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 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두 위에도 발을 디딜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공간이란 것이 워낙 좁아서 까딱하면 발을 다치기 쉽지요.
세상살이에도 곳곳에 작두가 있는 것 같아요. 글쓴이도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유대교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크면서 좌파가 되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싸웠으니 굳이 따지자면 작두를 타고 있는 셈이지요.
국제주의의 길
글쓴이의 활동은 마츠펜(Matzpen. 나침반)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스라엘 사회주의자 조직Israeli Socialist Organization'과 함께 합니다. 마츠펜은 ‘이스라엘 공산당’이 소련에 대해 무비판적 지지를 보낸 것에 반대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고 하지요.
이름처럼 자본주의에 반대한 것은 물론 유대 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 운동에도 반대했지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 또한 ‘독립전쟁’이 아니라 ‘인종청소’로 규정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활동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예를 들어 한국의 한 단체가 베트남 전쟁을 미국과 한국의 베트남 침공으로 규정하고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점령촌 건설에 반대하는 마츠펜 활동가들
마츠펜 활동가들이 반역자로 찍힌 것은 당연(?) 하겠지요. 이스라엘, 유대인, 시오니즘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와 사회 앞에서 ‘헤브론에서 갈릴리까지 - 하나의 인간, 하나의 투쟁, 하나의 미래’를 주장했으니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구요? 만약 지금이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 하나의 인간, 하나의 투쟁, 하나의 미래’를 주장했다고 해 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마츠펜 활동가들은 세계 혁명에 관해 생각했다...마츠펜의 국제주의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특수성이라는 개념에 매달리고 있는 주류의 의견과 크게 대립하는 것이었다. - 34쪽
Porteurs de valises. 이것은 자금을 옮기든 선전물을 옮기든 아니면 무장 투쟁을 지원하든 알제리 민족해방운동 투쟁에 직접 참여한 프랑스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 48쪽
일본의 좌파가 조선 해방 운동에 참여한다거나 한국인이 베트남 민족해방을 위해 한국군에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요? ‘전쟁에 반대한다’를 넘어 ‘한국군에게 패배를, 베트남 민중에게 승리를!’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비록 소수이지만 이스라엘 활동가들은 DFLP(팔레스타인해방 민주전선)와 같은 팔레스타인인 조직에 참여하기도 했답니다.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라는 조직에 이스라엘 유대인이 참여해서 이스라엘과 맞서 싸운 거지요.
행동한다는 것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합니다. 예비군에게도 동원령이 내렸겠지요.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참전을 하느니 차라리 깜빵으로 갑니다.
예비군 사병과 장교인 우리들은 정부에게 우리를 레바논으로 보내지 말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 그리고 이 전쟁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말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존재와 안보를 방어할 것을 맹세했고 여전히 그 맹세를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에게 예비군으로써의 우리의 임무를 레바논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 - 95쪽
한국이나 이스라엘처럼 군사주의가 활개 치는 사회에서는 평상시에도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인데 심지어 전쟁 시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글쓴이는 레바논으로 가라는 세 번의 명령을 모두 거부하고 세 번 모두 수감 되었다고 합니다.
글쓴이 Michel Warschawski
글쓴이는 아랍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는 ‘대안정보센터(Alternative Information Center http://www.alternativenews.org )'를 만듭니다. 이 단체는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구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좋은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은 AIC 홈페이지를 찾아 보셔도 좋을 거구요.
아랍인과 유대인이 함께 활동하며 서로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자는 거지요. 시오니즘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 어느 민족의 사회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인권에 바탕을 둔 공동의 사회를 만들자는 거지요.
(정보기관에 체포된 글쓴이를 심문 하면서...) “멍청이가 되지 말라구.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법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걸 당신은 잘 알잖아...우리에게 중립 지역이란 존재하지 않아. 내 말 이해하겠어? 매우 중요한 문제란 말야.”
...그들은 우리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 활동을 포기할 것과 “그들”과 “우리”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만드는데 협력하기를 원했다. - 120쪽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
명백한 것은 시오니즘이 반유대주의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1970년 초 골다 메이어(옛 이스라엘 총리)가 말했듯이 : “너무 많은 반유대주의는 학살을 일으키니깐 좋지 않다. 반유대주의가 아주 없는 것도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아무도 이스라엘로 이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반유대주의이다.” - 154쪽
흔히 이스라엘 하면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국가를 떠올리며 반유대주의와 싸울 거라 여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를 이용하기도 하고 필요로 하기도 했지요.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인종주의의 희생자였듯이, 지금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인종주의 때문에 괴롭구요.
또 흔히 이스라엘 하면 유대인을 떠올리고, 유대인 하면 유대교와 연관해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건국을 이끌었던 시오니즘은 비종교적인 운동이며,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지배 집단 또한 비종교적이면서 유럽과 비슷한 사회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유대인 하면 둘도 아닌 하나의 유대인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유럽에서 온 유대인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지배 집단을 형성한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유대인은 피지배집단이자 하층 노동계급을 이뤘지요. 그러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유대인들은 좌파니 뭐니 하면서 자신들을 지배하는 유대인들에 맞서 오히려 리쿠드와 같은 우파 정당을 지지했지요.
흔히 언론에 나오는 이스라엘 좌파 정당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좌파와 다릅니다. 이스라엘 우파와 좌파의 차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쫓아낼 거냐 아니면 장벽 속에 가둘 거냐 정도입니다. 여차하면 좌파라는 말 때문에 속기 쉬운 거지요.
글쓴이는 자신 살아오면서, 활동하면서 보고 느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때론 담담하게, 때론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이스라엘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분들에게는 이 책이 도움될 겁니다.
작두 위에 선 것 마냥, 경계 앞에서(at the border)가 아니라 경계 위에(on the border) 서서 평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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