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는 한 2, 3년 배우면 뭐라고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요.
그저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시작했는데...이제는 포기하지도 못하고...여러 해가 지났지만 뭔가 할 수 있는 거는 없고...꼭 오래된 연인 같아요. ^^
어제도 피아노 수업이 있었어요.
샘 : 어머, 앞부분은 정말 잘하셨어요.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났어요. 마치 CD를 듣는 것 같았어요.
나 : 그래요? 헤헤...
샘 : 근데 여기 이 솔에서 레를 연결할 때는 레가 너무 튀지 않도록 살짝 쉬어간다는 느낌이면 좋겠어요.
나 :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건반을 두드리며) 이렇게 하라는 거지요.
샘 : 맞아요. 그렇게 하면 돼요. 잘 하셨어요.
나 : 헤헤~~
샘 : 그리고 여기 이 라 음이 너무 강하게 났어요. 강한 소리 말고 여유 있으면서도 깊은 소리가 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바흐의 곡이니 바흐답게 담백하면 좋겠구요.
이때부터 다시, 다시, 다시가 시작돼요. 한 번 다시, 두 번 다시, 세 번 다시....그러다 한 열 번 가면 슬슬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 오르기 시작해요. 건반을 치면서도 속으로 생각을 한다니까요.
참자 참자 어차피 니가 좋아서 배우러 온 거고, 샘은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거잖아
그냥 악보 따라 손가락을 누르는 것도 어렵지만, 단지 누르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소리를 낸다는 건 더 어려운 일 같아요.
강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여유로우면서도 깊은 소리라...헐!!!
그 소리를 찾으려면 건반을 이렇게도 눌러보고 저렇게도 눌러봐야 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앗싸! 할 때가 있어요. 샘이 말하고 들려줬던 그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난 거지요.
근데 여기서 또 문제는 그 소리가 낫다고 해서 늘 나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슬프게도... ㅠㅠ
잠깐 있다 다시 치면 또 안나고,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되니 이게 참 사람 미칠 노릇이에요.
연습 때는 그나마 그 소리가 났다가도 레슨 때 샘이 옆에 앉아 있으면 왜 그런지 손가락 끝이 달달 떨리는 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되어버리고 ㅠㅠ
샘 : 어렵죠? 바흐가 원래 어려워요
나 : (시무룩하게) 네...
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이런 날들의 연속이에요. 너무 좋아서 다가갔다가도 화들짝 놀라 좌절하기도 하고 그런 날들 ^^
그래도 어느만큼이라도 깊은 소리가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곡 전체를 연주하지 못해도 어느 한 음, 어느 한 마디만이라도 제대로 소리가 난다 싶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에요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소리의 깊이만큼 제 마음도 삶도 깊어지는 것 같구요. 뭐랄까 뭔가 더 안정되고 든든해진다고 해야할지...
음반으로는 잘 느끼기 어렵고,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도 부족한, 내가 직접 피아노 건반을 눌러서 낸 소리가 내 마음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이 난리를 계속 피우는 것 같구요.
피아노의 깊은 소리와 함께
제 삶도 더 깊어지는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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