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동네에 ‘우리 애를 한 동안 데리고 살면서 영민씨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우도록 해 주면 안 될까?’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특별한 거 안 해도 되니까 우리 애하고 같이 놀기라고 하면 안 될까?’하는 분도 계셨구요. 그러다 합의(?)에 이르게 된 게 책읽기 모임이었고, 중딩 4명과 함께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처음 만났을 때 ‘논술이나 성적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려는 거라면 오지 마세요~’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꾸준히 나오더라구요. 미술관에도 가고, 학생들 생활이나 부모님의 잔소리에 관한 얘기도 나누고, [반딧불의 묘] 같은 영화도 보고 그랬습니다.
평소에는 저희 집에서 모임을 하는데, 딱 한 번 찻집에 갔었습니다.
찻집에 처음 와 본 학생도 있었구요. 기념 촬영 찰칵!
책읽기 모임을 하면서 겪었던 난관 하나는 시간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학원, 과외 등등 때문에 너무 바쁘더라구요.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을 꼽아 겨우 맞춰본 끝에 매주 월요일 밤 8시~10시에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은 학생들에게 또 책을 읽자고 하고 늦은 밤까지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이 모임에서 세계사 관련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안에 보면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들을 노예로 끌고 간 얘기가 나옵니다.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료를 찾다 [알 자지라]라는 국제적인 언론사에서 만든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어린이/청소년 노예>.
영상은 지난 2010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내용 중에 시골 가난한 집 아이를 도시에 있는 다른 집으로 보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없는 살림에 입 하나 덜어 보자’인 셈이겠지요. 집 주인은 아이에게 청소나 빨래, 요리 같은 것을 시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기도 합니다. 영상을 촬영하던 사람과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아이 사이의 대화가 있습니다.
촬영 : 다른 애들이 학교 가는 걸 보면 기분이 어때요?
아이 : 창피해요. 저도 학교에 가고 싶거든요.
촬영 : 학교는 왜 가고 싶어요?
아이 : 그래야 미래에 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저의 바램
책읽기 모임 학생들의 얼굴과 영상 속 아이의 모습이 문득문득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한쪽 아이들은 학교·학원·과외 때문에 바쁘고, 다른 쪽 아이는 청소·빨래·요리 때문에 바쁘네요. 한쪽에는 국내여행 뿐 아니라 해외여행도 한 번쯤은 다녀온 아이들이 있는데 다른 쪽에는 집 밖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아이가 있네요. 한쪽의 아이는 학교가 지루하고 공부하기 싫다는데 다른 쪽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어린이/청소년 노예의 한 장면>
저는 어떤가요? 한쪽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함께 할 책을 고르고 여러 가지를 읽어 보기도 하고, 학생들이 지루해 할까봐 관련 영상이나 그림, 음악 등을 준비합니다. 다른 쪽 아이에 대해서는 그런 삶이 있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으며 살고 있구요.
평소에 저는 사람이라면 국적이 어떻든 인종이 어떻든 누구나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기본 조건이라고 했구요. 그런데 책읽기 모임을 하면서 저 또한 말과 달리 제 주변의 가깝고 익숙한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에만 관심가지며 사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늘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햇살을 내리는데 저는 사람을 가려 마음을 쏟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만약 책읽기 모임의 한 학생이 ‘세상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과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누구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가진 게 없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하겠지요. 그에 비춰 생각한다면 제가 책읽기 모임을 하는 데 쏟는 노력과 시간을 아이티의 그 아이가 학교를 가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쓰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닌지 제 자신에게 자꾸 묻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이티의 그 아이를 위해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사람이 누군가를 잊지 않고 마음 쏟기를 계속 하다보면 함께 살아갈 길이 생긴다는 것뿐입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마음 쓰고 무언가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고 있는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2]
여기에 바램 하나 더 있다면 책읽기 모임에서 세상의 전쟁이나 평화, 풍요로움과 가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학생들이, 내가 가진 것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라 아이티의 그 아이와 같이 어려운 삶의 조건에 처해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왜 굳이 관심을 가져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우리가 푸른 지구별 위에 함께 발 딛고 사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이유가 되는 건 아닐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눈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국어 시험이나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성적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더 많은 것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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