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여러 작품들

[아시아 리얼리즘] 전시회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10. 8. 17. 17:56

제가 살면서 이런 기회가 얼마나 자주 있을까 싶습니다. 한 전시회에서 한국, 일본, 태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많은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결혼식 뷔페에 음식 가지는 많지만 뭔가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약간의 허전함도 있구요. 아무튼...

 

제가 이 전시회를 2번 봤습니다. 2번째 갔을 때 함께 간 친구에게 한 작품의 제목을 손으로 가리고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일까를 물었습니다. 친구가 농민들이 정미소에서 쌀을 거시기하는 모습이라고 대답을 했지요.

 

제가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 제목을 보여 주니깐 친구가 약간 놀라며 웃었습니다. 베트남인들이 미국과 민족해방전쟁을 벌이던 당시, 농민들이 전선에 있는 병사들에게 보낼 쌀을 거시기하던 모습이었거든요. 작품의 의미가 확 달라지는 거지요. 재밌죠? ^.^

 

우리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해질 녘 노을 아래 펼쳐진 논과 들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나요? 소를 타고 들을 달리는 농민을 보면서 우리는 무얼 느끼나요?

 

누군가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나 활력과 생기 넘치는 삶의 순간이라고 느끼겠지요. 또 누군가는 나락 타작해 봐야 지주들한테 바치고 나면 당장에 한 해 먹을 꺼리가 걱정인 저녁노을이겠지요. 아니면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노동의 순간일 수도 있을 거구요.

 

[거대한]이란 작품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기계는 점점 더 거대한 모습으로 인간 앞에 다가오고, 어느새 눈을 떠 보면 인간은 초라한 모습으로 기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지요.


 


 

도로 건설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 있었습니다. 마르고 굽은 허리, 핏줄이 튀어나온 팔이 힘겨운 노동의 시간을 이겨나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한 인도 작가는 노동절 날에 사고가 나서 실려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기도 했지요. 제가 인도에서 봤던 노동자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느님과 예수, 천국과 지옥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을 마치 보기나 한 것처럼 상상으로 그리던 작가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그림에 상상이 아니라 사실을 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사실이란 어떤 것일까요? 정말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일까요?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미술, 무엇을 위한

 

어느 작가나 어디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이제 민중미술이니 비참한 노동자의 삶이니 하는 것들은 저 세상에 보내 버리자고 합니다. 큰 착각입니다. 그들이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삶과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요.

 

전시회를 5개의 꼭지로 나누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노동자를 환호하다]입니다. 이 꼭지를 설명하는 글이 벽에 붙어 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0-40년대의 폭발적인 시기를 중심으로 거리의 걸인, 노동자, 농민, 일반 민중의 삶에 미술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제2차 대전 이후에도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단적인 지점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노동자, 농민, 예술가, 지식인 계층의 구분 자체를 부정한 채, 노동자 이미지를 영웅화하는 작업이 계속됩니다.

 

노동자를 영웅화 했다는 말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이 그랬듯이 여기저기서 노동자를 영웅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영웅화’라는 것을 예술의 영역에 정치가 지나치게 개입한, 조금은 억지스러운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예수를 영웅화 하고, 교회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독교를 찬양했던 작품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왕이나 귀족 집안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극단적인’ ‘영웅화’는 아닐까요?

 

혹시 이 글을 쓴 사람이 이미 미술은 지배자를 위한 것이고, 지배자를 표현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겠지만...

 

그러니깐 지배자를 표현한 것은 당연하고 우아해서 미술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고 전봇대를 타고 구리를 캐는 노동자를 그리는 것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판깨안 / 베트남/ 1972년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 / 1985년

 

앤디 워홀이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이고, [전쟁과 리얼리즘] 꼭지의 해설처럼 베트남인들이 전쟁에 대해서 그리면 미술은 ‘승전을 기념하고 선전하는 목적을 위해...유용한 수단’이 되는 걸까요?

 

이런 저런 얘기를 떠나 흔치 않은 기회이고 볼만한 전시였습니다. 다만 작품들을 보기 전에 벽에 있는 해설 글을 읽지 말고, 차라리 작품을 보고 나서 해설 글을 읽고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해설가와의 대화가 아니라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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