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각 깊은 사람으로 자라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겁니다.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글 등이 그런 것들이겠지요.
좋은 글을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신문입니다. 다양한 기사나 칼럼, 사설 등은 아이들이 세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좋은 글을 보면서 ‘아하 세상을 이렇게 보는 거구나’ ‘아하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하면서 배울 수 있을 거에요.
책이라고는 삼국지 밖에 모르던 중학생 시절, 아버지는 제게 <부산일보>를 보여 주셨습니다. 신문을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해 주시고, 제가 모르는 한자를 읽어도 주시고 그랬지요. 지금이야 모든 신문이 한글화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신문에 한자가 많았거든요.
요즘 신문 값이 얼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녀교육을 위해서 신문 하나 쯤 집에서 받아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겁니다. 차 한 잔 하면서 아이들과 신문에 나오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부모 자식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부모에 대한 아이의 신뢰감도 커질 수 있겠지요.
조중동
저는 도서관이나 식당 등에 가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동아일보>, 흔히 말하는 조중동이 놓여 있으면 이들은 요새 무슨 생각하며 사나 싶어 일부러 주요 기사나 사설, 칼럼 등을 읽어 봅니다.
그러고 나서 갖게 된 저의 생각은 자녀 교육의 면에서 보자면 조중동은 그리 좋은 신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저와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 신문들이 싣는 글이 문장의 면에서도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은 사유의 결과입니다. 깊이 사유하지 않는 이에게 좋은 글이 나올 리 없습니다.
‘A는 B이고, B는 C이니까 D를 고려한다면 결론은 E이다’라는 식으로 천천히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차근히 풀어갈 때 좋은 글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조중동이 실은 글들을 읽어보면 E라는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A, B, C, D는 E라는 결론의 근거가 아니라 E를 주장하기 위한, 자신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A, B, C, D의 단계를 밟지 않으면 E는 결론이 될 수 없고, A, B, C, D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주장과 상상만 있는 거지요.
인터넷 <중앙일보>의 예를 보지요. 2011년 8월31일 오후 5시 현재 인터넷 <중앙일보>의 첫 화면, 맨 위의 기사 제목은 <곽노현, 공소시효 잘못 이해...자기 꾀에 넘어가>입니다.
이 기사를 누르고 내용을 읽어보면 기사 첫 문단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 기사 보기 )
법조계에서는 “곽 교육감 측이 공직선거법상의 공소시효 조항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자기 꾀에 넘어간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첫 화면에 나와 있는 제목이 <곽노현, 공소시효 잘못 이해...자기 꾀에 넘어가>인 반면 제목을 누르고 들어가면 새로운 제목이 뜹니다. <“주민투표 끝나면 꼭 챙겨주겠다” 곽노현, 박명기 회유>
첫 화면 제목은 완전히 곽노현이 자기 꾀에 넘어간 것처럼 합니다. 그에 비하면 본 기사 제목은 첫 화면 제목 보다는 낫습니다. 곽노현이 박명기를 진짜로 회유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사실 관계를 따져서 말하는 거니까요. 그에 비하면 첫 화면의 제목은 곽노현이 자기 꾀에 넘어갔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정말 넘어간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지요.
박 교수의 측근인 A씨는 30일 “곽 교육감 측이 ‘후보 사퇴 대가로 약속했던 7억원을 달라’고 독촉하자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떻게 줄 수 있느냐. 시효가 끝난 뒤에 주겠다’며 지급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두 문단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A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률전문가를 자처했던 곽 교육감 측이 공소시효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발목을 잡힌 꼴이 된 셈이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앙일보의 <곽노현, 공소시효 잘못 이해...자기 꾀에 넘어가>라는 제목도 문장의 제목으로 적절하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A의 주장만 있고,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앙일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A인지 B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A라고 단정적으로 제목을 뽑는 것은 좋은 글이 아니겠지요.
또 곽노현이 자기 꾀에 넘어 갔는지 아닌지는 추측일 뿐입니다. 기사에서는 법조계에서 이런 분석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런 저런 말들을 꿰맞춰 보니 이런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거지요. 분석이 아니라 추측입니다.
첫 화면에서 같은 기사의 작은 제목은 <선거 8개월 후 2억 전달…돈 준 때부터 시효 시작 모른 듯>입니다.
‘모른 듯’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모르는 주체는 중앙일보가 아니라 곽노현입니다. 중앙일보가 곽노현이 00에 대해서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박명기에게 2억을 줬는지 아닌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마음을 꿰뚫어 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중앙일보 사장이 오늘 먹은 점심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아닌지 알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조중동의 글이 문장으로도 좋지 않다는 것은 차근히 글을 풀어가고, 적절한 제목을 정하고, 상황을 분석해 가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고 배웁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으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고, 좋지 않은 글을 많이 읽으면 좋지 않은 생각을 많이 하고 좋지 않은 글을 쓰게 됩니다.
깊은 샘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듯 좋은 생각 속에서 성숙한 사람이 태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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