 봐서 아는데 참 좋은 사람이야. 근데 저 아줌마는 뭔가 이상했단 말이야’
교회 다니라고 하는 거야 이상한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다만...
그분과 헤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처음 놀이터 앞 저만치서 눈길이 마주쳤을 때부터 저도 살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걸음이 조금 느려지고 몸이 약간 움츠러드는 것 같고 순돌이를 붙들고 있던 힘도 조금 더 주게 되더라구요. 크게 웃으며 다가오셔서 환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것은 맞는데 그래도 뭔가 찜찜하더라구요.
영화씨를 만났을 때는 달랐어요. 영화씨가 웃으니 저도 웃게 되고, 몸이 저절로 영화씨를 향해 조금 더 다가가게 되고, 순돌이를 붙들고 있던 힘도 빼게 되더라구요. 순돌이도 영화씨를 보자마자 ‘아이고~좋아라~’하고 달려갔구요.
말하지 않고 묻지 않아도 순돌이와 저에게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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