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양파를 보며

순돌이 아빠^.^ 2010. 10. 6. 09:14

 

1.
벌써 여러 달 전의 일입니다. 집안에 저 말고 뭐 살아 있는 놈을 키워보자 싶어 양파 4개를 각기 작은 통에 물을 담아 담갔습니다. 그리 담가 놓으면 뿌리가 나고 줄기가 오른다더라구요.

 

하지만 일찍 두 놈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고, 최근에 또 한 놈이 꼴까닥 하시더니 결국 한 놈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놈은 그냥 물에만 담가서 햇빛 비치는 곳에 뒀을 뿐인데도 허연 뿌리를 물속으로 잘도 뻗더라구요. 세 놈을 먼저 보낸 충격 때문에 그리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창밖을 바라보는데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게 웬일일까 싶어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몇 달째 뿌리만 내리던 양파 놈이 갑자기 줄기를 위로 쑤욱 밀어 낸 겁니다. 자다가 오줌 마려운 아이 자지 커지듯 말입니다.

 

2.
뿌리도 줄기도 없던 놈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오랜 세월 아래로 아래로만 자라더니
어느 한 순간 하늘 향해 솟아올랐으니
도약이고 발전이고 혁명이고 희망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희망을 품는 것은
배부른 자가 입맛을 다시 돋우기 위해
무언가를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자랄수록 줄기도 자라듯
큰 아픔, 큰 고통 겪은 이들이
우리도 한 번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온 힘 다해 뿜어내는 몸서리입니다

 

제 모습 꾸미기에 바쁜 이들이 내뱉는 희망은
가을 한 철 물위를 떠도는 나뭇잎 같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조차 알 수 없으니
하느님 팔아 제 주머니 채우는 이들이 말하는 사랑마냥
몸도 마음도 멀리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물속에 뿌리 내리려 숨이 꼴딱 넘어가는 시간을 이기고
제 살갗 찢으며 어린 아이 젖살 같은 줄기를
하늘 향해 떠밀어 올리는 양파가
헛된 약속보다 우리 가슴 빛나게 할 것입니다

 

희망을 말하는 이 있거든
너에게 희망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그 희망은 어디서 자라난 놈인지를 물어볼 일입니다.

 

3.
지(知)가 존재의 즉자대자적인 참모습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직접적인 존재나 그의 제규정에 머무르는 일이 없이 분명히 이 존재의 배후에는 존재 그 자체와 다른 어떤 것이 있음으로써 바로 이 배후에 자리 잡은 것이야말로 존재의 진리를 이룬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그 직접적인 것을 꿰뚫어 나가게 마련이다. - 헤겔, [논리학]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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