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가면
알제리 혁명 5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프란츠 파농 평전 - 나는 내가 아니다
어떤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드는 글이 있다.
또 어떤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쿵쿵 내려치는 듯한 글이 있다.
‘프란츠 파농’의 글이다.
특히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몇 번 읽어도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지배’가 문제다.
그러나 그 지배에 복종하고 순응하고 협력하며 나도 지배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피지배자의 정신 상태도 문제다.
해방은 가을날의 곶감이 아니어서 반드시 해방적 의식을 가지고 해방적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해방적 의식은 해방된 사회 체제로부터 오게 된다.
백인의 흑인 지배,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사회 구조와 의식의 문제, 민족해방운동과 민중 의식 등에 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은 게 ‘프란츠 파농’의 글이다. 또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맨 앞에 나오는 파농의 폭력에 관한 글도 논쟁할만한 내용이다. 인종 지배라는 말을 계급 지배, 성적 지배 등으로 바꿔서 생각해 봐도 좋을 글들이다.
어느날 성 베드로가 천국의 입구에 다다른 세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백인이고 또 한 사람은 물라토(혼혈)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흑인이었다. “네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그는 백인에게 물었다. “돈입니다.” “그럼, 너는?” 그가 물라토에게 물었다. “명예입니다.” 이번에는 성 베드로가 흑인에게 물었다. 흑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저는 이 두 양반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이면 족합니다.”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가운데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라고 번역된 책도 있음)
<흑인 노예>
인종차별이란 한 인종이 다른 인종에 대해 갖는 근거 없는 증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한 보다 강력하고 보다 부유한 한 인종이 자신들보다 열등한 다른 인종에 대해 갖는 경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가운데
깜둥이는 백인이 만들어 낸다. 그러나 네그리튀드(黑人性)를 창조하는 것은 흑인들이다. 식민주의자가 베일을 공격하는데 대해 피식민자들은 베일 숭배로 맞선다. 하나의 동질성을 띤 전체 속에서 미분화 상태에 있던 한 요소로서, 베일은 타부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리고 베일을 대하는 특정한 알제리 여성의 태도는 외국 지배를 대하는 그녀의 전반적인 태도와 항상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 [혁명의 사회학] 가운데 (새로 번역된 책이 [알제리 혁명 5년])
민중들 속에 쌓여있는 분노의 힘에만 의존한다면 3일 혹은 기껏해야 3개월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해방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거나 거대한 적의 군대를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일반민중의 의식수준을 향상시키려들지 않는다면 인간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완강한 용기나 훌륭한 슬로건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
지배계급이 전적으로 흑인이나 아랍인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부르좌지의 요구는 순수한 민족화운동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단지 지금껏 외국인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부르좌지의 수중에 넣으려는 염원에 의한 것이다. -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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