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스라엘/06년·09년 팔레스타인

열리지 않는 바다

순돌이 아빠^.^ 2009. 10. 10. 19:38
가자지구에 들어간 첫 날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완전 봉쇄를 하고 있어서 들어 갈 수 없었고, 그 다음 가자지구가 열리고 나서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출입 허가를 받는데 2주일쯤 걸렸습니다.

황당했던 택시 기사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에레즈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루살렘에서 택시 기사와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기사는 300셰켈(약 7만원)을 요구했고, 이 택시, 저 택시 어슬렁거리며 한참을 흥정을 한 뒤 180셰켈에 낙찰을 보고 우리는 한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 1시간 20분쯤 뒤 드디어 에레즈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180셰켈을 주려고 내리려는 순간,

“아니, 왜 180만 주세요?”
“180이라고 했잖아요.”
“무슨 소리에요. 한 명에 180이에요.”
“그런 말 한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건 버스가 아니라 택시에요.”
“내가 분명히 한 명에 180이라고 했어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야, 그냥 내려.”

 
사진1 에레즈 체크 포인트 입구


이렇게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에레즈 체크 포인트로 갔습니다. 에레즈는 국경 검문소처럼 아주 큰 규모였습니다. 저는 먼저 밖에서 사진을 찍고, 차량 통제선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사진기를 꺼내서 찍었습니다. 그러자 군인 한명이 바로 달려 왔습니다.

“지금 사진 찍으셨나요?”
“네.”
“그거 디지털 카메라인가요?”
“네.”
“지금 바로 사진을 지우세요.”
“알았어요. 보세요, 지웠어요. 됐죠?”

그리고 출입국 사무소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드디어 가자지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양 옆과 하늘이 막힌 길고 긴 터널을 지난 뒤에.

열린 바다와 열리지 않은 바다

 

사진2. 구슬을 찾고 있는 아이들


감시 카메라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 쪽 터널을 지나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있고 밖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쪽 터널을 지나니 아흐메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곧바로 바다로 향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누구에게나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주기도 하고, 배를 타고 나가면 이 세상 어딘가에 다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하지만 가자의 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자의 어민들은 해안에서 8마일까지만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상 나갔다가는 이스라엘 해군의 사격을 받게 됩니다. 파도는 끝없이 흘러가도 사람은 흐를 수 없는 가자의 바다입니다.

바닷가에 서 보니 아이들이 바닷가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살람 알레이쿰’하며 인사도 건네 보고 악수도 청해 보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낯선 이를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아무튼 한참 동안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가 보고 있자니 모래와 자갈을 뒤져서 구슬을 찾고 있었습니다. 왜 거기서 구슬을 찾고 있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구슬을 찾아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나블루스에 있는 발라타 난민촌에 갔을 때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구슬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진3 죽은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비석


아이들의 모습을 잠깐 구경하고 나서 샤띠 난민촌으로 향했습니다. 난민촌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집들이 늘어서 있고 아이들은 뛰어 놀고 있고. 그리고 샤띠 난민촌 한 가운데서 1, 2차 인티파다 때 샤띠 난민촌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들이 적힌 비석을 보았습니다. 그네들도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부모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그들도 팔레스타인인으로 태어나 살다가 1차 인티파다 때 104명, 2차 인티파다 때 71명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인인데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동네 아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서로 자기를 찍으라고 난리들입니다. 우리를 안내해 줬던 아흐마드는 연신 아이들 보고 저리 가라고 하구요. 시장에 들어서니 장사하는 사람들도 이것저것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라고 웃습니다. 한국이든 팔레스타인이든 어딜 가나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온갖 먹을 것들이 넘치는 곳입니다.

 

사진4 생선을 팔고 있던 아저씨. 웃는 모습이 정말 동네 아저씨 같습니다.


감옥에 갇힌 새의 노래

서안지구에 사는 사람들도 가자지구는 서안지구보다 상황이 훨씬 열악하다며 우리가 기회가 되면 꼭 가보라고 했습니다. 같은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서안지구에서 살다가 가자지구로 가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꾸로 가자지구 사람이 서안지구로 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가자지구에서 만난 엠티아즈라는 친구도 서안지구 라말라에 사는 오빠를 6년 동안 만나지 못했고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새의 노래’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서안지구에 있는 비르제이트 대학교 앞 도로를 이스라엘이 봉쇄해서 학교를 가기 위해 싸우는 학생과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입니다. 여기에 보면 가자지구 출신 대학생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몇 년 동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고, 졸업식 때 가족들이 올 수 없어서 우울한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팔레스타인 자체가 하나의 큰 감옥이라면 가자지구는 바다마저 채 열리지 않은 감옥 속의 또 다른 감옥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 감옥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