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말라 시내 중심부에 있는 거의 모든 공중전화가 고장이 나 있어서 어렵게 아마니와 통화를 하고 오늘(1월12일)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는 한국에 갔던 적이 있는 친구로 우리의 팔레스타인 여행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를 기다리는데 주변에 있던 팔레스타인 경찰들이 먼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어딜 가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경찰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해 와서 제가 간단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들고 있는 장벽과 점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주 안 좋은 상황입니다.”
“한국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 상황을 알릴 건가요?”
“물론이죠.”
“좋아요.”
경찰들과의 짧은 만남 뒤에 아마니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면서도 9시까지 헤브론에서 라말라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몇 시에 집에서 출발 했는지 물었습니다. 서안지구가 그리 큰 곳은 아니지만 헤브론은 아래쪽에 있고, 라말라는 가운데쯤 있습니다.
“집에서 언제 출발 했어요?”
“6시에요.”
“6시?”
“오는 길에 체크 포인트가 많이 있으니까 그렇죠.”
팔레스타인인들에겐 체크 포인트(검문소)가 숨 막히는 일상생활입니다. 이스라엘이 도로 곳곳에 체크 포인트를 세워 놓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가로 막거나 제한하고 있으니깐요. 언제 체크 포인트가 열리고 닫힐지, 그리고 언제 통과할 수 있을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겠죠.
아무튼 이렇게 아마니와의 첫 대화를 끝내고 다른 친구들을 소개한 뒤 찻집으로 갔습니다. 찻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건지를 의논하고 헤브론으로 가기 위해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로 이동 했습니다.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를 지나기 위해서는 모두 4개의 회전문을 지나야 합니다. 회전문 위에 있는 파란불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들어가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회전문이 움직이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이들의 뜻에 따라 컨베이어 벨트 위를 움직이는 물건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첫 번째 회전문을 통과하면 두 번째 회전문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여기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스피커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말투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러다 어떤 얘기가 나오니깐 아마니가 옆에서 설명을 해 줍니다.
“나블루스와 제닌으로 가는 다른 곳의 체크 포인트가 닫혔으니 그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통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방송에서 체크 포인트가 왜 닫혔으며 언제 열린 건지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또 물론 그런 것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그런 것까지 설명할 만큼 친절하진 않으니깐요.
어쨌든 두 번째 회전문을 지나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 봤던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합니다. 검사가 끝나면 세 번째 회전문을 지나고 마지막 네 번째 회전문을 지나면 검문소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마지막 회전문을 지나면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고, 한국말이었지만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아마니가 옆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믿을 수 있겠냐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잠깐 화를 내는 것은 그야말로 별 일이 아니니깐요.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를 지날 때마다 매일 같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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