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울적한 맘이 사흘 째 가시질 않습니다.
가을 오는 길목에서 가벼이 새 바람을 맞아도 좋으련만...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Michel Warschawski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쓴 on the Border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그 사람이 쓴 다른 책 Toward Open Tomb라는 책을 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실의 끔찍함을 보여 주는 각 장마다, 각 문단마다 그리고 각 사례마다... 나는 자주 눈물과 함께 이 글을 썼습니다.
전쟁이니 점령이니 하는 것들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면 쉽게 만날만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이 한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 ‘슬픔’이란 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의 글에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망가지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스스로도 미쳐가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너도 나도 모두 죽고 미쳐가는 짓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 글쓴이처럼 누군가는 깜방 들락거리며 그 오랜 미친 짓을 막아 보려 한다는 것 등등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연인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도 있을 거고,
텔레비전 드라마 보다 느끼는 슬픔도 있겠지만
한 인간이 자기 존재와 삶에서 느끼는 슬픔은 참 큰 것 같습니다.
2.
금요일에 대구에서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강연이 있어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같은 내용으로 여러 수십 번 했던 강연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런데 이건 무슨 악취미인지 남의 아픔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얼마나, 왜 아픈지를 자세히도 말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니 제 마음도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모르는 얘기도,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닌데...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남의 아픈 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는 없겠지요.
때론 세상은 참 슬픕니다.
맞는 사람도, 때리는 사람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3.
아무 바램이 없다면 아무런 슬픔도 없겠지요.
아무 바램이 없다면 아무런 행복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행복을 얻고 싶으면 슬픔도 품어야겠지요.
슬프기 싫어서 행복도 찾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벼운 현기증이 몸을 흔들고
누군가 툭 건드리면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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