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여러 작품들

고야의 그림을 보며

순돌이 아빠^.^ 2010. 7. 17. 13:15

 

[I, Goya-고야가 말하는 고야의 삶과 예술]이라는 책을 펴서 안에 있는 글은 안 읽어 보고 그림만 봤습니다. 직접 그림을 보지 못하고 책으로만 봐야 한다는 게 아쉽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전혀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책으로라도 보는 게 낫겠지요. ^^

 

시간을 두고도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1808년 5월2일]과 [1808년 5월3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날 스페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싶어 책을 잠깐 찾아 봤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프랑스 군의 진출과 바요나에서 스페인왕의 퇴위는, 마드리드 시민들이 1808년 5월2일에 프랑스 군에 대항하여 본기를 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5월2일 사태는 프랑스 군이 왕실의 잔류 가족을 파리로 이송하려고 할 때, 항의 군중들에 대한 프랑스 기병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시작되어 전국적인 독립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 강석영․최영수, [스페인․포르투갈 사], 240쪽, 대한교과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으로 치고 들어 갔고, 스페인 민중들이 프랑스 군대에 맞서 싸웠고, 그러면서 프랑스 군이 스페인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었나 봅니다.

 

전쟁과 학살의 참혹함을 드러낸 것으로 잘 알려진 두 작품을 자세히 보니 ‘참혹함’, 그 이상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08년 5월2일]

[1808년 5월2일]을 먼저 보면 이 장면은 난투극입니다. 말을 탄 군인들 뒤에 보이는 스페인 민중들의 무기라고 해야 단검이나 막대기 등이고 그야 말로 맨손으로 다같이 싸우러 나온 겁니다.

 

그림 가운데 위쪽 부분에 한 할머니가 말을 타고 있는 군인의 허리를 붙잡고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군인이 깔을 빼들어 그 할머니를 찌르려고 합니다. 이 다음 순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군인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할머니를 찌르지 않았을까요?

 

한국인들이 한국군이나 경찰에 맞설 때도 그렇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맞서 싸울 때도 그렇고, 이라크인들이 미군에 맞서 싸울 때도 그렇고 민중들의 여러 투쟁 사례를 보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렇게 일단 손에 잡히는 아무 거나 들고 나와서 잘 훈련된 군인들과 죽을 동 살 동 치고 박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들도 무장을 하고 조직을 만들어 싸우는 거지요.

[1808년 5월3일]

[1808년 5월3일]은 [1808년 5월2일] 다음날의 상황이겠네요. 군인들은 사람들을 끌고 와서 총살을 시킵니다. 이미 죽어 쓰러진 사람들, 곧 총을 맞을 사람들, 끌려 오고 있는 사람들이 한데 보입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그림에 관한 설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808년 5월2일]...영웅 없이 익명에 의해 저질러지는 전쟁의 무지막지한 대량학살...[1808년 5월3일] 냉혹하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는 이 대량학살은 혼랍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첫 번째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저자는 [1808년 5월2일]의 혼란스러운 살인, [1808년 5월3일]의 질서정연한 살인을 강조하고 있는데 제 생각은... 중요한 것은 혼랍스럽냐 질서정연하냐가 아니라 민중들이 군대에 맞서 싸웠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이지 않을까...

 

[1808년 5월2일]의 민중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은 지금 무언가에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1808년 5월3일]에서 끌려와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도 그들의 표정을 보면 두려워 하기도 하고 분노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끌려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 앞에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죽음의 순간까지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총구 앞에서도 꽉 움켜쥔 주먹!

 

여러 표정의 사람들에 비해 살인을 저지르는 군인들의 얼굴과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표정이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 있다는 것인데 같은 동작, 같은 옷과 모자의 표정 없는 살인기계일 뿐이지요.

 

[사투르누스]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에 보면 모든 것을 집에 삼킬 듯한 괴물이 나옵니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위해 인간의 표정도 마음도 잃고 괴물로 살아가는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의 참화] 동판화 연작 가운데 ‘이것은 더 나쁘다’를 보면 프랑스 군인들은 스페인인들의 팔다리와 목을 잘라 나무에 걸어 놓습니다. 죽은 자를 이용해 산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요. 저렇게 팔다리 잘려 나무에 매달리기 싫으면...

 

 

같은 연작 가운데 ‘불운한 어머니’를 보면 남성들이 한 여성의 시체를 들고 가고 한 아이가 뒤를 따르며 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전쟁이 남기는 어미와 아이의 눈물과 이별.

 

한국과 이스라엘, 미국의 우익들은 틈만 나면 전쟁을 하자고 합니다. 무지랭이들을 전쟁으로 내몰려고 하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잘 써 먹는 방법이 ‘공포’를 심어 주는 겁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겁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북한과 테러리스트가 호랑이 역할을 자주 하게 되지요.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니 우리가 먼저 죽이든지 아니면 무기를 더더더 많이 사서 모으자고 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호랑이는 정말 한국과 이스라엘과 미국을 집어 삼킬 힘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럴 힘이 없는데도 자꾸 ‘호랑이 호랑이’ ‘괴물 괴물’ ‘무섭지 무섭지’ 하면서 사람들의 넋을 빼 놓는 걸까요?

 

[공포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에 보면 사람들이 도깨비에 놀라 달아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덩치의 도깨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지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앞에 달아나는 사람들.

 

[프란시스카 사바사 가르시아의 초상] 

 

[프란시스카 사바사 가르시아의 초상]을 보면 무언가를 또렷이 바라 보고 있는 한 여성의 눈빛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멋쟁이 여인과 뚜쟁이] 속의 여성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구요.

저 같이 개뿔도 모르는 놈이 봐도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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