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에 보면 여성을 스토킹하는 남자가 나옵니다. '너는 내 꺼'라느니, '니가 사랑하는 건 그 놈이 아니라 나'라느니, '우리는 하나가 될 거야'라느니 하는 소리를 합니다.
스토킹하는 남자가 여성에게 '니가 사랑하는 건 저 놈이 아니라 나야 나!'라고 한다면
그건 이 남자가 그 여성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거겠지요.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인생 맛집에 가서 우주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을 함께 먹었다고 해도 서로의 느낌은 각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각자, 제 각각, 자신만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나의 코와 나의 위장과 나의 발가락이 오직 나만의 것이듯, 그 사람의 마음도 오직 그 사람만의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도 없고,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질 수도 없고, 그 사람과 직접 연결될 수도 없습니다. 컴퓨터 디스크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정보를 빼 낼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럴 방법이 없는 거지요.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환상이거나 착각일 겁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 몸짓을 통해 어렴풋이 상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일 겁니다. 그나마 정말 대빵 완전 열심히 노력하면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정도겠지요.
인간이니까 '우리는 하나야!'라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느낌일 뿐이고, 어떤 인간도 실제로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을 하고, 너 없으면 난 못 산다고 해도 둘은 둘이고, 셋은 셋일 뿐입니다. 연인이나 가족도 그렇고, 국가나 민족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자이고 개인일 뿐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마음을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각자 개인일 뿐이라는 것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거나 사랑할 수 없다는 건 아닐 겁니다. 우리가 각자 개인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데는 그 나름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겠지요.
이해나 사랑이란 건 벌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내 밖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한데 섞여 있다면, 이해고 사랑이고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을 거구요.
드라마에서 하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펜이 있다는 거나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직장 동료가 있다는 것 등을 수첩에 적습니다. 기억하기 위해서요.
밑도 끝도 없고, 전혀 가능하지도 않은 '우리는 하나'라는 감정보다는 하나 하나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하진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싶습니다.
'사랑한다는 데 그런 게 필요해?' '그렇게까지 하는 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노력도 없이 어떻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감정만 내세우는 스토커가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상대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노력하는 하진이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해서 정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을까요?
내 안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강렬한 감정이 있다고 해서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저 별 어딘가에 우리들의 영혼이 쉬는 곳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그런 바램을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런 별은 존재하진 않겠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온전히 너의 마음을 이해한다거나 우리의 영혼이 하나되는 순간이란 것 또한 없을 겁니다. 그런 느낌이나 그런 바램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소나무 하나, 전나무 하나, 동백꽃 하나, 진달래꽃 하나가 모여 큰 산이 되듯이
당신 하나, 나 하나, 이 사람 하나, 저 사람 하나가 모여 우리가 되는 거겠지요.
그 하나 하나를 이해하려 하고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서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좀 더 따뜻한 인연을 맺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솟아나기도 할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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