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이 겪은 점령 이야기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감옥에 갔다 왔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깐 아미니 가족들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리고 라에드가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줘서 쉐켈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쉐켈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줬습니다.
쉐켈 이야기
아부 디스 대학 학생인 쉐켈은 2003년과 2005년 두 번 감옥에 끌려갔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 가운데 하나가 법적 절차 없이 행정 처분만으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인데 쉐켈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쉐켈을 가두면서 이스라엘이 내세웠던 명분은 이슬람주의 활동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쉐켈에게 고문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리적 압박이 심합니다. 발로 차고 욕을 하기도 하구요, 얼굴에 천을 뒤집어 씌워 놓기도 하고 잠을 안 재우기도 합니다. 환자가 생겨도 치료나 의약품을 제공을 하지 않구요. 저도 감옥에 들어갈 때 머리에 상처가 있었는데 의사를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쉐켈
“아침 5시에 기상을 하고 운동을 잠깐 합니다. 그런데 밥 먹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 마음대로 주고 싶을 때 줍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부러 9시에 밥을 가져오는 거에요.”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뜨기 전에 밥을 먹고 낮에는 단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했던 거죠.
“그리고 하루 세 번 수감자들 인원 파악을 합니다. 모두 밖으로 불러내서 숫자를 세죠.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도 계속해서 그렇게 합니다. 감옥의 상황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입니다. 12명이 생활 가능한 공간에 22~25명을 넣어 둬서 잠을 잘 때 바로 누울 수 없어서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잡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 봤습니다.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서류 검사를 위해 적어도 2시간씩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통고를 해서 조사할 게 있다고 오라고 합니다.”
쉐켈이 친척들 이야기도 들려 줬습니다.
“삼촌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3개월마다 3개월씩 구속 기간을 연장해서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구요, 부인의 면회도 금지했습니다. 처음에 잡혀갔을 때는 10일 동안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금 친척들 가운데 모두 20명이 감옥에 있습니다. 때로는 단지 친척이라는 이유로 체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체포될 때 다른 사람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체포하려고할 때는 어떤 조직이나 변호사도 막을 수없습니다. 심지어는 체포되고 난 뒤에 왜 우리를 체포했냐고 물으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비밀이라고 합니다.”
아부 마아문 이야기
1981년부터 교사로 생활하고 있는 아부 마아문(마아문의 아버지라는 뜻)은 2번 감옥에 갔었다. 하마스와 관련 있다는 이유였고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체포되었다.
“수갑을 계속 채워 놓기도 하고 더러운 천을 얼굴에 씌워 놓기도 했습니다. 3일 동안 잠을 안 재우기도 했구요. 2번째 체포되었을 때는 선거에 출마한 상태였습니다.”
3일 동안 잠 안 재우기, 한국에서도 벌어졌었던 일이다.
“형제들 가운데 4명과 사촌들 가운데 4명 그리고 여동생의 남편과 제 아내의 형제 한명도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제 아들은 2005년 9월에 체포되어서 지금 감옥에 있구요.”
이런 경우를 우리는 풍지박산이라고 하는 걸까?
“이틀 전에 제 딸 타쿠아가 오빠 면회를 갔다 왔습니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서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 왔습니다. 감옥이 여기서 1시간 거리인데도 말입니다. 면회는 45분 동안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와 아내는 아들 면회를 갈 수 없습니다.”
타쿠아에게 오빠를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냐구 물었습니다.
“매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아부 마아문에게 아들과 연락을 할 수는 있냐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할 수는 없구요, 편지를 보내면 몇 달씩 걸립니다. 그나마 타쿠아와 같은 어린 애들은 면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수감자 가족들이 5살짜리 꼬마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게 하기도 합니다. 누구든 어떤 조직이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16세 이하의 수감자들도 있는 상황입니다.”
수감자 가족들의 상황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제 한 남동생은 애들이 10명이 됩니다. 다른 동생은 8명이구요. 일부 자선 기관이나 이웃과 친척들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생활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내인 유스라에게 심정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잡혀갔을 때 많이 슬펐습니다. 어느 어머니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들은 대학 4학년이었는데 남편이 감옥에서 나온 1주일 뒤 아들이 감옥에 갔습니다.”
옆에 있던 딸 유다(14세)에게 물었습니다.
“오빠를 지금 만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오빠를 만나면 아주 기쁠 거에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들은 독재자에요. 이 땅에서 떠났으면 좋겠어요.”
옴 아흐마드 이야기
옴 아흐마드는 아흐마드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요르단에서 오다가 국경에서 체포 되었습니다. 학생 활동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옴 아흐마드는 아들 얘기를 하다가 자신들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그나마 우리 상황은 나은 편입니다. 어떤 경우는 30년, 40년씩 감옥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망한 뒤에 형량만큼 시신을 감옥에 두는 경우도 있구요. 어떤 때는 이스라엘이 형량을 2천년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량을 채우라고 시신을 감옥에 두다니......
“이스라엘은 아들이 하마스와 관련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와서 우리 아들을 체포하였습니다. 도저히 받아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옆에 있던 딸 메리안(7세)에게 심정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가끔 오빠를 보러갑니다. 많이 슬퍼요.”
아들 야세르(11세)에게도 질문을 던졌더니 엄마를 쳐다보며 아주 쑥스럽게 대답을 합니다.
“지금 형에게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없어요.”
“이스라엘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요?”
“지옥에나 가라고 하세요.”
이렇게 해서 20명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전에 별 약속 없이 쉐켈과 함께 그냥 방문 했는데도 모두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고, 한 분 한 분 차근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숙소인 아마니 집으로 돌아오니 아마니 아버지가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어... 어... 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어요. 다들 슬픈 얘기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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