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와 수호자들의 생활에 대해 들은 아데이만토스가 말을 꺼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그다지 행복한 사람들로 만들고 있지 않으시거니와...마치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용병들처럼, 파수꾼 노릇만 하는 사람들에 불과해 보인다고 말함 직합니다. - 257쪽
(소크라테스) 그렇고말고. 그나마도 끼니를 위해서일 뿐, 여느 용병들처럼 먹는 것 이외의 보수를 받는 것이 없어서, 사사로이 여행을 하고자 해도, 이들로서는 할 수가 없으며, 그리고 또 정인(情人)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또 자기가 쓰고 싶은 그 밖의 다른 어떤 곳에, 이를테면 행복한 사람들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그런 곳에 돈을 쓰는 것도 이들로서는 불가능하이. - 257쪽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통치자와는 완전 다르죠. 이명박이 이런 얘길 들으면 소크라테스를 엄청 미워할지도 몰라요. 아무튼 지금 소크라테스와 주변 사람들은 본받을 만한 훌륭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상상하고 구상해 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번에는 이런 것들이 다른 일꾼(장인)들을 타락시켜서는, 그들을 역시 나쁜 일꾼으로 되게끔 하는지 생각해 보게나...부와 빈곤일세...앞엣것은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을 초래하는 반면, 뒤엣것은 변혁에 더하여 노예 근성과 ‘기량의 떨어뜨림’을 초래하기 때문이네. - 261, 262쪽
부유하면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게을러 질 것이고, 가난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인가 봅니다.
다른 시민들도 저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이 한 가지 일(기능)에 개개인이 배치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각자가 자신의 한 가지 일에 종사함으로써 각자가 여럿 아닌 한 사람으로 되도록 하고, 또한 바로 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 전체가 자연적으로 여럿 아닌 ‘한 나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네. - 265쪽
스머프 마을이 생각나네요. 윗사람, 아랫사람 없이 스머프들은 각자의 일을 하며 어울려 삽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냥 뭉쳐서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개인으로써 존재함과 동시에 개인들이 연관을 맺고 어울려 살면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겠죠. 민족이든 가족이든 노동조합이든 뭐든 인간의 무리가 제대로 굴러 가려면 개인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무리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모여 무리가 되는 이루는 것이겠지요.
교육과 양육일세. 이들이 훌륭하게 교육을 받음으로써 절도 있는 사람들로 될 것 같으면, 이들은 이 모든 것을 쉽게 간파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제쳐 두고 있는 많은 것들까지도, 이를테면 아내들의 소유와 혼인 및 출산 등, 이 모든 걸, 속담에 따라, 최대한으로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된다는 것까지도 쉽게 간파할 것이기 때문일세. - 265쪽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훌륭한 성향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잘못된 관행을 바꾸며 올바른 삶의 길을 선택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 거지요. 지식·인식·철학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가 이런 겁니다. 플라톤이 여러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각 정체와 닮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거구요.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얘기를 떠나, 교육으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하겠지요. 앞에서 나라를 ‘정화’한다는 얘기가 떠오르네요.
A라는 사람이 학교에서 ‘모든 땅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배웠다고 하지요. 그런데 A는 땅을 엄청나게 소유한 땅 부자입니다.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개인의 땅 소유를 제한하고 공유지를 확대하려고 할 때 A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요? A는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까요?
나라들 가운데서도 나쁘게 다스려지면서도, 시민들에게는 나라의 확립된 정치 질서를 바꾸려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이 행위를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진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는, 그런 많은 나라 - 270쪽
그런 식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의 시민들을 가장 즐겁게 떠받들면서, 그들에게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어 주고, 또 그들이 원하는 바를 미리 알아서 이를 충족시켜 주는 데 능한, 그런 사람이 결국 훌륭한 사람으로 그리고 중대한 일들에 있어서 슬기로운 사람으로 되고, 또한 그들한테서 존경도 받게 될 테지? - 270쪽
앞의 사례는 요샛말로 하면 독재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가 될 거고, 뒤의 사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겠지요. 앞의 것에 대해서야 ‘아하 그럼 그렇지’하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 관한 얘기는 어떻게 들리시나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 되던 때를 생각해 보지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다수의 표를 받아서 이명박이 당선 되었지요. 국민들을 사랑한다,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 등등 온갖 좋은 말로 사람들을 꼬드겼지요. 시민들에게 알랑거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어떻습니까?
한 작가가 나치 문양 모자를 쓰고 삽 넥타이를 찬 이명박 그림을 버스 정류장에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경찰이 나서서 이 사람을 잡아 족치겠다고 했다지요.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는 말에 솔깃해서 뽑았더니 돈은 물론 자유마저 빼앗아 가고 있는 거지요. ‘민주주의 만세’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한계가 많은 사회 제도입니다.
훌륭한 나라
훌륭한 나라란 어떤 나라일까요? 먼저 지혜로운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혜라는 것이 통치자들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봅니다. 목수가 밝은 것은 목재에 관한 것이고, 통치자가 밝은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니까요.
‘성향에 따라 수립된 나라’ 전체가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은 이 나라의 최소 집단과 부류에 의해서, 그리고 이들 지도자와 통치자 집단의 지식에 의해서일세. 그리고 이것은 그렇게 여겨지다시피, 그 성질상 최소 부류가 되는데, 모든 지식 중에서도 유일하게 지혜라 불리어 마땅한 그런 지식에 관여하는 게 어울리는 것은 이 부류에 있어서 일세. - 276쪽
두 번째는 용기입니다. 군인들과 관련 있지요.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판단)’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을 나로서는 용기라 부르며 - 279쪽
이때의 소신이나 판단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지혜에 이르지 못한, 충분한 근거를 갖기 못한 것들입니다. 흔히 군대나 군인들에게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단순 무식하게 그저 까라면 까라는 거지요. 군인에게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군대와 군인은 많은 힘을 가졌습니다. 쉽게 사람을 죽이고 짓누를 수 있지요. 그런 군대와 군인이 별 생각 없이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시리아나 예멘에서처럼 통치자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시민들을 죽이라고 하면, 그 명령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잘못 됐으면 명령을 거부하고 통치자에 맞서 싸워야겠지요. 왜냐면 그들은 수호자이니까요.
세 번째는 절제입니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겠지요.
절제란 어쩌면 일종의 질서요,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일 걸세. - 280쪽
진실로 많은 온갖 욕구와 쾌락 그리고 고통을 특히 아이들이나 여인들 그리고 하인들에게서, 또는 소위 자유민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수의 미천한 사람들에게서 누군가가 발견할 수도 있을 걸세...단순하며 절도 있는 욕구는, 지성과 바른 판단(소신, 의견)을 아울러 갖춘 헤아림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어서, 소수의 사람에게서, 성향에 있어서도 가장 훌륭하지만 교육도 가장 훌륭하게 받은 사람들에게서 만나 보게 될 걸세. - 282쪽
네 번째는 올바름입니다. 앞에 말한 통치자, 수호자, 시민들의 조화를 말합니다.
‘제 것의 소유’와 ‘제 일을 함’이 올바름(올바른 상태)이라는 데 합의를 보겠네 그려. - 288쪽
그 성향상으로 장인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나중에 부나 다수 또는 힘에 의해 또는 이런 유의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우쭐해져서는 전사의 부류로 이행하려 들거나, 혹은 전사들 중의 어떤 이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숙의 결정하며 수호하는 부류로 이행하려 든다면, 그리하여 이런 사람들이 서로의 도구나 직분을 교환하게 된다면, 또는 동일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하려 든다면, 그런 경우에 내 생각에도 그렇지만, 자네한테도 이들의 이 교환이나 참견이 이 나라에 파멸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 생각하네. - 288쪽
각자의 성향에 따라,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올바름인데 그렇지 못하면 나라가 쫑 난다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성향과 자질을 얘기합니다. 어릴 때 하는 짓을 잘보고 될 성 싶은 놈들을 골라서 교육을 통해 통치자로 키워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한 인간의 성향이란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뀌기도 합니다. 활달하던 사람이 움츠러들기도 하고, 조용하던 사람이 시끄러워지기도 하는 거지요.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교육을 통해 바꿀 수도 있는 거구요.
10대에는 전사의 성향을 가졌다가 20대에 들어 통치자의 성향을 가질 수도 있다면, 성향에 따른 일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도 있는 거겠지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나오는 백정 가리온은 동물을 잡는 일을 하다보니 사람을 해부하는 것이나 치료하는 일도 잘하게 되었지요.
사람의 성향이 바뀔 수 있듯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지도 바뀔 수가 있습니다. 상상해 보자면, 군대가 없는 세상이 있을 수도 있는 거구요. 군대가 없는 사회가 과거에 있었을 것도 같구요.
삼성의 이건희, 이재용 부자
한 번 정한 성향에 따라 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칫 계급사회를 고착화 시키자는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나 이재용 같은 사람은 물려받은 재산이 엄청 나니 ‘제 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삼성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마치 이건희나 이재용이 기업 운영에 탁월한 능력(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구요.
세 부류인 이들 사이의 참견이나 상호 교환(기능의 바꿈)은 이 나라에 대한 최대의 해악이며, 따라서 무엇보다도 더한 ‘악행’(잘못함)이라 불러 지당할 걸세. -289쪽
지금 소크라테스는 상상 속에서 올바른 나라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가 내세우는 성향이나 나라, 인간은 아주 단순화된 것들이구요. 단순화했기 때문에 잘못인 것은 아니니, 그 단순화한 것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살펴보면 되겠지요.
통치자가 할 일은 일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만들려면 여러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야겠지요. 지혜를 가진 이가 시민에게 가서 그들의 삶을 잘 볼 수도 있고,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 지식을 갖게 되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시민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다스리는 자가 따로 있고, 다스림을 받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인식 능력과 윤리적 태도를 키우며 스스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그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아닐까요?
‘올바름’의 개념(형상) 자체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사람은 올바른 나라와 아무런 차이도 없고, 닮은 것일 걸세. - 290쪽
이 책은 실재하는 사람이나 나라에 관한 분석보다는 그들이 꿈꾸는 사람과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늘에 붕 뜬 애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실재하는 사람과 나라에 대해 파악한 뒤에 개념을 찾고, 그에 더 나아가 올바른 사람, 올바른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었다면 더 나았겠다 싶습니다.
실재A로부터 개념A를 찾고, 개념A로부터 B· C를 찾아나가면 좋겠지요.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올바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치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사람을 세 성향과 세 부류로 나누는 것은 ‘나라들’로 이어집니다.
‘격정적(기개적)인 부류’...트라케 지방과 스키티케(스키타이) 지방 그리고 대개의 북방 지역에 사는 사람들...우리 고장을 제일 내세움직한 ‘배움을 좋아하는 부류’나 페니키아인들과 이집트 지역 사람들에게 적잖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 ‘돈을 좋아하는 부류’ - 292쪽
세계와 세계사를 이런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은 헤겔이 <역사철학강의> 등에서 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헤겔은 동과 서를 단순한 상대적인 방향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했지요. 역사는 동에서 서로 이동하며 발전한다고 했구요.
2천년4백 년 전쯤에 태어나 플라톤이 이들 북방지역이나 이집트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집트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부류에 속한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은데 플라톤이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오해하고 있다면 플라톤이 ‘잘못 했습니다’라고 해야겠지요.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자칫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담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유럽, 무식한 동양과 아프리카 등등으로 쓰일 수 있는 거지요.
소크라테스가 우리 고장을 배움을 좋아하는 부류라고 했지만 소크라테스가 죽임 당한 것이 바로 아테네에서였습니다. 아테네인들의 무지와 오해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요.
한 가지로는 배우고, 다른 한 가지로는 발끈하며, 셋째 것으로는 음식과 생식 또는 이것들과 동류(同類)인 것들과 관련된 쾌락을 욕구 - 292쪽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성향은 개개인 안에도 있다고 합니다.
동일한 것이 동일한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동일한 것에 대해서 상반된 것들을 동시에 행하거나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이. - 293쪽
설탕이 짠 맛을 낼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단 맛을 내다가 짠 맛을 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설탕이 짠 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설탕이 소금으로 바뀐 것이겠지요.
욕망과 이성
욕구하는 자의 혼(마음)은 언제나 그 욕구하는 대상을 실상 갈구한다거나,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을 끌어당긴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어떤 것이 자신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한에 있어서, 혼은 그것에 대해서, 마치 질문을 받기라도 한듯, 수긍하며 그것의 성취를 갈망한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 295쪽
내가 욕망한다는 것은 대상을 욕망하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다면 욕망도 없습니다. 욕망한다는 것은 욕망의 실현을 바란다는 것이기도 할 거구요. 때로는 내 안에서 조용히 하나의 욕망으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휘몰아쳐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오직 그 욕망이 실현되도록 온 힘을 쏟게 만들지요.
지식들의 경우는 어떤가?...그게 무엇이든 그 대상에 대한 지식으로 보아야만 하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종류의 지식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대상에 대한 것일세. 내 말뜻은 이런 걸세. 집 짓는 것에 대한 지식이 생겼을 경우에, 그것은 여느 지식들과는 달라서, 가옥 건축술로 불리지 않았겠는가? - 297쪽
욕망이 그렇듯 지식도 대상을 가집니다. 문학(文學)에는 문(文)이 있고, 생물학에는 생물이 있는 거지요. 이것을 달리 말하면 대상이 없으면 지식도 없다는 겁니다.
A : 나도 공부 좀 하고 싶어?
B :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데
A : 그건 아직 모르겠는데... 그냥 공부하고 싶어
지식이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대상이 없는 공부는 공부가 아닌 게 되는 거지요.
목마름 그 자체는 본성상 단지 마실 것 자체에 대한 것일 뿐인 게 아니겠는가?...만일에 목말라하는 혼을 반대쪽으로 끌어당기는 어떤 것이 혹시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목말라하는, 따라서, 마치 짐승을 이끌 듯, 그걸 마시려는 쪽으로 이끌고 가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 혼 안에 있는 게 아니겠나? - 289, 299쪽
우리가 이것들을 두 가지 서로 다른 것들로 보고서, 그것으로써 혼이 헤아리게(추론하게) 되는 부분(면)을 혼의 헤아리는(추론적, 이성적) 부분이라 부르는 반면, 그것으로써 혼이 사랑하고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거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 상태에 있게 되는 부분은, 어떤 만족이나 쾌락들과 한편인 것으로서, 비이성적(헤아릴 줄 모르는)이며 욕구적인 부분이라 부른다 해도, 결코 불합리하지는 않을 걸세. - 300쪽
배고프다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아무 거나 집어 먹지는 않지요. 욕망하는 게 있다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는 ‘에라이 이 미친 놈아’라고 욕 먹기 딱 좋습니다. 이성으로 욕망을 조절하자는 거지요.
지혜로우며 혼 전체를 위한 선견지명을 지니고 있는 헤아리는 부분으로서는 지배하는 것이 적합하겠지만, 격정적인 부분으로서는 이에 복종하며 협력자로 되는 게 적합하지 않겠는가. - 304쪽
개인의 혼 안에 세 종류의 성향이 있을 때 이성적인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지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듯, 사회에서도 헤아리는 부분, 통치자 부류가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얘기대로 되자면 통치자는 완전히, 순수하게 통치자다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이들의 논리는 어긋나게 되겠지요.
‘모든 사람은 죽는다. A는 사람이다. 따라서 A도 죽는다’라는 주장이 옳게 되려면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행여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A가 죽는다는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게 되겠지요.
올바름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 성격 상태(습성)를 유지시켜 주고 도와서 이루게 하는 것을 올바르고 아름다운 행위로,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관할하는 지식을 지혜로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되, 언제나 이 상태를 무너뜨리는 것을 올바르지 못한 행위로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관할하는 의견(판단)을 무지로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네. - 308, 309쪽
플라톤이 바라는 지식과 지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가 극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바르지 못함’은 이들 세 부분간의 일종의 내분이며, 참견과 간섭, 그리고 혼 전체에 대한 어떤 일부의 모반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 309쪽
올바름이 각자가 제 일을 성실하게 하는 거라면 올바르지 못함 각자가 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겠네요.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 대하여 아뢰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비가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다.
- [논어], 안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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