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우유를 사서 띨래띨래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1.
어린이 집 앞에 세 사람 서 있습니다.
하는 모습을 보니 한 사람은 선생님이고 한 사람은 어린이집 학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꼬마 손녀를 데리러 온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선생님 : 00야 내일 또 와. 내일은 울지 말고.
아이는 무슨 심통이 났는지 별 대꾸도 없이 할아버지 손을 끕니다.
할아버지 : 00야 선생님한테 인사 해야지.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인사하라고 하니깐 선생님이 먼저 큰 소리로 ‘안녕히 가세요’하면서 크게 배꼽 인사를 합니다. 그러자 아이도 배꼽인사를 하며 ‘안녕히 계세요’합니다.
맞네요. 내가 인사를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존중 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겠어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겠네요.
2.
저만치 앞에서 아이가 한 손에는 엄마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호떡을 들고 걸어옵니다.
“엄마, 저기서 아저씨가 찰흙으로 이거 만들었어”
“하하, 찰흙이 아니고 밀가루야”
"어? 그래?"
그러고 보니 찰흙이나 밀가루나 무언가를 만들기는 매한지 입니다.
3.
잘 차려 입은 한 사람이 제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꺼억’하며 큰 소리로 트림을 하더니 곧 ‘캬악’하고 ‘퇘’하면서 침을 뱉네요.
사람이 트림을 하거나 침을 뱉는 것이야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겠지요. 그저 잘 차려 입은 옷과 그 사람의 행동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 왔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 차려 입었겠지요. 잘 보이려는 그 사람 앞에서도 그리 트림을 하고 침을 뱉을지 싶었습니다.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말과 행동이 한결 같으면 우린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겠지요.
4.
집 가까이 왔는데, 한 아이가 하늘을 보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시선으로 ‘어어, 와와’하며 큰 소리를 냅니다. 노래를 하나 싶었는데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부르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잠깐 그러고 마나 싶었는데 한동안 계속 그러고 있었습니다.
자폐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세상에는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 마냥 여러 모양, 여러 생각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말고 그저 행복하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5.
아파트 입구에서 몇 사람이 어울려 ‘너 우리랑 같이 떡볶이 안 먹을래?’하며 깔깔대며 웃습니다. 가방을 매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양새를 보니 학교 다녀오는 초딩들인가 봅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한 아이 말을 걸어옵니다.
“1층에 사세요?”
“아니요. 8층에 살아요. 1층에 살아요?”
“아니요. 3층에 살아요”
“네...”
자기도 1층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저한테는 왜 1층에 사는지 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모르는 얼굴이지만 서로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눠서 좋았습니다.
저는 걸어서 가려고 계단을 올랐는데 1층에서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린 아이들과 다시 마주쳤습니다. 한 아이가 ‘어!’하면서 아낸 체를 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1층에서 만나고 3층에서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이제는 어느새 아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지요.
6.
가게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은 길, 길어야 5분 남짓 될 시간 동안 제 앞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모두 똑같은 하루하루인 것 같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참 많은 인생과 이야기가 이리저리 오가는 시간입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세상인 것 같지만 누구와 어떤 말, 어떤 눈빛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삶은 여러 모양을 갖게 됩니다.
우리 조금 더,
다른 이를 향해 눈을 돌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떨까요?
어쩜 그 속에,
우리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삶의 행복이 있는 건 아닐까요?
꽃다지 - 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