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삶에 대한 물음들

순돌이 아빠^.^ 2010. 8. 30. 17:47

1.
며칠 전 집 앞에서 밤길을 걷는데 누군가 ‘어, 영민씨’합니다. 가로등 빛에 기대어 보니 함께 배드민턴 치러 다니시는 분입니다. 길가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했습니다.

“영민씨는 친구들 사는 게 부럽지는 않아요?”
“아뇨. 부럽지는 않아요. ^^”

이 때 친구들이 사는 모습이란 직장 생활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뭐 그렇게 사는 것을 말하겠지요.

물론 그럴 때는 있습니다. 함께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싶을 때도 있고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노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혼자 있으면서 함께 있고 싶을 때도 있고, 함께 있으면서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는 게 사람이잖아요. 함께 있는 즐거움이 있고, 혼자 있는 고요함도 있구요.

그런데 사람이란 게 이 모든 것을 갖고 싶을 때마다 제 뜻대로 가질 수는 없잖아요. 함께 있는 즐거움 뒤에는 함께 있어 부딪혀야 하는 힘든 순간이 있는 거고, 혼자 있는 고요함 뒤에는 맛있는 차를 내려도 같이 마실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 있는 거구요.

가족을 이뤄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 나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겠지요.

가을을 기다리는 바람이 함께 있어 좋은 날입니다.

2.
어제는 어떤 분이 물으셨습니다.

“영민씨, 그렇게 살면 미래가 불안하지는 않아요?”
“히히. 안 불안한대요. ^^”

①더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②내 몸 스스로 간수할 수 없을 때는 조용히 스스로 삶을 거두자는 생각 때문인지, ‘뜻 있게 살다 가볍게 죽자’라는 생각 때문인지 아무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잘 나가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구요.

아쉬운 마음 들 때는 있습니다. 하루가 간다는 것은 제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또 하루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 해가 간다는 것은 제가 살아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또 1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
새벽까지 술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한 분이 제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CBS에서 매일 찬송가는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분이 약간 의외라는 목소리로

“그런 것도 들으세요?”
“네. 거의 매일 아침 들어요. ^^”

한국 기독교인들이 시청 앞에 모여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주여,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소서’를 울부짖는 모습을 욕해대던 제가 찬송가를 듣는다는 것이 약간 뜻밖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라디오를 켜는 겁니다. 5-7시 사이에는 불교 방송과 CBS FM을 듣는데, 찬송가는 주로 6-7시 사이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듣습니다. 7-9시 사이에는 국악 방송에서 오정혜가 진행하는 ‘창호에 드린 햇살’을 듣고, 저녁에는 클래식 FM을 많이 듣습니다.

기독교인도 아닌데 찬송가는 왜 듣냐구요? 저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절에 가서 절도 하고 바람도 쐬고, 화엄경․금강경․반야심경을 읽으며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불교방송에서 나오는 새벽 예불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참 편안하기도 하구요.

찬송가도 저에게는 마찬가지에요. 신을 믿지도 찬양하지도 않고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삶과 세상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은 좋아해요. 새벽 으스름한 시간 찬송가의 부드러운 가락은 마음을 편케도 만들구요. 진행자가 들려주는 좋은 말씀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소중한 의미가 되기도 하구요.

저에게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 기독교인이냐 무슬림이냐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가 제겐 중요한 문제에요.

말씀은 실천하기 위해 있는 거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니깐요.


보살은 평등한 마음을 갖고 자기의 모든 것을 일체 중생에게 보시합니다. 보시하고 나서도 아까운 생각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 않고 명예를 바라지 않으며 좋은 세계에 태어나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일체 중생을 구하고 거두며, 여러 부처님의 행을 생각하고 배우고 몸에 지니고 실현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환희행입니다. - [화엄경]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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