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립과 독립은 종종 그들에게 권력과 자부심의 감정을 주었는데, 18세기 초의 다음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점잖고 학식 많은 의사가 유대인은 군주도 배출하지 못하고 정부에 참여도 못하면서 자부심이 강하다고 부드럽게 나무라자…어떤 유대인이 거만한 태도로 우리는 군주는 아니지만 그들을 통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
자기 민족에게 절대적 군주로 군림하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동료들 중의 제1인자로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주인이 내린 작위보다도 ‘모든 유대 민족의 특권계급에 속하는 랍비’라는 데에서 또는 ‘성지의 군주’로서 더 큰 자부심을 느꼈다. 18세기 중반까지 그들은 “다른 어떤 종류의 신하보다 모든 영역에서 가치가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계 유대인의 의견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나 그 이후에나 ‘배운 기독교인’의 다음 대답을 어느 누구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소수를 위한 행복입니다. 전체 민족으로 볼 때는 가는 곳마다 쫓겨나고 정부도 없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권력도 없고 위신도 없으며 이방인으로 세계를 유랑하고 있습니다.” - 179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사
마름
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은 관리인.
조선시대부터 소작제를 통한 토지 경영방식은 지주가 직접 소작인을 관리하거나, 일정한 대리 감독인을 두어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전자는 주로 중소 지주가 본인 또는 가족의 힘만으로 그 관리를 수행할 수 있는 경우이고, 후자는 멀리 떨어진 곳에 토지를 가진 중소 지주와 여러 곳에 많은 토지를 가진 대지주가 직접 관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채택하는 방법이었다. 마름은 후자의 경우에서 발견되는 부재지주의 대리감독인으로서, 지주의 토지가 있는 현지에 거주하면서 추수기의 작황을 조사하고, 직접 각 소작인으로부터 소작료를 거둬들여 일괄해서 지주에게 상납하는 것을 주된 직무로 하였다.
일제시대 때 일본에 협력하는 조선인 경찰이나 뭐 그런 게 있었겠지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같은 조선인이지만, 이들이 가진 힘은 다른 조선인에 비해 아주 컸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배 민족인 일본인을 넘을 수는 없었을 거구요.
피지배 집단의 일원으로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고 더 많은 힘을 가졌다는 겁니다.
이들은 지배자의 지시에 따르고 그들을 위해 일함으로써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때로는 지배 집단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을 비하하고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조선인이면서도 조선인이 아닌 척하거나 그렇게 보이려고도 했을 거구요
안전이나 이익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랬을 수 있구요.
노동자들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있지요. 계장이 되든 과장이 되든 아무튼 조금만 지위가 올라가도 완장질입니다.
지가 마치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양 거들먹거리고 다른 사람을 하인 부리듯 하려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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